속임수
샤를로테 링크 지음, 강명순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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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선 한 아이가 사고를 당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며 소설은 시작된다. 세월이 흘러 2014년 퇴직 경찰 리처드 린빌은 자택에서 의문의 남성에게 잔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되고 스카보로 경찰서 케일럽 반장은 전담반을 구성해 수사에 착수한다. 과거 리처드 린빌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면서 복수를 다짐했던 데니스 쇼브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르면서 케일럽 반장 역시 그를 중심으로 사건을 풀어나간다. 몇 달 후, 런던경찰국 강력계 형사로 재직 중인 리처드의 딸 케이트는 휴가를 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가 살해된 지 2개월가량 지났지만 사건은 여전히 답보상태이고 데니스 쇼브 역시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케일럽 반장은 선배의 딸인 케이트에게 사건 정보를 제공해 주며 도움을 주지만, 관할구역이 아닌 곳에서 직접적인 수사는 할 수 없게 한다. 결국 독자적으로 사건을 수사해 나가던 케이트는 아버지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며 큰 충격을 받는다.


오랜 세월 동안 모범적인 공직생활을 해왔던 리처드 린빌은 존경받는 경찰이자 가족에겐 자애로운 남편이고 아버지였다. 평범하고 단란한 가정에서 자란 케이트는 런던경찰국 강력계 소속 형사지만 심약하고 왜소해 보이는 외모로 늘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지극히 낮은 자존감으로 동료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고 제대로 된 데이트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아버지는 경찰로선 스승이었고, 인생에선 삶의 조력자이자 유일한 벗이었다. 어쩌면 그녀 삶의 전부였던 아버지. 그랬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그녀 자신이 아버지를 잘 안다고 생각해 왔는데...

어느 날 케이트에게 아버지의 연인이었던 멜리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리처드 살해 사건과 관련해 꼭 할 얘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사건의 진전을 기대한 케이트. 그러나 멜리사 역시 아버지와 비슷한 방법으로 잔혹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수사팀의 수사 방향과는 달리 살인사건이 아버지의 사생활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의심한 케이트는 탐문수사 중 또 다른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아픈 어머니와 자신을 위해 아버지가 멜리사와 결별한 것이 아니었던 것. 상처와 혼란 속에서도 아버지와 멜리사의 급작스럽게 끝나버린 결별 사유에 무언가 있음을 직감한 케이트는 유일하게 그 사연을 알고 있을 아버지의 옛 동료이자 파트너였던 노먼을 찾아가지만 그 역시 살해된 채 발견되고 수사 방향은 전환되며 급진전된다.


샤를로테 링크의 <속임수>는 리처드 린빌의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경찰과 케이트의 시점 그리고 용의자로 지목된 데니스 쇼브가 벌이는 범죄행각이 주를 이루며 교차 서술된다. 소설 중반부쯤 읽다 보면 독자는 더 이상 데니스 쇼브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는 분명 악한 범죄자지만 실제 살인사건의 범인은 보다 치밀하고, 잔인하며, 계획적인 사람일 거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쨌든! 교차 서술되는 두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사건 해결을 위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나란히 달리는 평행선처럼 그 어떤 접점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후에 알게 된다. 누군가 사건에 혼선을 주기 위함이었고, 이는 작가가 설치한 장치였으며 독자들은 그 플롯에 저항 없이 따라갔음을. 그럼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두 사건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고, 그들 내면에 감춰진 심리를 읽을 수 있었는데, 그만큼 작가가 그려낸 캐릭터들이 입체적이고, 그들이 간직한 사연이 매력적이라는 것을 충분히 입증한 것이니 :)

 

케이트 그녀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버지. 그 아버지에게 감춰진 또 다른 모습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평소 마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 그 이면에 감추어진 많은 것들이 (예를 들면, 욕망, 분노, 증오, 트라우마, 고통, 슬픔 등등) 어디서부터 비롯되어 인간 내면에 스며들었는지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심도 있게 그려낸 스릴러 소설 <속임수>. 또한 점차 개인화되어가는 세태 속, 인간이 낳은 이기심으로 타인의 고통과 고뇌는 쉽게 외면받고 잊힌다. 무역감소로 쇠퇴일로를 걷고 있는 영국 리버풀 황량한 도시 속에 방치된 사람들, 한 사람의 인생을 단편적인 면만 보고 판단하고 재단하려는 사람들의 몰이해... 등에 대한 묘사는 많은 것들을 시사함과 동시에 구제받을 길 없던 고통에 시달린 사람들의 상처와 증오가 얼마나 끔찍한 비극적 결말을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나무벤치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느끼며 햇볕을 쬐었고, 강에서 풍기는 수초 냄새를 들이마셨다. 부드러운 미풍이 갓 베어낸 풀에서 나는 상긋한 냄새를 실어왔다. 케이트는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처음으로 긴장을 풀어헤치고 세상과 일체감을 이루었다. 머지않아 또다시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공포와 슬픔이 엄습해올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과 좀 더 친밀해질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리버풀의 머지 강변에 혼자 앉아 돌아본 자신의 삶에 엄청난 진전이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인생의 버팀목이었던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마침내 처음으로 자신을 위한 사람을 향해 첫발을 내디딘 느낌이 들었다. <340page>

