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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 문학과지성사 / 199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은 아름다운 책이다. 언어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손끝으로 묻어나는 그런 책이다. 굳이 바르트의 명성에 힘입지 않더라도 이 책은 그렇게 나의 감성의 굳은 살을 벗겨내는 힘이 있다. 프랑스인의 문화적 깊이와 정서적인 섬세함이 베어 있어서 그런 것일까? 각 장들이 하나의 어휘를 분석하면서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파고들어가는 그 묘미가 새롭다.
예컨데, 이 책의 '사랑'은 에리히 프롬 식의 '사랑'이라기 보다는 마르셀 프루스트 식의 사랑이다. 회상하고 기억하는 그런 사랑 말이다. 연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해야 할까 망설이고, 연인의 작은 행동에도 그가 혹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하는 그런 사랑 말이다. 너무나 선명하다. 마치 봄햇살에 손 등의 실핏줄이 아릿아릿 드러나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바르트의 언어는 사랑의 살갗을 아주 조심스럽게 들춰낸다.
누군가 나에게 사랑이 이 세상 최고의 가치가 아니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흔들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랑의 감정은 짜릿하고 황홀한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끄덕이겠다. 그것이 비록 이별로 끝을 맺을 수도 있겠지만, 서로 좋아하는 두 사람이 만나서 같이 있는다는 그 시간들은 보이지 않는 무수한 의미와 감정의 交通을 낳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행복이리라.
바르트는 그러한 사랑의 황홀함과 격정을 잘 아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정갈하게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지금 사랑에 빠져 있다면 뒤늦지 않게 이 책을 읽어보는게 좋을 것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탁월하다. 당신이 좀더 진실되고 영원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번역자인 김희영씨는 이 책이 '사랑의 이야기'나 '사랑의 철학'이 아닌데, 너무 곡해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물론, 바르트는 기호학자이고 텍스트의 의미분석을 위해 이 글을 쓰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글의 행간을 잘 살펴보면 사랑에 대한 바르트의 생각이 묻어나온다. '프라그망'이란 것이 그런 의미 아닌가? 조금만 시간의 여유를 낸다면 지금까지 여러분이 만든 사랑의 추억과 그 설레임에 다시 빠져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때의 기억에 다시 황홀해하거나 아쉬워하면서, 사랑에 대한 성찰을 더 고양시켜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