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 이야기 - 인간, 기적을 행하는 자, 반 룬 전집 1
헨드릭 빌렘 반 룬 지음, 조재선 옮김 / 서해문집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헨드리크 빌렘 반룬(1882~1944)의 세계는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의 세계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한겨레 신문 2005년 1월 14일자)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쓴 슈테판 츠바이크는 내게 있어서 우아한 문체의 화신처럼 여겨진다. 책을 읽는 내내 모차르트의 선율처럼 현란하게 깔끔한 그의 문장에 숱한 탄성을 질렀던 경험은 지금도 내 독서 이력의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기록될 만하다. 그러던 나에게 있어 슈테판 츠바이크에 비견될 만한 사람이라고 소개된 한 저술가에 관심의 초점이 맞춰진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게 헨드릭 빌렘 반 룬 - 들어본 적이 별로 없었지만 (사실 아주 없었다.) -, 그는 내가 읽어야 할 도서 목록의 최상위를 차지하는 책의 저자가 되었다.

 '반 룬 전집' 중 현재 나와 있는 것이 '발명 이야기', '코끼리에 관한 짧은 우화', '관용' 이렇게 세 가지이다. 단 세 권의 책 제목만으로도 그 저자가 뽐냈을 지적 편력의 범위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역자의 저자 소개는 다음과 같이 당혹스러운 감탄사로 시작된다. '이 유머러스한 괴짜 아저씨를 도대체 뭐라 소개하면 좋을까? 제1회 뉴베리상 수상작가, 풍자와 해학의 대가, 박학다식한 저널리스트이자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이자 문화사가, 시대를 앞서간 진보주의자, 20세기 초의 위대한 휴머니스트...'

 슈테판 츠바이크와의 비교를 염두에 두고 반 룬을 읽다 보면 적쟎이 놀라게 된다. 츠바이크의 유려하고 장식이 풍부한 문체와 비교해 볼 때, 반 룬의 문체는 거의 간이 되어 있지 않다고 느껴질 정도로 담백하기 때문이다. 츠바이크의 글에서는 문장 하나하나에 갈고 다듬었던 흔적이 남아 있지만, 반 룬의 글은 바로 옆에서 속삭이며 말하는 내용을 그대로 녹취하여 기록한 것같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의 글은 문체만을 놓고 보았을 때는 서로 가장 먼 거리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겨레 신문에서의 지적처럼, 반 룬과 츠바이크의 세계는 서로 강한 동조의 화음을 울린다. 마치, 베이스와 소프라노의 이중창처럼...

 츠바이크가 더 등장했다가는 츠바이크에 대한 글이 될 것이므로, 이제 반 룬에 대한, 그리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발명 이야기'다. 인간이 자신의 피부, 손, 발, 코, 귀, 눈의 기능을 어떻게 확장하였는지를 알려주는 거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되감기/빨리감기 버튼을 손에 쥐고 수년에서 수십만년 사이를 종횡무진 왕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담백한 문체는 이 거대한 이야기를 마치 옆집 아저씨가 자신의 집을 어떻게 수리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처럼 친근하게 풀어 놓는다. 그것도 저자 자신의 유머러스한 삽화를 거의 매 페이지마다 곁들이면서 말이다. (아마도 저자는 이 책이 나오기 까지 글을 쓰는 것 보다 그림을 그리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결과는 '책읽는 재미'라는 당연한 독자의 권리를 제대로 충족시켜 주는 사랑스런 책의 등장이다. 두 세번 읽고 분석해야 겨우 한 문장을 넘어가게 되는 고통스런 책에 시달리던 사람에게는 남태평양에서의 휴양과도 같은 책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책에만 머물렀다면 내가 이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글을 쓰느라 끙끙거리는 일은 없었을 터. 걸림 없이 술술 넘어가면서도 진보주의자로서 저자의 저술의도를 은은한 배경음악으로 깔고 발명의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을 거의 놓치지 않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배경에서 화음부만을 연주하던 주제가 간혹 튜티로 떠오르는 장엄한 순간이 있는데, 그 중 하나만 맛배기로 감상해 보자.

 '현대의 거창한 '대체 손'은 나쁜 길로 인도되었고, 철저한 무감각 속에서 탐욕스러운 주인들의 뜻에 맡겨져,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해악을 불러올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같은 근거로 그것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선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친구들이여, 그 선택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끝으로,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거의 유일한 단점이지만 너무 커서 용서하기 힘든 실수를 언급하고자 한다. 그것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 '자전거'가 소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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