그녀는 아버지 곁에 있는 동안에는 단 한 번도 자신이 시시하고 별 볼일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웃을 수 있었다. 아버지한테는 그녀가 맡은 사건들에 대해서도 언제나 마음 편히 털어놓을 수 있었다. 런던경찰국에서는 도저히 털어놓을 수 없었던 아이디어들을 아버지 앞에서는 스스럼없이 다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그녀의 아이디어가 시시하다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항상 그녀가 하는 말에 집중했고,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아버지는 그녀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주었고, 생각을 존중해 주었다. <452page>

 "사람들은 항상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지.

인생이 완전히 망가져갈 때조차도 어두운 실상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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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본다 미드나잇 스릴러
클레어 맥킨토시 지음, 공민희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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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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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과의 소통의 공간으로 자주 활용되는 SNS, 안전을 위해 설치된 수많은 CCTV 그런데, 누군가 '다른 목적'으로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면? 더불어 당신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반복된 일상을 살고 있다면?


우리는 모두 습관의 동물이야. 당신도 다르지 않지.

당신은 매일 아침 같은 코트를 걸치고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선호하는 좌석이 있어. 어떤 에스컬레이터가 가장 빠른지, 어떤 개찰구로 통과해야 하는지, 어떤 매점 줄이 가장 짧은지 정확히 알지. 나도 당신의 그런 점들을 알고 있어. (....) 반복되는 일상은 편할 거야. 친숙하고 안정적이겠지. 안심하게 만들겠지. 하지만 그런 일상이 당신을 해칠 수도 있어.  

어린 나이에 매트와의 사이에서 딸 케이티와 아들 저스틴을 낳고, 이혼 후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조 워커'. 어느덧 중년이 되어버린 그녀지만 삶은 여전히 팍팍하고, 현실은 녹록지 않다. 딸 케이티는 배우로서의 꿈을 키우며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아들 저스틴은 조의 친구인 멜리사의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아이들은 독립할 나이가 되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조와 함께 살고 있다. 성인이 되어버린 아이들을 다루는 것이 예전 같진 않지만, 그래도 매일 얼굴을 볼 수 있기에 조의 마음은 편하다. 그리고 그녀의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사이먼이 곁에 있기에, 힘들지만 조는 행복하다. 물론 사이먼과 아이들의 사이는 데면데면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믿는다. <나는 너를 본다>는 이처럼 여느 평범한 가정(약간의 균열은 있을지라도)의 배경을 갖고 있는 조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른 아침 바쁘게 하루를 시작하는 도심 속 대다수의 직장인들. 조 역시 매일 같은 시간, 출퇴근하는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런던 지하철을 이용해 출근하고 퇴근한다. 목 뒷덜미에서 원치 않는 타인의 뜨거운 입김이 느껴질 만큼 지하철은 만원이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흔들리다 문이 열리면 썰물이 빠져나가듯 쏟아지는 사람들. 겨우 플랫폼에 발을 딛고, 개찰구를 통과해 무사히 사무실로 들어선다. 하루하루가 전쟁이고, 하루하루가 반복되는 일상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철에 몸을 실은 조. 손에 들고 있던 신문 <런던 가제트>를 펼쳐들다 데이트 광고 속 여성의 사진을 보게 된다. 광고 속 여성의 사진은 흐릿하지만 분명 자신의 사진임을 알고 놀란다. 걱정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조는 가족들에게 신문을 보여주지만, 그저 그녀를 닮은 사람일 뿐이거나, 누군가 장난을 친 것이거나,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조 역시 중년의 여성인 자신을 그런 데이트 광고에 내는 것이 무슨 쓸모가 있겠냐고 생각한다.


