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크 전파과학사 Blue Backs 블루백스 37
난부 요이치로 지음, 김정흠, 손영수 옮김 / 전파과학사 / 198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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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백스 시리즈는 일본 고단사와의 계약을 통해서 전파과학사가 출판하고 있다. 물론, 일본은 물리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있다. 우리는 미국 유수의 대학의 일본인 교수들이 써낸 물리학 책을 심심찮게 서점에서 볼 수 있다. 이런 점에 있어서는 일본이 많이 부럽다. 뭐, 어쨌든 인문학을 전공하면서도 현대물리학에 대한 상식을 충분히 알아둬야 한다는 판단하에 블루백스 시리즈를 다소 구입해서 읽어보았다. 아시다시피 쿼크와 렙톤은 소립자 물리학의 핵심개념이다. 그러나 너무 의욕만 앞섰던 것일까?

이 책은 친절한 설명 뿐만이 아니라, 그림과 인물해설까지 곁들여있지만, 워낙 물리와 수학에 약했던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않는 부분이 많았다. 저자인 난부 요이치로씨가 전문적인 물리학의 내용을 쉽게 서술하려고 하는 노력은 보이지만, 이해가 가지않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반복적으로 책의 내용을 읽던지, 아니면 물리학 전공자와 같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 좋은 독법이라 생각한다.

어쨌거나 문과 학생이라면 이 책이 작다고 만만하게 볼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그러나 찬찬히 읽는 과정에서, 현대 소립자 물리학의 발전경로와 문제의식, 그리고 주요한 학자와 연구업적, 아울러 난제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핵심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해왔는지를 아는 것만도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충분한 것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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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물리학의 자연상 - 유니베르타스문고 1
W.하이젠 베르크 지음, 이필렬 옮김 / 이론과실천 / 199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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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하이젠베르크는 현대물리학의 슈퍼스타이다. 그는 1926년 실증적인 입장에서 선 현미경의 사고실험(思考實驗)을 고찰하여 불확정성관계(不確定性關係)를 제창, 양자량에서의 관측문제의 기초를 마련하였고 새로운 이론의 개념을 명확하게 하였다. 그 후 수소분자의 문제, 다체문제(多體問題), 강자성(强磁性)의 연구 등으로 나아가, 1929년 W.파울리와 함께 장(場)의 양자론을 발표하여 양자역학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불확정성원리의 연구와, 양자역학 창시의 업적으로 193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후기 연구로는 플라스마물리학 ·열핵반응 등이 있으며, 1953년 비선형이론(非線型理論)은 소립자의 통일이론을 지향하는 야심적인 것으로 주목을 끌었다.

이 책은 하이젠베르크가 교양적인 수준에서 현대물리학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서술한 것이다. 자연과 기술, 그리고 그 사이의 자연과학의 위상과 더불어, 원자 물리학에서 인과율의 문제를 다룬다. 이 부분은 책의 초입 부분이지만, 중요한 대목이다. 다음으로, 인문주의 교육과 자연과학에 대한 문제는 다소 논쟁적인 부분이며, 그 이후에는 현대물리학이 이런 경로를 밟아오게 된 과정을 케플러, 갈릴레이, 뉴튼을 통해서 하인리히 헤르츠와 드 브로이까지를 서술하고 있다. 가볍고 작은 책인만큼,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읽기에는 부담없을 것이라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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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양 - 이데아총서 61
르네 지라르 지음, 김진식 옮김 / 민음사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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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르네 지라르를 처음 접했던 것은 김현 선생님의 '폭력과 성스러움'을 통해서였다. 김현 선생님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존경해마지 않는 학자였으므로, 나는 기꺼이 이 책을 구입했었다. 문화인류학! 이 책 한권으로 나는 아직 지라르의 문화인류학적 작업을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의 접근에 대해서는 동감한다. La Violence et le Sacre에서 그가 말했던 '제의적 희생sacrifice rituel' 개념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적 문화적으로 하나의 희생양이 다른 희생양을 대체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고, 또 성경을 그들의 전유물로 생각했기 때문에, 아직 성경을 읽어보진 못했다. 그래서 지라르의 이 책이 많이 어려웠다. 그러나, 문화인류학, 생태인류학은 분명 상당한 설득력이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평소에 관심이 많았다. 예를 들어, 마빈 해리스와 같은 학자의 책은 널리 읽혔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도 상당한 통찰력을 가졌었는데, 그것이 문화인류학의 힘으로 나에게 깊이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도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나의 생각으로 문화인류학은 아마 포스트-과학주의의 한 영역이 될 듯하다. 과학적인 정량성과 환원주의로는 설명될 수 없는, 그러한 역사, 의미, 문화의 영역이 가장 체계적으로 논의되는 부분이 문화인류학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로 지라르가 문학에서 문화인류학으로 빠져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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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철학
김재권 지음 / 철학과현실사 / 199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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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철학의 문제는 '나'가 주로 '나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는 데서 크게 연원한다. 여기서 '주로'라고 제약한 것은 심리사건과 물리[신체]사건의 동일성에 관한 물음이 그 자체 뿐만이 아니라, 삶/죽음의 문제와도 맞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서술과 사고, 표상의 방법적 한계가 지금의 문제를 야기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즉, '서술하는 이성'과 '서술된 이성', '방안화(fomulization)'와 '공리화(axiomatization)', '사유'와 '사유된 것', 그리고 '동일화하는 것'과 '동일화된 것'을 같이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예를 들어, '서술하는 이성'과 '서술된 이성'의 관계는 구분되지 않고 단지 '이성'으로 기술됨으로서 많은 철학적 문제를 야기했다는 것이다. 러셀 역설의 문제를 근원에 둔 이것을, 나는 인지과학적 의미에서 접근함으로서 이성의 제한적 정의를 부여하려 한다.

