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와 니힐리즘
마르틴 하이데거 지음, 박찬국 옮김 / 철학과현실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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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이 책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평가를 알고 있었다. 하이데거의 이 책은 니체에 대한 탁월한 분석서이면서 동시에 오늘날의 후기 구조주의자들인 푸코와 데리다, 들뢰즈가 니체를 프랑스로 수용하게 된 간접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 그 하나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당연히 이 책을 읽고 싶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책에서 하이데거는 니체를 이용였다는 분석도 있었다. 즉, 일반적으로 니힐리즘의 사상가로서 니체는 서구의 형이상학과 언어관을 철저하게 비판하는 학자인데, 하이데거는 오히려 니체를 그런 형이상학의 완성자로서 보고 자신을 니체의 위치로 해석했다는 점이다. 다시말해, 자신이야말로 존재자와 존재에 대한 분석을 완성함으로서 서구의 니힐리즘을 실질적으로 완성하고, 그보다 앞선 형이상학의 모순을 폭로한 철학자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나는 이 책을 꼼꼼히 읽었다. 읽으면서 많이 배웠고 감탄하였다. 솔직히 나 역시 하이데거의 견해에 말려들어 니체를 그렇게 평가할 수도 있다는 우려 속에서 마치 사이렌의 소리를 귀막고 항해했던 오딧세이처럼, 진지하게 읽었다. 그러나 역시 하이데거는 하이데거였다. 그만의 박식하고 탁월한 분석은 상당히 훌륭했다. 플라톤부터 헤겔에 이르기까지 서양철학사를 포괄하면서 니체의 사상을 평가했기 때문이다. 특히 저작 후반부에 (이것은 실제로 이 책의 절정이다) 니체의 사상을 데카르트의 사상과 분석하여 전복시키기 때문이다.

이 주장을 토대로 그는 니체는 니힐리즘을 주장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완성하지는 못했으며 오히려 형이상학의 완성자로 자리매김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결론에서 그만큼 특유한 사상인 존재자와 존재의 논의로 새로운 철학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번역자인 박찬국 선생 역시 하이데거의 주장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고 경고한다. (그는 국내에서 이기상 교수와 더불어 하이데거의 권위자로 유명하다)

즉, <니체와 니힐리즘>은 니체에 대한 붐을 일으킨 탁월한 분석서인 동시에 하이데거의 주장이 책의 저변에 상당하게 깔려있는 문제작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니체를 다루고 있으면서 하이데거 자신을 다루고 있다. 강의에서 쓰여진 것들을 출간했기 때문에 하이데거의 책 치고는 쉽게 쓰여져 있다는 점에 있어서 이 책은 학부생이 읽기에 적합하다. 그리고 그의 박식함에 많이 자극받고 또 많이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 책은 서양철학사의 '현대' 파트를 시작하게 했다는 점에 있어서 또한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에 꼭 읽어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데리다나 푸코의 사상의 연원을 이 책과 비교하여 공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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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렇게 보면 두배로 재미있다
김익상 지음 / 들녘 / 199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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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책에 실린 영화들은 이제 잊혀져버린 영화들일 수도 있다. 그만큼 영화산업은 대중들이 한 번 보고나면 두 번 보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같은 영화를 두 번 세 번, 많게는 수십번씩 보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친구라면 핀잔을 준다. 넌 왜 시간낭비하면서 같은 영화를 그렇게 많이 보냐고. 그러면 그들은 그렇게 말할 것이다. 난 '영화마니아'라고.

이 책은 그런 아마추어 영화광들이 입문하기 위한 좋은 책이다. 즉 영화가 무엇인지 쉽게 눈뜰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말이다. 저자 역시 그런 의도로 책을 썼음이 분명하다. 그는 제임스 카메론이나 폴 버호벤 등의 헐리우드 초호화 감독을 시작으로 이명세나 박광수 감독까지 아우르고 있다. 그리고 그 분석 또한 자못 진지하다. 카메론 감독의 '터미네이터' 씨리즈를 카메라 앵글을 따라 서술하기도 하며(그는 패닝을 비롯해 트랙킹이나 달리 등을 설명한다), 인물분석과 서사의 구도 등을 통해 흥행요인을 꼼꼼히 살핀다.