소매치기 전담팀의 마지막 날 캐시 태닝의 도둑을 추적하며 보낸 후 지구 치안팀으로 복귀한 순경 켈리는 한 통의 제보전화를 받는다. 캐시 태닝이 소매치기를 당하기 전 그녀의 사진이 <런던 가제트> 광고 속에 실렸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제보자인 자신의 사진도. 이와 같은 사실을 제보한 사람은 다름 아닌 조 워커. 켈리는 더 이상 자신의 소관은 아니지만, 사건의 연관성을 깨닫고 수사를 시작한다. 한편,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 준비를 하는 조. 아침 뉴스에 한 여성의 살인사건이 보도된다. 그런데 어딘가 낯이 익다. 바로 전날 <런던 가제트> 광고에 실린 여성임을 알고 조는 큰 두려움을 느낀다. 최근들어 여성들에게 일어난 각종 사건, 사고 속엔 항상 <런던 가제트> 속 데이트 광고가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도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타인의 사진을 도용하여 광고를 내는 것인가? 이젠 예전 같지 않은 일상의 균열을 느끼며, 자신 또한 <런던 가제트> 속 데이트 광고에 한 차례 사진이 실린 이상 언제 자신의 차례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의 두려움과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뒤돌아보았지만 인도는 사람들로 붐볐다. 주위가 인파로 가득했으나 특별히 의심스러운 사람은 없었다. 횡단보도에 서 있으니 상상 속 눈동자가 너무 뜨겁게 쳐다봐서 등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뒤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눌렀다. 양 떼처럼 한데 뭉쳐 길을 건넌 사람들이 반대쪽에 도착할 때쯤 그들 사이에 숨은 늑대가 없는지 살폈다. <341page>


​그럼 이 남자들은 누굴까? 당신의 친구, 아버지, 형제, 친한 친구, 이웃, 상사들이지. 당신이 일상에서 늘 마주하는 사람들이야. 직장과 집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 당신은 충격받을 거야. 그들을 더 잘 안다고 생각했을 테니. 하지만 당신이 틀렸어.

<나는 너를 본다>는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보내는 일상의 틈을 파고 들어와 서늘한 공포를 선사한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주는 익숙함과 편리함은 패턴화 되어 어느덧 누군가의 표적이 되고 만다. 특히 그 표적의 대상은 주로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가장 흔한 범죄 유형으론 스토커가 있는데, <나는 너를 본다>는 단순한 스토커 물은 아니다. 그보다 한층 더 진화했다고 해야 하나? 무엇보다 이 소설이 '무서운 이유'는 지금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고 있다는 현실 때문이다. 초반부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 및 사건의 진행과정들이 나열되어 살짝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은 고조된다. 불쑥 불쑥 드러나는 각 인물들의 수상쩍은 행동에 독자들은 혼동할 수 있다. 혹시 이 사람이 범인인가? 아니면 이 사람? 그러나 의외의 인물이 범인으로 밝혀지면서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그 의도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그렇게 소설은 끝나는가 싶더니 하, 다시 한 번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마지막 반전! 세상에 진.짜.범.인은 따로 있었던 것인데, 그 정체가 대단하다면 대단하다. 결국 끝난게 아니니까!!!


이겼다고 생각하겠지.

다 끝났다고.

아니, 틀렸어.

이건 시작에 불과해.


(...)

날마다 똑같은 일상을 사는 수많은 당신.

나는 당신을 보지만 당신은 나를 볼 수 없어.

당신이 나를 보도록 만들지 않는 한.



스토리상 오류로 생각되는 부분 : '로라 킨'을 살인한 자는 여전히 거리를 활보하고 있고, '캐시 태닝'을 살해한 용의자 역시 아직 붙잡히지 않았다. <468page> 그러나 <352page ~ 353page>를 보면 캐시는 열쇠만 도난당했고 이후 증인으로 증언하기로 했지만, 사건을 잊고 싶어서 켈리한테 다른 곳으로 이사하겠고 말한다. 켈리가 설득하려고 하지만 피해자의 입장을 생각해 그냥 고맙다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여기까지가 캐시 태닝의 이야기다. 책 속에서 직접적으로 살해를 당한 여성은 '타냐 베켓'과 '로라 킨'일 뿐. 캐시 태닝은 살해당하지 않았는데, 그녀를 살해한 용의자를 추적한다는 건 스토리상 오류인 것 같다.