*실체는 심리철학에서 어떻게 규정되는가? 그것이 느스하게 동일적인 것으로, 그리고 독립적인 것으로 규정된다면, 심리철학은 많은 문제를 그 안에 두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적어도 실체를 그 내포에 있어서는 자기원인으로서, 그리고 외연에 있어서는 x, y, z라는 적어도 세 변수, 좀 더 구체화하면 주체 동일성, 객체 동일성, 지평의 동일성으로 규정되는 위상수학적인 것이라 본다.

*심적 속성, 심적 사건, 심적 과정, 그리고 예화(examplication). 간과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심리철학에서 혹은 적어도 심신 동일론(Psycho-Pysical Identity Theory)에
서 하부구조로서 신체에 대해서 기술하는 것은 이성, 더 포괄적으로는 마음이며, 나아가 무법칙적 일원론(Anomalous Monism)과 같은 것으로 심-신의 인과관계를 규정하는 것도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 서술자의 정당성은 어떻게 부여되는가? 유일하기 때문에 특별할 수는 없다. 적어도 최소한의 논리적 정당성은 물어졌어야 한다.

*다수실현 가능(multiply realizable)의 가장 큰 의미는 적어도 나에게 이것이 '표현형/유전자형'과 같은 유기체의 기능적 구조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급진적 구성주의에서 하나의 체계로서 유기체를 정의할 때, '폐쇄된 체계 내에서의 self-reference'는 그것이 하나의 단위로서 스스로 동일성을 구성하는 방식이 반복적인 자기 표현과 수정과정, 즉 정적 피드백에 의한 재확인 과정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보다 더 큰, 그러나 간접적인 self-reference 과정인 체계와 환경(Umwelt)의 부적 피드백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심리적 상태와 하나의 물리적 상태는 다수실현 가능하기 때문에 서로 구분되지만, 서로 독립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조건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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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계 안에서의 마음
김재권 지음 / 철학과현실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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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계 안에서의 마음'을 통해 내가 심리철학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소 물리주의(minimal physicalism)를 구성하는 심물 수반, 반데카르트적 원리, 심물 의존은 따라서, 나에게 있어서는 (유기체적) 기능주의에로 전회를 꾀하기 위한 조건이다. 그리고, 이것은 스피노자적인 의미에서 '속성(attribute)'의 지위 문제에로 나아간다. 속성은 물론 자기원인으로서의 실체와, 그 본질로서 존재, 그리고 내재성의 개념을 필함하고 있는 것이다.

*infallible, incorrigible, self-intimating는 브렌타노의 지향적 내재(intentional inexistence)와 함께 주체의 특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성이 곧 주체의 이성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이것은 종종 간과된다. 이성을 크게 확장하여, 감각정보의 인출과 저장, 변형을 아울르는 인지(cognitive)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주체로서의 특권이 어떻게 지금의 서술을 서술하는 또다른 이성에게 가능하게 제시되고 있는지를 말해야 한다. 아울러, 이 둘을 토대하고 있는 언어적 지평까지도. 문제는 작동되고 있는 기능적 메커니즘 단위를 어떻게 그대로 보여주는 가이다. 그것을 이해가능한 형태로 번역하는 것이 지금까지는 행해지지 않았다.

*심신동일론의 강점은 심적사건과 두뇌과정 사이의 상관관계를 이를테면 자기원인적 동일성으로 설명하려 했다는데 있다. 여기서 기능주의로 넘어가, 유기체론과 생태론의 창발 개념을 수용하면, Double Aspect Theory로서 스피노자의 존재론은 연계 가능하다.

*라이프니츠의 법칙 '[동일자의 식별 불가능성] X와 Y가 동일하다면, X와 Y는 모든 속성들을 공유한다. (즉, 임의의 속성 P에 대해서 X와 Y가 모두 그것을 가지든지 그것을 결여하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는 필연적으로 '[식별 불가능자의 동일성] X와 Y가 모든 속성을 공유한다면, X와 Y는 동일하다.'를 요청한다. 여기서 속성은 가능한 속성이어야 한다.

*마음이 semantic engine이고 컴퓨터는 syntatic engine이라고 할 때, 후자가 전자로 이행하는 과정은 유기체에서 assimilation과 accomodation, 그리고 potentia의 조응으로서 conatus나 voluntas 등이 있겠다. 이것은 하나의 후성적 진행과정이라 볼 수 있다. 인과성은 근접한 것에 반응하여 공진화의 구조로 구성된다. 데이빗슨의 '자비의 원리(the principle of charity)'의 한 예로서 심적인 것의 본질로서 합리성과 정합성의 요구는 '인지적 조화'의 개념으로 압축된다. 이것은 예컨데 폴리아나(pollyana) 효과처럼 닫힌 체계가 타자나 지평과 매개적으로 닮아있음을 보여준다.

드러나 있는 것만이 아니라, 구조가 그 구조를 재생성할 수 있는 닮은 구조를 창발시킨다. 사고한다는 것은 구성되고 조건화된 서술자이다. 이것은 자기 대상화[객관화] 할 수 있는가? 서술자, 사유자, 판단자로서의 이성은 어떻게 자백해질 수 있는가? 지금의 심리철학에서 '나'는 '너'와 별반 구별되지 않았다. 그 '나'의 속성들은 엄격하게 논리적으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 단지 경험적 예시가 특권적으로 부가되었던 것일 뿐이다. 철학에서의 대상으로서의 이성은 서술하는, 사유하는 이성과 관계되어야 한다. 관찰자여서는 안된다. 이성은 이미 제한된 합리성을 가지는 것인데, 그것을 이성이 이성화시켜서는 안된다. 여기서는 마땅히 인지라는 개념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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