그리고 폴 버호벤 감독의 '원초적 본능', '로보캅', '토탈리콜' 등의 흥행위주 작품이 실제로는 상당히 이론적인 심리게임이 수반되어 있음을 잘 지적해주고 있다. 즉, 아마추어들이 할리우드 흥행영화라도 이론적인 구조가 탄탄하게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속살을 한꺼풀 벗겨서 파악하는 요령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라, 팀 버튼, 올리버 스톤, 스파이크 리와 같은 컬트적이고 저항적이 감독들의 작품 또한 분석하고 있다. 그들의 작품은 흥행과 예술성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잘 공부하고 나면 저자는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의 거장인 스탠릭 큐브릭 감독의 '시계태엽장치 오렌지',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등을 분석한다. 이 정도 작품을 볼줄 안다면 이제 자칭 '아마추어 영화광'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이명세 감독과 박광수 감독의 작품 역시 분석함으로서 한국 영화의 현상황도 잘 짚어주고 있다. 물론, 지금은 한국영화가 붐을 일으켜 할리우드의 영화를 능가하고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영화는 흥행성과 예술성에 있어서 다소 취약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다소 잊혀져버린 영화들이지만, 영화광일수록 그런 영화들을 놓쳐서는 안된다. 이 책을 통해 한 번 공부해보시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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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역사 - 현대 프랑스 철학총서 11
미셸 푸꼬 지음 / 인간사랑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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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는 이제 푸코 연구자들에게는 고전이나 다름없는 책이 아닐까?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특히 이 책을 <감시와 처벌>과 같이 읽고 있으면 그가 얼마나 탁월한 통찰력을 가진 이론가인지 새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이 책 <광기와 역사>는 푸코가 방대한 분량으로 西洋史에서 광인이 억압되고 탄압되고, 수용과 감금되었던 역사를 통해 이성의 優性性을 폭로한다.

아마 이 책은 그래서 여전히 이성에 대한 내재적인 비판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학파 계열―특히, 하버마스―이나 급진적 구성주의와 같은 담론들과 달리, 프랑스 철학만의 독특한 입장을 보여준다. 즉, 그것은 후기 구조주의의 사상가들이 전면적으로 혹은 은밀히 가지고 있는 이성에 대한 외재적인 비판의 입장이다. 데리다가 '로고스중심주의'라는 용어로 서양철학사에 있어서 이성의 우월성을 비판하고, 들뢰즈가 헤겔을 표적으로 동일성의 철학을 비판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푸코의 연구는 아마 김현 선생님을 필두로 후기 구조주의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최초였고, 특히 이 책은 더더욱 먼저였다. 그만큼 <광기의 역사>는 푸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바로 '권력' 개념을 알 수 있고, 더 나아가 지식과 권력이 어떤 착종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혹자들은 푸코의 권력 개념은 저항의 가능성이나 궁극적인 해방의 가능성이 이론적으로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푸코의 이론이 가지는 탁월한 실증성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임상의학의 탄생>등에서 보여줬던 논의들 또한 경탄할만하기 때문이다. 즉, 그는 지식이 어떻게 권력과 함께 구성되는가를 '미시정치학'을 통해 세밀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실체로서 권력을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표면에서 권력의 징후를 들춰낸다. 그러므로, 저항에 대한 논의는 어쩌면 그의 목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발견해 내었듯이, 푸코는 이성의 의도적인 억압을 발견해내었다. 아니, 그것은 이성의 한계가 드러난 지점일 수도 있겠다. 즉, 이성의 경계에서 이성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하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푸코는 바깥(dehors)을 사유했다고 할 수 있다. 푸코의 <광기의 역사>는 서양사에 정통한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하는 인물과 서적이 많이 등장한다. 그만큼 푸코의 세밀함과 박학함을 동시에 알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물론, 이 책을 덮고 난 후에 大悟한 느낌이 드는 것도 빼 놓을 수 없다. 한 번 읽어보셔도 후회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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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오늘 - 생각하는 글들 3
울리히 뵘 지음, 이진우 옮김 / 이끌리오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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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오늘>은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들이 국영방송에서 대담을 했던 것들을 편집하여 출판한 책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울리히 벡, 위르겐 하버마스, 한스 요나스, 칼 프리드리히 폰 바이체커와 같은 지식인들이 총출동한다. 특히, 고령인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까지 나와서 진지하게 토론에 임했다. 그만큼 이 토론은 성실했으며, 권위를 지닌다고 볼 수 있겠다.

내가 이 책을 샀던 이유는 솔직히 이 책에 대한 내용을 잘 알고 있어서는 아니었다. 우리 나라에는 왜 이러한 토론이 없는지 아쉬웠기 때문에, 독일이 어떤 형태로 토론을 하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그들이 어떻게 토론을 하게 되었으며,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진행하는지를 알면, 우리나라에도 그런 시행을 건의해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흔히 지식인들은 사회가 항상 열려 있어야 하며, 활발한 토론과 계급없는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들은 이런 사회는 이상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스스로 피해나갈 수 있는 장치까지 마련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학자들이 발벗고 나서서 그러한 토론을 만드는 일을 나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얼마전부터 겨우, 김용옥 선생이 황금시간대에 강연을 했던 정도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식인들이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니다. 토론문화의 부재를 항상 외치면서 그들은 독일과 같은 토론을 하지 않는다. 꼭 이 책 '철학의 오늘'을 읽어보셨으면 한다.

