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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입문
R.카르납 / 서광사 / 1993년 3월
평점 :
품절
현대철학을 크게 구분하자면, 분석철학, 현상학, 사회비판이론, 해석학, 구조주의, 실존주의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 분석철학에는 논리 실증주의와 논리 경험주의로 불리는 일련의 논리적이고 언어분석적인 철학 조류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루돌프 카르납이다. 사실, 나는 철학을 전공하면서도 카르납의 책은 많이 읽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카르납이 언급하는 과학철학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 상당한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카르납은 이 책에서 과학 내부의 문제를 직접 다루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그가 언급하는 과학철학은 가스통 바슐라르나 한스 라이헨바하의 과학철학 저서와 같은 형식을 띤다. 즉, 철학의 성격이 그렇듯이 과학의 성과에 대한 과학적 비판을 가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과학에 대해 외재적인 관점에서 과학의 전제와 경계를 다시 한번 반성하게 한다는 점에서 과학보다 더욱 '과학적'이다. 진정 과학이 엄격한 법칙성과 무모순성을 추구하는 학문이라면 과학철학이야말로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실재 과학의 성과는 귀납적 추리에 의한 법칙과 가설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이런 성격을 부각시킨다면 과학철학은 실증 과학과 다르다)
이 책에서 카르납은 많은 과학의 전제들을 쉽고 간명하게 드러내준다. 그것은 과학의 성질인 법칙, 설명, 그리고 확률의 개념에서부터, 과학적 실험의 토대가 되는 측정과 정량성으로의 환원을 잘 설명하고 있음을 통해 보여진다. 더 나아가 그는 물리학과 같은 과학이 토대로 하고 있는 경험론적 인식론의 공간과 시간에 대해 개괄하고 있으며, 과학의 법칙화에 필연적으로 논구되어야 할 문제인 인과관계와 결정론에 대해서 되묻는다. 그 관계를 탐구해야만 법칙의 필연성을 논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론의 '이론'에 대한 분석은 상당히 어렵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두뇌를 뛰어넘는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적인 세계가 실재한다고 하는 것보다, 우리의 사고가 과학적인 틀로 세계를 합리적으로 지금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과학을 탐구한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따라서 과학적 실재로서 세계가 아닌, 그러나 그것 또한 실제하는 세계인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도 인간의 두뇌가 접근할 수 있기 위해서는 마땅히 과학철학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카르납의 이 책은 멋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