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철학의 주사위
질 들뢰즈 지음 / 인간사랑 / 1993년 12월
평점 :
품절


니체를 이해하는 것은 요즈음 회자되고 있는 후기구조주의의 사상가들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즉, 데리다의 언어관, 들뢰즈의 욕망 개념, 푸코의 권력 개념을 알기 위해서는 니체를 반드시 독해해야 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푸코의 계보학에 있어서 니체의 문제와 더불어, 들뢰즈의 니체 주해는 상당히 날카롭다.

多作하는 철학자로 알려진 들뢰즈에게 있어서 가장 긴 공백이었던 8년의 침묵 이후 처음으로 나온 책이 니체에 관한 이 주해서였는데, 이것을 푸코의 니체 연구나 데리다의 니체에 대한 해석을 비교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연구이다. 이 가운데 나는 들뢰즈의 니체 주해를 상당히 신뢰한다. 그가 이미 스피노자에 대한 주해를 멋지게 했던 것을 상기하는 것과 더불어, 이 연구를 서문만 읽어봐도 그가 얼마나 니체의 저작들을 주의깊게 독파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니체는 존재를 생성으로서 사유한다. '생성은 존재를 소유하며 단지 생성만이 존재를 소유한다'(15쪽) 존재론에 있어서 그는 영원회귀와 이중의 긍정을 주장하면서 헤겔의 변증법과 실질저긍로 차이나는 논리를 편다. 또한 'Qui(누구)'를 묻는 계보학의 문제도 중요하다. 힘에로 지향되는 현실세계의 문제가 참된 철학의 물음이라 보기 때문이다. 이것을 지식사회학에서 말하는 진리의 가치지향성 혹은 진리의 존재구속성 문제에로 연결하여 보는 것도 상당히 유익하다.

나에게 있어서 철학의 개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힘(potentia)라고 본다. 주체의 '동일성' 혹은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주체를 어떤 개념으로 규정하는냐의 문제인데, 이 점에 있어서 주체를 potentia로 파악하는 것은 전통의 정적인 존재론이나 현대의 동적인 존재론, 더 나아가 현대의 인지과학 및 기능주의의 입장에 접근하는데도 유연하다.

이렇게 존재를 힘으로 해석하는 두 대표적인 철학자가 스피노자와 니체이다. 특히 니체는 주체를 권력과 지식의 가치 문제로 다룸으로써 더욱이 중요하다. 독자들에게 들뢰즈의 일련의 주해 씨리즈에 있어서 백미인 니체 주해를 권한다. 전공자에겐 아마 상당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하나는 다른 하나를 향해서 있으며, 하나는 다른 하나의 내부에서 존재한다. 이것은, 영원회귀는 존재이지만 존재는 선택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긍정은 권력의지의 유일한 질로서 존속하며, 능동적 행위는 힘의 유일한 질로서, 능동적 생성은 권력과 의지의 창조적인 동일성으로서 존속한다'(328쪽)

1분중 0분께서 이 리뷰를 추천하셨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장승수 지음 / 김영사 / 199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수능이 끝나고 만점자와 수석 학생들이 나온후 출판가에는 위의 책과 같은 상업성을 띤 책들이 나온다. 이런 류의 책들은 으레 한철을 잡기 위해 특정한 독자층을 겨냥하여 만들어진 책이다. 수학능력고사라는 우리의 입시제도가 가진 문제점들 속에서, 그래도 살아남아야 하는 학생들에게 던져진 임무수행교본이라고나 할까?

특히, 장승수씨의 이 책은 그가 평범한 IQ에 내신5등급이고 막노동까지 하면서 공부했지만, 결국 고교 졸업 6년만에 서울대 수석을 차지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억압감과 거부감을 나에게 불러일으켰다. 물론, 이 책의 미덕은 곳곳에 있고, 나 역시 이 책에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출판사의 상술과 광고가 안타깝고 슬프다. 이 책을 억지로 읽어야만 하는 우리 청소년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요로서 읽히는 책은 저자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저자와 같은 노력파에겐 '무엇에', '왜' 노력을 해야하는지 열정과 노력이 나온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와 같이 공부에 대한 흥미를 모든 학생이 다 가질 수는 없지 않는가!

