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 - The Condition of Postmodernity
데이비드 하비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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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을 내가 읽게 된 계기는 하비의 공간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일련의 참고문헌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생겼다. 나의 관심사는 도시공간에서 거주지가 분화하면서 계층적 집중화가 일어나는 원인에 대한 다차원적인 변수를 끌어내고 정리하는 것이었는데, 그 가운데 나를 가장 매료시켰으며, 또 실제로 가장 유효한 원인이라 생각된 것이 하비나 르페브르, 손더스 등을 통한 일련의 자본주의 도시공간에 대한 연구와 푸코의 '권력'과 '배치' 개념이었다.

푸코는 사회학이나 지리학 뿐만이 아니라 워낙 많이 소개되어서 잘 알겠지만, 실제로 공간에 대한 연구는 짐멜에서 시작해 생태학이나 고전경제학적 관점을 거쳐 맑시즘적 관점에서 가장 만개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연구로서 쓰여진 리요타르의 저작과 더불어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최고의 책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철학적으로 볼 때, 이 책은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지고 있는 시뮬라크르, 판타즈마의 차원을 수많은 도시공간에 대한 사진을 통해서 잘 보여준다.

그리고, 자본이 자기증식하기 위해서 도시공간을 어떻게 압축하는지도 잘 보여준다. 그렇다고 하비가 전적으로 맑시즘에 경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들뢰즈를 비롯해 철학, 사회학, 예술 방면을 두루 섭렵하며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지고 있는 징후를 아주 탁월하게 분석한다. 그래서 이것은 많은 인정을 받을 수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는 주장을 싣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도시공간 속에 구조화되어 있는 오늘날 세계를 움직이는 자본과 권력의 힘을 파악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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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를 수 있는 권리 - 개정판
폴 라파르그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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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 공간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제약이다. 아니 차라리 그 제약을 알고 그에 적응하는 것이 우리를 가늠하는 척도이다. 훌륭한 사원이고 되고 똑소리나는 주부가 되는 것이다. 국가나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같은 거대구조의 통제가 그렇듯이, 시대의 에피스테메가 가지는 이데올로기적 성질이 그렇듯이, 일상의 미시적 공간도 철저하게 나와는 박리되어 있다. 라파르그는 그것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래도 자본주의가 지금처럼 교묘하진 않았던 시대, 즉 자본주의가 익숙해지지 않았던 시절 여기에 두드러기를 일으켰던 우리 조상들의 고투를 배경으로 라파르그는 맑시즘의 의미를 다시 보여준다. 그것이 어째서 영원한 우리의 화두인지를 보여준다.

우리의 작업장과 일터는 더욱 각박해지고, 우리의 여가는 작업장의 일들을 보충하는 시간과 장소가 된다. 아니, 차라리 여가 자체가 여가인 것처럼 교육받았던 것들일 뿐이니까, 그나저나 별반 차이가 없다. (예컨데, 지금 여가로 공인된 놀이들 대다수가 나는 재미없다)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찾고 싶은 것처럼, 본연의 자연스러움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처럼, 더 절망스러운 것이 지금의 일상이다. 복원을 말할 것이 없는 우리의 공간처럼, 실천도 없는 것이 지금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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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60
오규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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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의 시집에 대해서는 이 시집 뒤에 붙은 김현의 평이 정확하다. 무거움과 가벼움. 그렇다. 그는 이것이 교차되는 과정을 현대의 물상화된 공간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워즈워드 같은 일곱색 간지러운 삼각팬티'와 같은 풍자와 조롱이 등장하기도 한다. 고상함은 얼마나 일상적일 수 있는지!

개인적으로 나에게 이런 시는 유쾌하지 못하다. 스스로가 얼마나 더렵혀져 있는지를 확인해야 되기 때문이랄까? 자신의 시의 몸뚱아리를 깨끗하게 닦아야 하는 시인은 그래서 더 슬프다. 구구절절한 세계 속에서 어떻게든 박리되어 나오는 심상을 다시 그 속으로 집어넣어야 하는 작업과 같이, 오규원은 두 개의 세계 속에서 길항한다. 그러나, 그것은 시인의 마음 속의 두 세계인지, 본디 그러한 두 세계인지, 아니면 한 세계 속의 두 양태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 이것을 판별해나가는 과정이 시인의 시작업이라 생각된다. 이질적인 세계들이 이곳엔 너무나 많아 모두다 이해하고 넘어가기조차 힘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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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시간 창비시선 152
백무산 지음 / 창비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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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읽다가 좋은 부분이 있으면 그 페이지 끝단을 작게 접어놓는 버릇이 있다. 많은 책을 읽는 과정 속에서 생긴 작은 버릇인데, 특히 시집을 읽을 때는 유용하다. 시란 것이 여러번 읽고 되새겨봐야 그 의미가 잡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백무산의 세번째 시집 <인간의 시간>에는 유독 접어놓은 부분이 많다. 이 시집을 산 후 순식간에 읽어내렸고, 또 많은 시들이 맘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시집을 지금 다시 꺼내들었다.

나는 박노해를 통해 노동문학을 알았고, 백무산을 통해 노동문학으로서 시를 알았다. 난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문학 역시 실천을 수반하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지식이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는 것을 끊임없이 의식적으로 피해야 한다면, 문학 역시 하나의 가상과 상상으로서 부유하는 것을 궁극적으로는 피해야 한다. 시대상을 반영하고, 당대의 질곡들을 담지하는 글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실천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그것은 간접적이어도 된다.

그러나 백무산은 직접적이고 굵직하다. 그래서 그의 시는 시적이지 않고 오히려 처절하다. 내가 당신의 시에 대해서 회답하는 길은 그 목소리를 잊지 않는 것임을 안다. 외쳐야 할 곳에서 당당하게 소리지르는 것임을 안다. 시인이여, 당신을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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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갈 날짜를 세어보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152
이진명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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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명의 시집은 조용하고 깊다. 특히 이런 느낌을 주는 것은 그가 노래하는 내용과 소제들이 던지는 인간다움이다. 나는 시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시집, 이 하나의 시집만은 좋아한다.

소란스럽고 바쁜 낮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나'에 대한 명상들이 어쨌거나 살아가는 동안 면면히 일어나는 것처럼, 그는 이런 깊이를 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집이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미래', '집', '운명', '고행' 등의 단어와 그 속에서 일어나는 한 세상의 외로움은 '공감'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리라.

나는 이렇게 살았소. 당신은 어떻소. 서로 묻고 이해하는 그런 과정, 그리고 이런 과정을 기다리는 혼자만의 시간들. 그의 시집에 대해서, 그리고 그의 시세계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이 시집이 가지고 있는 호소력을 나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내가 돌아갈 날짜는 얼마나 남았을까? 세어보는 만큼 희망이 남는다. 어떤가?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은은하게 말하는 시집을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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