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윤리의 합리적 모색
박종대 외 지음 / 민지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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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파울 뮐러-슈미트가 말하는 '합리적'이라는 말은 '근거지워져 있는, 이해할 수 있는, 이성적 사유 앞에서 정당화하는 것, '이치에 맞는 것'을 의미'(14쪽)한다. 그것은 정치에서 도덕적 요청들을 사유하면서 파악해야 할 핵심적인 개념이다. 바로 당위적 질서를 존재에 근거지우는 문제라는 말이다. 저자는 그 방법으로 추상을 통하여 실재를 인식하는 이론과 그렇지 않은 이론들을 설명하면서 인식론적 기초를 세운 다음에 당위 질서에 기초하여 사회 윤리학에서의 합리성을 논구한다. 그것은 사회 윤리의 객관성과 공동선, 사회적 권위, 사회적 행위에 의한 공동선 명법의 실현 등으로 분류되어서 설명된다. 이런 사회적 행위 원리가 공동선 이념을 통해서 구현되면 사회 윤리학은 정치 윤리학일 수 있을 것이다. 즉, 국가 질서의 정초와 민주주의에서 정치적 행위를 정립하는 것이다. 조금 어렵긴 하지만, 저자의 사유폭이 넓어서 배울 것이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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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대연쇄
아서 O. 러브죠이 지음, 차하순 옮김 / 탐구당 / 198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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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사 혹은 관념사로 대변되는 러브조이의 철학을 대표하는 책이다. 그리스 철학에서 보여지는 존재의 연쇄관념에서 시작해서, 중세사상에서의 내적 대립, 라이프니츠와 스피노자에게서의 충만의 원리를 거쳐, 18세기의 낙관주의와 생물학에까지 존재의 충만과 연쇄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존재라는 한 관념이 전 유럽의 사상사를 통해서 어떻게 생성되고 변화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모든 분과학문에 걸쳐서 인간 정신의 영역까지 이르고 있는 편재적인 관념이라 할 수 있다. 러브조이는 이 책에서 모든 피조물은 '이행'과 '변이'의 단계를 가지며, 그런 존재의 사다리 속에서 충만해 있다고 본다. 그것은 차이를 가진 계층적 존재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연속적인 것으로 세상의 질서와 조화를 보여준다. 플라톤, 중세 그리스트교, 신플라톤학파를 거쳐서 케플러와 쿠자누스, 브루노에까지 나아간다. 특히 러브조이는 스피노자의 범신론과 라이프니츠의 충분이유의 원리를 언급하면서 초월적이면서 자기 충족적인 서양 존재론의 핵심을 보여준다. 뛰어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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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케스 - 인상주의를 예고한 귀족화가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92
자닌 바티클 지음 / 시공사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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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케즈의 그림은 리얼리티 그 자체다. 예를 들어, '계란을 부치는 노파'는 각 오브제의 입체감을 그것들의 특성에 따라 잘 살리고 있으며, 차분한 구도에 형체에 대한 빛의 작용과 원근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온 그리스도' 역시 그런 의미에서, 훌륭하다. 특히, '세비야의 물장수'에서 보여주는 크리스탈 유리잔과 항아리의 대비는 감탄스럽다. 그는 정말 빛을 이용하고 색을 병치하여 최대한의 입체감을 살려내는 작가이다. 나는 그림에는 문외한이다. 푸코의 '말과 사물'에서 그가 벨라스케즈의 '궁녀들' 그림으로 시대의 에피스테메를 보여줬던 것에서 벨라스케즈에게 흥미를 느꼈을 따름이다. 그는 17세기 에스파냐 미술을 대표하고,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주의의 선구자였다고 한다. 주로 근엄한 초상화를 그렸지만, 빛을 통해서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 영향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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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 (완전판) - 0시를 향하여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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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오는 밤기차에서 이 책을 읽었다. 책을 좀 빨리 읽는 편이기 때문에 2시간 정도 걸렸는데, 초반부에는 좀 지루했다. 기차 안이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다른 애거서 크리스티의 책보다는 이야기의 전개 속도가 느렸다. 그러나 약 170쪽 이후부터는 살인이 전개되고 속도도 빨랐다. 그리고 결말까지 이어지는 그 특유의 반전의 반전. 추리소설 작가는 그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 잘 모르지만, 독자는 아마 탐정이 되어보는 기분으로 그것을 읽을 것이다.

그러나 유능한 추리소설가일수록 독자의 추리를 빗나게게 만든다. 물론 아주 치밀하고, 교묘하게. 이 책은 그런 책이다. 그리고 책의 제목처럼 모든 사건이 '0시를 향하여' 있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뒤로 갈수록 손을 놓기가 어려워진다. 나의 생각으로는 이 책은 거꾸로 읽어도 흥미로운 것이다. 거꾸로 읽으면서 사건의 발생과 전개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동기와 의지, 그리고 내면의 복잡함이 어떻게 살인사건이라는 하나의 문턱을 넘게 되는지....그것을 아는 것이 아마도 추리소설 너머의 범죄 그 자체에 대한 이해를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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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라는 괴물
니시카와 나가오 지음, 윤대석 옮김 / 소명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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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책이다. 일단 이 책은 일본인이 쓴 군국주의, 민족, 국가주의 담론에 대한 책이라는 점에서 한국인이 마땅히 읽을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국가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 시민들의 정체성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마땅히 읽어야 한다. 사실, 나는 전자보다는 후자의 측면에서 이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사실 나는 내각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그에 수반되는 애국심이 아주 미약하다. 그것이 필연적이어야 하는 경험도 없었고, 그런 판단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똑똑한 사람은 다 유학에 이민이고, 조국이라고 남아있는 이곳도 부정과 부패 뿐이다. 그래서 나는 도대체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느낄 수 없고, 느끼기도 싫었다. 이 책은 물론 그런 의미에서 불평을 하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내셔널리즘 국민의 탄생 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즉, 공간과 시간, 습속, 신체, 언어와 사고가 국민화 되는 과정을 묻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경제, 국가, 국민, 문화의 통합 속에서 가능한데...거기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문제가 많다. 책 자체는 어렵고 전문적이다. 그러나, 논쟁적이고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기 때문에 교양인이라면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이 세상에 국민 아닌 이는 없기 때문에 더더욱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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