나는 이미 대학 졸업을 앞둔 학생이기 때문에 이렇게 서슴없이 비판하는 것은 어쩌면 무례한 것일 수 있다. 나 역시 고등학교 때에는 한 등수라고 더 올리기 위해서 애를 썼으며, 수능을 치던 날 온갖 정신을 집중시켜 한 문제라도 더 맞출려고 노력하였다. 그런 제도의 틀 안에서 이런 책을 비판한다는 것은 가혹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비판하는 것은 저자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이 책을 뒤늦게 읽었지만, 책의 내용은 상당히 흥미로우며, 또 사람을 책 속으로 몰아넣는 흡입력이 있다. 그리고, 수능에 대해 어떻게 대비하고 공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잘 제시되어 있다. 나 역시 그의 책을 읽고 재수를 꿈꿨을 정도로 많이 배웠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왜 제목이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저자의 의도가 아닌 출판사의 의도였을지라도, 저자는 고등학교때 공부를 곧잘 했으며 재수와 삼수를 하던 가운데도 꾸준히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였다. 이런 것은 명백히 저자에게 공부가 가장 쉬웠다고 해서, 다른 모든 학생들에게도 공부가 가장 쉬웠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하나의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이러한 요소가 책이 많이 팔릴 수 있는 장점은 되었겠지만, 독자들에게 미덕으로 다가오지는 못한다. 이 책을 읽고서도 여전히 입시지옥에 시달리고 성적이 안오르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특별한 케이스인가? 아니면 이 책을 쓴 저자가 특별한 케이스인가? 저자가 고생을 많이 해서 좋은 성적으로 서울대학교에 진학했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 그렇게 저자처럼 되는 것을 영웅 대접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질타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나에게 이 책은 보이지 않은 이 사회의 가치질서와 계급질서를 강요하는 것 같아 그 많은 미덕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 읽히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허영 2004-04-23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람이 사시 합격해서 올해 연수원 들어왔어요. 얘기를 들어 보니 형제도 공부를 잘 해서 스카이 중에 한 군데를 갔다더군요...원래 머리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나본데...공부가 쉬울 수 밖에 없었을지도..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 문학과지성사 / 199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은 아름다운 책이다. 언어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손끝으로 묻어나는 그런 책이다. 굳이 바르트의 명성에 힘입지 않더라도 이 책은 그렇게 나의 감성의 굳은 살을 벗겨내는 힘이 있다. 프랑스인의 문화적 깊이와 정서적인 섬세함이 베어 있어서 그런 것일까? 각 장들이 하나의 어휘를 분석하면서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파고들어가는 그 묘미가 새롭다.

예컨데, 이 책의 '사랑'은 에리히 프롬 식의 '사랑'이라기 보다는 마르셀 프루스트 식의 사랑이다. 회상하고 기억하는 그런 사랑 말이다. 연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해야 할까 망설이고, 연인의 작은 행동에도 그가 혹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하는 그런 사랑 말이다. 너무나 선명하다. 마치 봄햇살에 손 등의 실핏줄이 아릿아릿 드러나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바르트의 언어는 사랑의 살갗을 아주 조심스럽게 들춰낸다.

누군가 나에게 사랑이 이 세상 최고의 가치가 아니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흔들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랑의 감정은 짜릿하고 황홀한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끄덕이겠다. 그것이 비록 이별로 끝을 맺을 수도 있겠지만, 서로 좋아하는 두 사람이 만나서 같이 있는다는 그 시간들은 보이지 않는 무수한 의미와 감정의 交通을 낳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행복이리라.

바르트는 그러한 사랑의 황홀함과 격정을 잘 아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정갈하게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지금 사랑에 빠져 있다면 뒤늦지 않게 이 책을 읽어보는게 좋을 것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탁월하다. 당신이 좀더 진실되고 영원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번역자인 김희영씨는 이 책이 '사랑의 이야기'나 '사랑의 철학'이 아닌데, 너무 곡해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물론, 바르트는 기호학자이고 텍스트의 의미분석을 위해 이 글을 쓰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글의 행간을 잘 살펴보면 사랑에 대한 바르트의 생각이 묻어나온다. '프라그망'이란 것이 그런 의미 아닌가? 조금만 시간의 여유를 낸다면 지금까지 여러분이 만든 사랑의 추억과 그 설레임에 다시 빠져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때의 기억에 다시 황홀해하거나 아쉬워하면서, 사랑에 대한 성찰을 더 고양시켜 보기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교사상의 이해
동국대학교불교문화대학불교교재 / 불교시대사 / 1999년 4월
평점 :
품절


내가 처음에 불교에 관심을 가진 것은 '유식론'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였다. 아직까진 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지는 못했지만, 이책저책 두루 읽다보니 불교에 대해서 전반적인 상식이 생겼다. 그리고 하나의 종교가 가진 매력이라든지 그런 것도 알 수 있었다.