책 속에 등장하는 단어의 뜻

백기사 신드롬 :  백기사는 위험에 처한 상대를 찾아 자신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상대에게 필요 이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이것은 나를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백기사는 파트너에게서 칭찬이나 확인, 사랑을 받길 원하지만 결국 스스로를 속여 감정적으로 건전한 관계를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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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김신회 지음 / 놀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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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노보노>라는 만화 및 애니메이션을 본 적은 없지만 그 주인공인 <보노보노>가 귀여운 해달 캐릭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나 자신도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인데 <보노보노>는 어린이를 위한 만화나 애니메이션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애초에 '보는 행위'에서 제외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알게 된 김신회 작가님의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라는 에세이는 꽤 신선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의 만화이고, 애니메이션이기에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라 말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서툰 어른들을 위한 에세이'라는 소 타이틀을 달고 말이다. 그러자 일전에 읽었던 백영옥 작가님의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이라는 에세이가 떠올랐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빨강머리 앤> (물론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이 원작이지만) 애니메이션 속 아름다운 영상 및 주옥같은 대사들을 통해 삶을 반추해 볼 수 있는 작품이었는데, 이 작품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단 차이가 있다면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은 <빨강머리 앤> 애니메이션을 보았으나, 그 속에 이렇게 주옥같은 명대사들이 있었단 말인가? 하면서 다시금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고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에세이는 본 적 없는 <보노보노> 애니메이션(만화 포함)의 새로운 발견과 함께 단순하지만 그 내용의 심오함을 알게 된 감동과 즐거움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김신회 작가님의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서툰 어른'적인 면모를 알게 된 것도.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에세이를 읽다보면 보노보노 외에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나처럼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누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그러나! 친절하게도 책 뒷날개 부분에 <보노보노> 주요 인물들이 소개되어 있다. '보노보노 아빠, 너부리, 너부리 아빠, 포로리, 포로리 아빠, 야옹이 형, 도로리와 아로리, 홰내기, 울버린과 린, 프레리 독, 큰곰 대장네 가족'까지 말이다. 사람도 각자 저마다의 성격과 특징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노보노>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캐릭터들도 저마다의 성격과 특징들을 갖고 있다. 그러다보니 가끔은 부딪히고, 때론 아웅다웅 다투며 싸우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서로를 배척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각자가 추구하는 일상을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보노보노를 알고 나서 세상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됐다. 늘 뾰족하고 날 서 있던 마음 한구석에 보송한 잔디가 돋아난 기분이다. 사람은 다 다르고 가끔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사람도 만나지만 다들 각자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는 것, 내가 이렇게 사는 데 이유가 있듯이 누군가가 그렇게 사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억지로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해하든 하지 않든, 앞으로도 우리는 각자가 선택한 최선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므로. 보노보노와 친구들이 그러는 것처럼. 우리 주변에도 보노보노와 친구들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딘가에는 포로리처럼, 겉으로는 평범하지만 마음속에 빛나는 돌멩이 하나씩 품고 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또 어딘가에는 너부리처럼, 진심을 못된 말과 못난 행동으로밖에 표현할 줄 몰라도 우정과 사랑 앞에서만큼은 진지해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곳에는 보노보노처럼, 끊임없이 고민과 걱정으로 하루를 채우면서도 나를 아끼는 방법 하나쯤은 갖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언젠가 우리가 마주치게 된다면 서로를 알아볼 것이다. 서로에 대해 실컷 투덜대다가 결국엔 좋아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보노보노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이상한 사람은 있어도 나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나처럼, 당신처럼, 그리고 보노보노처럼... -프롤로그 中 >

짧지만 긴 여운과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보노보노> 4컷 만화 속 주옥같은 대사들도 좋았지만, 나는 위에 적어놓은 김신회 작가님의 <프롤로그> 속 저 글이 너무 좋았다. 물론 작가님께서 이렇게 생각하고, 쓰게 된 것이 <보노보노> 때문이니, 역시 <보노보노>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조금은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있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기회가 된다면 만화도, 애니메이션도 챙겨 봐야겠다 :)

