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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 - 재벌을 해체하듯 대학을 해체하자
김동훈 지음 / 바다출판사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우선은 용감하게 이런 책을 내어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출판계에는 인신공격적 비판이나 주례사식 비평은 쓸데없이 많아도 독자와 저자 사이의 공경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이런 감사의 말을 꼭 하고 싶었다.
저자인 김동훈 교수님의 이 책은 출판당시 미디어의 포커스 속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그 이후는? 변한 것은 없다. 물론, 이런 소신 있는 비판과, 또 소신 있는 대학 총장, 소신 있는 대학생들도 우리나라의 대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목소리를 내어 왔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소멸한다. 아니, 거대한 학벌사회가 그 문제들을 덮어버린다. 그러면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냥 체제만이 지속되고 재생산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비판자들이 좀 달라져야 한다. 한 번 했던 방식으로 체제가 변하지 않는다고 단념하면 안된다. 그냥 포기하면 안된다.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 하여도, 이미 그것은 알고 시작했던 일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방식을 바꿔서 다시 체제와 부딪혀볼 필요가 있다.
나는 기존의 비판이 가지는 문제점이 일단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학벌사회를 지탱하는 미시적 개인들, 즉 SKY 동문들의 연줄망과 그들이 유지시키는 입시체제를 적절하게 공략해야 한다고 본다. 막무가내로 덤비면 그들은 기득권을 중심으로 더 뭉친다. 그렇다면, 국지적으로 설득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게릴라전이 필요하다. 둘째로, 학벌사회의 문제를 너무 앞뒤 생각해보지 않고 제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비판 자체가 학벌사회를 공고히 한다.
즉, 그들이 SKY를 외치며, 그것이 문제라고 각종 통계를 보여줄 때마다 사람들은 더 SKY를 출세의 관문으로 여긴다. 역효과란 말이다. 그러니 비판을 하려면 효과와 대안을 확실히 준비하고 외쳐야 한다. 정말 바꾸고 싶은 의지가 있다면 좀 더 철저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대학생이다. 오늘도 공부를 하고 왔다. 그리고 나와 같은 학생들과 직접 부대끼고 있다.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쉬는 시간 없이 공부한다. 무슨 공부냐고? 많은 사람들이 별종으로 보겠지만, 나는 내 전공인 사회학과 철학을 공부한다. 그 책을 읽는다. 하루 종일. 한달 내내. 학벌사회를 비판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여. 너무 부풀리지 마라. 내 주변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러니 인문학, 이공계의 위기가 왔다고 하기전에 먼저 살펴보라. 분명 그 학문을 죽도록 재밌어하며, 또 그것을 위해 하루 종일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들을 칭찬하라.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 그들을 집중 조명하면, 위기는 거품이었음을 보일 것이다. 작은 균열도 스스로 아물 것이다. 그러니 비판가들이여! 우리가 먼저 똑똑해지자. 원래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열정적인 소수가 있다. 그리고 그들이 학문을 이끈다. 외국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너무 바보처럼 대응하고 있다.
지금 당장 달려가보라. 전국의 각 대학에서 지금도 도서관의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고시공부가 아닌 전공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들의 열정에는 서열이 없다. 그들만 외면하지 않는다면, 우리대학은 문제 없다. 대학이 망해야 한다고? 대학은 바로 이렇게 공부하고 싶어서 들어온 소수들이 있는한 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