이공계 계통의 토론도 있으면 물론 좋겠지만, 그것은 전문적이다. 그러나 정치영역에 대해 그 입법자나, 해방 방면에 권위있는 교수들이 나와 토론을 하는 모습은 정말 보기 좋을 것이다. 그런 방송을 본 국민들이 토론 문화를 배울 수 있고, 지식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적인 내용이 아니더라도, 사회의 공공규범을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좋겠고, '동양의 윤리 사상을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가'와 같은 논의도 좋을 듯하다.

문제는 실천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훌륭한 지식인들인 국회의원들까지도 점잖은 토론을 하는 모습을 잘 보지 못했다. 고언과 폭력, 권위와 강압만이 있는 사회가 한국 지식인의 공론영역이다. 따라서 나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 몸으로 토론문화를 습득할 수 있기를 바란다. 토론이야말로 각자 서로 다른 의견들을 절충하고 합리적인 의견을 구성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나는 이 책에서 많은 점을 배웠고, 그들의 품격있는 토론 문화에 감탄했다. 그리고 부러웠다. 우리나라의 TV에는 대체 드라마와 쇼프로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론매체와 지식인이 발벗고 나서 토론채널을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 우리 국민의 교육수준이 높은만큼 어느 프로 못지않은 시청률 또한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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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을 넘어서 니체전집 7
프리드리히 니체 / 청하 / 198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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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니체의 책을 처음으로 읽었던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다. 독서실에 그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의 책을 가지고 가서 읽었었다. 그때에는 너무 어렸기에 그의 주장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무엇인가 저 아래에서 솟구치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서 니체를 배웠다. 그 '힘'은 그의 '권력에의 의지(Wille zur macht)'에 나오는 'Macht'임을 알았고, 또 그의 '계보학적 비판'에 대해 감탄했다. 플라톤-데카르트-칸트-헤겔로 이어지는 주류 형이상학자들의 철학을 전복시킨 이론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즉, 계보학적 비판은 기존의 형이상학이 가지고 있는 가치에 대해 그것이 '누구(Qui)?'를 위해 존재하며 또한 타당성을 지니는 것인가를 비판한다. 그래서 니체는 이러한 기존의 가치와 도덕을 부정하며 그것을 넘어서는 위버멘쉬(超人, Ubermensch)를 제시했던 것이다.

'거짓을 삶의 한 조건으로 인정한다는 것, 그것은 통념화된 가치 개념에 대한 다소 위험스러운 거부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런 거부를 감행하는 철학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선악을 넘어서 있는 것이다(28쪽)' 결국, 그에게 있어 계보화된 도덕이야말로 통념화된 가치들의 뿌리로서 '권력'이다. 그리고 니체는 이에 대해 새로운 '힘(권력)'인 Macht를 제시한다. 니체 자신은 그 구분을 두지 않았지만, 스피노자와의 관계를 잘 검토하고 그의 原書를 문헌학적으로 고증한다면, 그 '힘'의 개념은 pouvoir[potestas]/puissance[potentia]로 분화되어 나타내는 것이 더 명확할 것이다(여기에 대해서는 37쪽 affekt[스피노자의 affectus] 개념의 번역에 대한 편역자의 주석 참조).

<선악을 넘어서>는 결국 '도덕의 계보'에서 행해지는 계보학적 논의에 대한 구체적 밑그림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이 책은 형이상학의 전복은 어떻게 감행되는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여기서의 선악 개념을 동양의 아름다움과 추함 개념과 비교해 보는 것도 상당히 흥미로운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김용옥 선생의 빼어난 단행본을 추천한다. 결국 이러한 비교는 동서양의 美學에 대한 관념의 비교이기 때문에, 좋은 연구 소재가 될 것이다)

니체의 형이상학 전복의 연구를 잘 공부해 본다면 현대의 후기 구조주의, 특히 푸코-데리다-들뢰즈가 제시하는 포스트 니체적인 연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사상은 하나같이 거대한 전복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푸코는 계보학적 연구의 측면에서, 데리다는 해석학적 측면에서, 또한 들뢰즈는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니체를 이어받아 탁월한 연구를 수행했다. 이 책 <선악을 넘어서>를 잘 읽어보면 니체에게서 난해한 개념으로 다가오는 '예술'이 어떻게 계보학적 논의의 주축이 되는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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