김신회 작가님의 에세이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는 이렇듯 다양한 캐릭터들의 '다름을 인정'함과 동시에 우리 자신의 '서툰 면들도 인정'하고 받아들여도 '괜찮다'라고 말해준다. 꿈이 없어도 괜찮다고, 소심해도 괜찮다고, 화가 나면 솔직하게 감정을 토로해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어른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어깨에 짊어져야 했던 과잉된, 수많은 그 '올곧음'들을 잠시 내려놔도 괜찮다고. 부족하고 못난 나여도 '나'니까, '나'이기에, 이런 '나'까지도 보듬어주고 품어주라 말한다.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그동안 경직되어있던 내 어깨가 풀어지는 느낌이었고, 뭔가 남들처럼 열심히 살지 못한 것 같아서 늘 자책감을 달고 살았는데, 이런 나도 나니까! 오히려 지금까지 이렇게라도 살아온 나에게 '잘 살아왔다고', '고맙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책 속 밑줄>


어른은 비록 꿈은 없을지 몰라도 세상 물정은 안다. 포기할 때와 그만둬야 할 때가 언제인지도 알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는 현실도 안다. 그러니 만약 자신이 어른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꿈 없이도 살아가는 나를 장하게 여기며 살자. 어른이란 칭찬해주는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를 다독이며 사는 사람이니까. 꿈 없이도 살아간다는 것, 그건 또 다른 재능이다. 130page


가장 멋진 사람은 꿈을 이룬 사람이 아니라,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꿈 같은 거 이루지 못한다고 해서 가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건 아니니까. 182page


작은 공간에 틀어박혀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그 공간 안에는 나보다 큰 것들은 그다지 없잖아. '가장 큰 나'의 고민이니까 엄청난 일이라 느껴지는 거 아닐까. 그런데 밖으로 나가보면, 나보다 큰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게다가 그것들은 고민 같은 건 하지도 않는단 말이지. 대자연의 거대함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고민 같은 건 있지도 않은 거야. 205page


누구에게나 아무도 모르는 모습이 있다. 아무도 모르는 내 모습을 나만 알고 있는 거라면 나, 대단하네. 나, 대단하네. 235page


슬픔은 병이야.

그렇다면 낫기 위해서 살자고 생각했어.

살아 있는 게 분명 낫게 해줘. 31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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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14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노보노, 짱구는 못말려. 이런 만화들을 어린이들이 보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렇게 말한 사람들 대부분은 만화를 한 번도 보지 않았을 겁니다. 두 만화작품을 계속 보면 어른에게 교훈을 주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어요. ^^

별해무 2017-04-14 21:29   좋아요 0 | URL
네 ㅎㅎ 그렇더라고요 ㅎ 이번 기회에 보노보노 만화랑 애니 찾아서 꼭 봐야겠어용 ㅎㅎ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 - 이 문장이 당신에게 닿기를
최갑수 지음 / 예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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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들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에 점점 더 무뎌지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 연인 간의 사랑으로 뜨겁고, 달콤하고, 설레고, 두근거리고, 애틋하고, 이별 후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고 그리운... 사랑이, 그런 사랑에만 머문다면 말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우연히 스친 한 여자를 잊지 못해 밤새 그녀를 찾아 헤매는 것이 사랑이라 여겼는데, 지금은 누가 머라 하건 사랑은 그냥 사랑인 것 같다. 미지근한 것도 사랑이고, 차가운 것도 사랑이다. 필요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할 건 아니다. 우리 몸을 지나갈 것은 이미 다 지나가버렸다. 원하던 것을 가졌고, 가지지 못한 것들은 포기했다. 그리고 남은 것이, 희미한 재 같은 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이를 먹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56page> 더 이상 가슴 두근거릴 일도, 볼 빨개질 일도 없는 불혹의 시간을 기다리는 나이기에, 사랑은 이미 지나가 버린 세월처럼 까마득한 옛일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미지근한 것도 차가운 것도 사랑이라니. 나 아직 사랑을 하고 있는 거구나. 사랑의 온도만 조금 변했을 뿐, 사랑은 그냥 사랑으로 내 가슴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었구나.


오래전 나는 오로지 한 사람, 하나의 사랑에만 함몰되어 있었다. 세상은 우리를 중심으로 돌아갔었고, 우리는 세상의 한가운데에 멈춰 있었다. 모든 노래의 가사는 내 얘기였고, 구슬픈 멜로디는 귓속에 스며들어 마음을 적시곤 했다. 눈물은 詩가 되고 손끝에서 피어난 문장들은 오롯이 그와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 사랑의 설렘과 두근거림에 숱한 밤을 잠 못 이루며 뒤척였고, 후에 찾아온 이별엔 몇 개의 베갯잇을 눈물로 적시곤 했던, 오래전 나의 뜨거웠던 사랑. 그때의 나는 뜨거웠지만, 하나의 사랑에 눈이 멀어 다른 사랑은 보질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랬던 것 같다. 아니, 그랬다. 사랑을 잃은 딸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지금은 내 곁에 없는 엄마와 할머니. 나의 세계에 함몰되어 있던 나는 그분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고, 그저 나의 세계 속에서 웅크린 채 하염없이 슬퍼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질없다' 생각되면서도 그 시절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사랑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무모했기에, 어쩌면 순수했기에 그저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만을 믿고, 내 모든 것을 던졌던 사랑. 비록 상처로 끝나긴 했지만, 이 또한 사랑이었음을...


