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임수
샤를로테 링크 지음, 강명순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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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선 한 아이가 사고를 당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며 소설은 시작된다. 세월이 흘러 2014년 퇴직 경찰 리처드 린빌은 자택에서 의문의 남성에게 잔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되고 스카보로 경찰서 케일럽 반장은 전담반을 구성해 수사에 착수한다. 과거 리처드 린빌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면서 복수를 다짐했던 데니스 쇼브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르면서 케일럽 반장 역시 그를 중심으로 사건을 풀어나간다. 몇 달 후, 런던경찰국 강력계 형사로 재직 중인 리처드의 딸 케이트는 휴가를 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가 살해된 지 2개월가량 지났지만 사건은 여전히 답보상태이고 데니스 쇼브 역시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케일럽 반장은 선배의 딸인 케이트에게 사건 정보를 제공해 주며 도움을 주지만, 관할구역이 아닌 곳에서 직접적인 수사는 할 수 없게 한다. 결국 독자적으로 사건을 수사해 나가던 케이트는 아버지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며 큰 충격을 받는다.


오랜 세월 동안 모범적인 공직생활을 해왔던 리처드 린빌은 존경받는 경찰이자 가족에겐 자애로운 남편이고 아버지였다. 평범하고 단란한 가정에서 자란 케이트는 런던경찰국 강력계 소속 형사지만 심약하고 왜소해 보이는 외모로 늘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지극히 낮은 자존감으로 동료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고 제대로 된 데이트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아버지는 경찰로선 스승이었고, 인생에선 삶의 조력자이자 유일한 벗이었다. 어쩌면 그녀 삶의 전부였던 아버지. 그랬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그녀 자신이 아버지를 잘 안다고 생각해 왔는데...

어느 날 케이트에게 아버지의 연인이었던 멜리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리처드 살해 사건과 관련해 꼭 할 얘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사건의 진전을 기대한 케이트. 그러나 멜리사 역시 아버지와 비슷한 방법으로 잔혹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수사팀의 수사 방향과는 달리 살인사건이 아버지의 사생활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의심한 케이트는 탐문수사 중 또 다른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아픈 어머니와 자신을 위해 아버지가 멜리사와 결별한 것이 아니었던 것. 상처와 혼란 속에서도 아버지와 멜리사의 급작스럽게 끝나버린 결별 사유에 무언가 있음을 직감한 케이트는 유일하게 그 사연을 알고 있을 아버지의 옛 동료이자 파트너였던 노먼을 찾아가지만 그 역시 살해된 채 발견되고 수사 방향은 전환되며 급진전된다.


샤를로테 링크의 <속임수>는 리처드 린빌의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경찰과 케이트의 시점 그리고 용의자로 지목된 데니스 쇼브가 벌이는 범죄행각이 주를 이루며 교차 서술된다. 소설 중반부쯤 읽다 보면 독자는 더 이상 데니스 쇼브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는 분명 악한 범죄자지만 실제 살인사건의 범인은 보다 치밀하고, 잔인하며, 계획적인 사람일 거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쨌든! 교차 서술되는 두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사건 해결을 위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나란히 달리는 평행선처럼 그 어떤 접점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후에 알게 된다. 누군가 사건에 혼선을 주기 위함이었고, 이는 작가가 설치한 장치였으며 독자들은 그 플롯에 저항 없이 따라갔음을. 그럼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두 사건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고, 그들 내면에 감춰진 심리를 읽을 수 있었는데, 그만큼 작가가 그려낸 캐릭터들이 입체적이고, 그들이 간직한 사연이 매력적이라는 것을 충분히 입증한 것이니 :)

 

케이트 그녀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버지. 그 아버지에게 감춰진 또 다른 모습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평소 마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 그 이면에 감추어진 많은 것들이 (예를 들면, 욕망, 분노, 증오, 트라우마, 고통, 슬픔 등등) 어디서부터 비롯되어 인간 내면에 스며들었는지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심도 있게 그려낸 스릴러 소설 <속임수>. 또한 점차 개인화되어가는 세태 속, 인간이 낳은 이기심으로 타인의 고통과 고뇌는 쉽게 외면받고 잊힌다. 무역감소로 쇠퇴일로를 걷고 있는 영국 리버풀 황량한 도시 속에 방치된 사람들, 한 사람의 인생을 단편적인 면만 보고 판단하고 재단하려는 사람들의 몰이해... 등에 대한 묘사는 많은 것들을 시사함과 동시에 구제받을 길 없던 고통에 시달린 사람들의 상처와 증오가 얼마나 끔찍한 비극적 결말을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나무벤치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느끼며 햇볕을 쬐었고, 강에서 풍기는 수초 냄새를 들이마셨다. 부드러운 미풍이 갓 베어낸 풀에서 나는 상긋한 냄새를 실어왔다. 케이트는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처음으로 긴장을 풀어헤치고 세상과 일체감을 이루었다. 머지않아 또다시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공포와 슬픔이 엄습해올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과 좀 더 친밀해질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리버풀의 머지 강변에 혼자 앉아 돌아본 자신의 삶에 엄청난 진전이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인생의 버팀목이었던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마침내 처음으로 자신을 위한 사람을 향해 첫발을 내디딘 느낌이 들었다. <340page>

그녀는 아버지 곁에 있는 동안에는 단 한 번도 자신이 시시하고 별 볼일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웃을 수 있었다. 아버지한테는 그녀가 맡은 사건들에 대해서도 언제나 마음 편히 털어놓을 수 있었다. 런던경찰국에서는 도저히 털어놓을 수 없었던 아이디어들을 아버지 앞에서는 스스럼없이 다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그녀의 아이디어가 시시하다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항상 그녀가 하는 말에 집중했고,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아버지는 그녀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주었고, 생각을 존중해 주었다. <452page>

 "사람들은 항상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지.

인생이 완전히 망가져갈 때조차도 어두운 실상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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