또한 절 부근을 자주 드나들면서 스님들과도 친하게 되었다. 그 때 한 비구니 스님이 나에게 이 책을 줬었다. 이 책은 불교학교로 유명한 동국대학교 출판부에서 간행한 것이다. 그런만큼, 종교의 의미에서부터 샤카무니의 생애, 그리고 불교의 근본교리로 유명한 연기법과 사성제, 오온-무아, 삼법인 등에 대해서 쉽게 씌여져 있다. 아마, 이 책은 교재용으로 많이 사용되는 책이라 생각된다. 우리학교의 인도불교 수업 시간에도 이 책을 교재로 쓴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화엄사상, 정토사상, 선사상도 흥미로웠다. 법회에 나가면서 금강경이나 화엄경 등을 읽고는 했지만, 그에 대해서 깊이있는 깨달음을 얻기는 어려웠다. 아마, 이 시대의 의미로 해석이 잘 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은데, 이 책은 그런 의미에 있어서 마치 교과서처럼 잘 쓰여져 있다. 특히 책의 후반부에 불교와 과학을 비교하면서 불교의 과학적인 의미까지 논하고 있다.

현대과학이 불교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서양의 사상은 이제 끝나고 동양의 사상만이 진리로 추앙받는다는 식의 발상은 곤란하다. 하지만, 과학의 여러 패러다임이 몇천년 전의 불교의 思惟세계와 닮아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연구거리임은 틀림없다.

책의 마지막에는 주요 불교용어까지 정리되어 있는데, 아마 불교에 대한 입문자라면 이 책을 읽는 것이 아주 도움이 될 것이다. 여러분의 일독을 권한다. 나는 비록 불교를 종교로서 믿지는 않지만, 그 매력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상당한 흥미가 있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추천할만한 좋은 책이 있다면 메일로 연락해주시면 감사하겠다. 특히 위에서 말한 유식론을 비롯해 불교 公案과, 無我 개념에 대해 관심이 많다. 이런 좋은 자리를 통해 많은 의견교환이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화 1
질 들뢰즈 지음, 주은우.정원 옮김 / 새길아카데미 / 199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선 이 책은 질 들뢰즈가 두 권으로 써냈던 책이기 때문에 1권만을 읽고서는 그가 주장하려는 바의 일부분만을 이해할 수 밖에 없다. 그만큼 한계가 있다. 그러나 철학자가 보는 영화는 어떤 것일까를 짐작해본다는 것은 재미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한 감독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앵글이 어떻고, 미쟝센이 어떻고, 샷이 어떻게 잡혀 있는지 그리고 왜 그런지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감독이 설정한 구도가 과연 필연적인 그리고 최적의 구도였는지를 살피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생각을 자주 하다보면, 일상 생활에서도 내가 사물들과 사건들을 바라보는 시점을 샷으로 생각하면서 이래저래 많이 편집을 해본다. 아마 내 생각으로 들뢰즈 역시 그런 장난을 많이 했을 것 같다.

그가 이 책에서 쓴 용어들도 역시 그답게 독창적이며 어려운 것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 또한 재미있다. 다른 저작에서도 그랬듯이 그가 이런 용어를 사용해야만 했던 이유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들뢰즈는 영화―이는 어떻게보면 현실을 인간이 재구성, 재창조하는 것일텐데―를 분석하고 음미한다. 영화 속에 담긴 운동과 순간성, 세트, 프레임과 쇼트, 커팅을 배워가는 것은 재미있다. 철학의 강점 중의 하나가 그 의미를 깊게 분석하는데 있지 않은가?

개인적으로는 '몽타주'에 대한 그의 분석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에이젠슈테인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들뢰즈 자신이 영화사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처럼, 스스로 익혀가는 듯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영화의 요소들에 대해 들뢰즈는 의미를 부여한다. 행동과 지각, 감정들에 대해 마치 현실의 시뮬레이션을 돌리듯이, 철학적인 사유를 한다는 것은 생각의 깊이를 깊게하는 훈련이기도 하다.

나는 들뢰즈가 KINO와 같은 잡지에서 특집으로 다루어지는 것을 자주 봤었다. 그만큼 그는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철학자였다. 이 책은 그가 영화에 대해 언급한 유일한 단행본의 1권이다. 국내에 이진경 선생이나, 김영민 선생이 영화에 대해 책을 냈던 적이 있다. 그런 책들보다 이 책은 딱딱할 수는 있겠지만, 영화 전공자자들에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만큼 분석이 깊고 예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