<헤어져야 할 때 헤어져야 하는 사랑. 헤어져야 할 때 헤어질 수 있는 사랑. 그것도 사랑. 그래야 사랑. 바다 앞 어느 여관 낡은 방에 쓸쓸히 누워 헤어짐을 결심하기 좋은 장소는 바다만 한 곳이 없지하며 주먹을 불끈 쥐어보는 스무 살 시절이 있었다. 192page>

 

 

+

많은 것들이 나를 떠나갔다.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왜 나를 떠나갔는지. 떠나갈 거면서 왜 왔는지.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데...


내게 웃었던 그것들이여.

팔짱을 끼었던 그것들이여. 나를 망쳐버린 그것들이여.

잘 지내시는지.

 

 

+

가끔은, 그렇게 하나의 사랑에 함몰되었던 그 시절의 뜨거웠던 사랑이 그립기도 하다. 새까맣게 가슴이 타버려 재만 남았던 시절의 사랑. (아마 두 번 다시 이런 사랑을 할 순 없겠지만) 잊고 있었는데, 최갑수 작가님의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을 읽으면서 풋풋했던, 그리고 무모했던 그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 비록 상처로 남고, 상처로만 기억된 사랑이었지만. 아, 나에게도 그렇게 뜨거웠던 계절이 있었지 하며. 지금은 어쩐지 낯간지러운 '사랑'이라는 단어가 참 어색하기도 한데, 오랜만에 소녀감성에 젖어들 수 있어 좋았다.

 

 

 

+

행복이라는 건 말이야, 인간의 수만큼 다양한 거야.

네가 엿본 건 그중 하나에 지나지 않아. 너에게는 네게 꼭 맞는 행복이 분명히 있어

 

 

+

그래도 나는 지금의 내 사랑이 좋다. 비록 사랑의 온도는 미지근할지 몰라도, 하나의 사랑에만 함몰되지 않고 많은 것들을 보고, 사랑할 수 있는 지금의 내가 좋다. 길섶에 핀 노란 민들레의 얼굴이 사랑스럽고, 솔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가 사랑스럽고, 봄이 오는 소리에 맞춰 꽃봉오리를 피워내는 나무들의 열정이 사랑스럽다. 매일 아웅다웅 다투는 남편이지만, 함께 있음에 행복하고 사랑한다. 비록 늦어버리긴 했지만 얼마나 딸을 사랑했는지, 얼마나 딸을 걱정했는지, 당신의 아픔과 고민은 좀처럼 내비치지 않았던 엄마의 사랑도 이젠 이해할 수 있다. 세월과 함께 주름살 하나 더 늘어가겠지만, 보다 많은 것들을 사랑할 수 있는 지금의 내가 나는 좋다. 한차례 거세게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격정적이고, 뜨거웠던 그 계절을 나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고, 그 계절을 거쳐왔으니 아쉬움은 없다. 단지 가끔, 아주 가끔 꺼내보는 추억의 사진첩처럼 그리울 뿐. 또 가끔 또 그렇게 그리워하면 될 일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사랑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언젠가 또 지금의 나를 그리워할 나를 위해.


<인생이란 참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짧으니까, 그래서 미워하고 시기하며 살기엔, 한 곳에 머물러 살기엔, 아까운 것이 인생이다. 우리는 저마다 치열하게 살아온 것 같지만 사실은 밥 먹고 설거지하고 영화 보고 친구들과 수다 떨며 살아왔다. 어쩌면 우리 인생은 그게 대부분이다. 팔 할은 이런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이 가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삶의 실재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랑하도록 하자. 열심히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여행을 떠나자. 혁명은 멀고 사랑은 간절하니까. 2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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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드의 영역
쓰쓰이 야스타카 지음, 이규원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은행나무의 현명한 선택에 박수를 보냅니다. 소녀상에 정액을 뿌리자니... 하.. 어떻게 이런 망발을... 이젠 이 작가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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