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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의 쉐이크 - 영혼을 흔드는 스토리텔링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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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탁환의 쉐이크│김탁환│다산책방│2011.08.16

 

리뷰를 쓰는 일이 점점 힘겨워집니다. (그만둘까봐요..-ㅁ-;;) 이 짧은 리뷰 한 편에도 나는 몇시간을 허망히 흘려 보내니 문득문득 아니 사실은 거의 모든 순간에 나는 도대체 무얼하고 있는가, 의문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닙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딱히 무엇을 쓰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더군다나 나는 어릴 때부터 상상력이 뛰어난 아이는 아니였으니까 그저 망연해진 - 어린 날에 수도 없이,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바뀌던 - 장래희망처럼 그렇게 마음 한 켠 접어 두었지요. 그런데 꿈틀거려요. 그저 어린 날의 호연했던 꿈이려니 했던 것이 그러나 나의 끄적임은 여전히 마뜩잖으니 자꾸 화가 나는 거죠. 답답하고. 요즘 내 또래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접하게 되면서 나는 작아지고 작아져 한 줌 재가 됩니다.

p.76 

'SHAKE'는 둔중하고 치명적인 단 한 번의 충격이라기보다는 언제 생겼는지도 불분명한 실금과 같은 두려움일지도 모릅니다. 단 한 번의 큰 충격은 예측하여 방어할 수도 있지만 무수한 실금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져 무너질지 가늠하기 어렵지요. 제가 주장하는 'SHAKE'는 작고 부족해 보이지만 결국 한 인간의 영혼을 새롭게 태어나도록 만드는 예술적 공포입니다.

그런 날들에 <김탁환의 쉐이크>를 만났습니다. 사실 이름이야 너무도 유명한 작가니까 많이 들어봤지만 작품은 접해보지 못해서 - 아, 영화 <조선명탕점:각시투구꽃의 비밀>을 보긴 했네요. - 에세이 분야 신간도서라기에 부담없이 집었는데 책은 영혼을 흔드는 스토리텔링에 대해 이야기하네요. 그렇게 만난 김탁환 작가님은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작가라기 보다 노력형 작가였어요.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관련 서적을 100권을 읽는다고 하시니, 그 이야기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노력을 차마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4계절 24코스의 여정은 가벼운 산책과 같은 봄 코스, 이야기꾼이 되고자 준비하는 여름 코스, 본격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가을 코스, 퇴고의 과정인 겨울 코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각 코스마다 마련된 게스트하우스에는 교과서에 단원마다 실려 있던 연습문제처럼 그냥 스쳐 지나지 않기를 권고하네요. 물론 저는 리뷰에 쫓겨 질문만 읽고 지나쳤지만 꼭 다시 천천히 게스트하우스를 다녀와야겠어요.

리뷰를 쓰면서 특히 문장의 한계에 자주 부딪힙니다. 쓰고자하는 것을 의도대로 표현하는 것이 매우 맹랑한 일임을 수도 없이 마주합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어감이 좋은 단어나 뜻이 생소했던 단어들은 네이버 어플로 검색해서 화면 캡처를 해서 사진 파일로 저장해둡니다. (아, 참 편리한 세상이 되었군요. 그래서 더욱 더 게을러지지요) 공책을 만들어 정리해야지 하면서도 그냥 사진파일로 쌓여 가는데 김탁환 작가님도 단어장을 만들고 계시네요. 그리고 내가 리뷰를 쓰는 이유 한가지를 확인시켜 줍니다. shake, 단 한 사람일지라도 그 한사람이 나에게 한정될지라도 change가 아니라 아주 미미하더라도 shake 그것이네요. 맞아요. 나를 그리고 당신에게 아주 미세한 흔들림을 만든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p.84

최대한 결정을 늦추며 경우의 수를 전부 따지고,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하며 걸어가세요.

머뭇거리는 것은 결코 겁이 많거나 용기가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녀, 어른이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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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 - 김병만 달인정신
김병만 지음 / 실크로드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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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는다│김병만│실크로드│2011.08.10

 

달인이라고 쓰구요, 피나는 노력이라고 읽어요. 정말 오랜만에 한숨에 읽히는 책을 만났습니다. 어려운 말로 뻐기지도 않구요, 안달나게 하며 숨기지도 않아요.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내어 놓고 이야기해주니까 읽는 마음이 가볍고 금세 빠져들어요. 나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아요. 예를 들자면 늘 이슈의 중심에 서 있는 '무한도전'보다 '남자의 자격:청춘합창단'이 좋아요. 나는 '개그콘서트'보다 '인간극장'이 좋아요. 그러니까 나는 웃음보다 눈물에 약한 사람이예요. 기뻐서 울고, 슬퍼서 울고, 화가 나서 울고 울보예요. 김병만의 웃음에서는 눈물이 묻어나죠. 개그콘서트의 '달인'이라는 코너는 스치듯이 몇 번 봤어요. 그는 정말 묘기를 부리네요. 아ㅡ 신기하다, 대단하네 그랬어요 그뿐. 출발 드림팀에도 가끔 나오던데 운동신경이 좋은가보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에게 반한 건 <김연아의 키스앤크라이>에서 그가 빙판 위에 무릎을 꿇는 순간이었어요.

이 책에도 그 순간이 담겨 있어요. 김병만의 발목은 지금 뼈에 금이 가 있어요. 그것도 양쪽 모두. 그는 그 상태로 달인을 연기하고 스케이트를 신었던 거예요. 혼신의 연기를 다하고 너무 아파 주저 앉을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해요. 스케이트화도 신을 줄도 모르던 그가 빙판 위에서 사람들은 웃기고 울려요. 슬픈 장면이 아닌데 뭉클, 해요. 짐작 할 수 있거든요 그가 어떤 통증을 참으며 이루어 낸 것인지. (그는 스케이트 초급 심사에도 도전했어요.) 그는 그렇게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총 16번의 오디션에 실패하고 KBS 공채 개그맨이 되었습니다. 아니 17번의 도전이었네요. 될 때 까지 하는 것, 남들이 안된다고 아니라고 해도 뜻을 굽히지 않고 해내는 것, 그것이 그의 삶에 모토(motto)입니다.

p.89

" 병만아, 나는 '성공했다'도 없고, '실패했다'도 없다고 생각해. 실패가 뭔가? 자기가 원치 않는 결과가 나왔을 때 실패했다고 말하지. 실패가 규정되어 있나? 한정되어 있나? 내가 실패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실패가 아닌 거야.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왔더라도 자기가 어떤 만족을 느꼈다면 실패라고 할 수 없는 거야. 고생도 마찬가지다. 고생이라고 생각 안 하면 고생이 아닌 거야. 세상에는 말이야..."

그가 경험한 가난은 단순히 비싼 옷을 못입고 좋은 차를 타지 못하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였습니다. 양을 최대한 많게 하기 위해 퉁퉁 불린 라면을 먹고 - 그조차도 넉넉하지 않았어요 - 몸을 뉘일 곳이 없어 노숙을 합니다. 겨우 얻은 옥탑방엔 아침이면 고드름이 얼어요. 조금 형편이 나아졌던 옥탑방엔 아침에 옷을 입으면 바퀴벌레가 후두둑 떨어집니다. 빈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다 거지라는 소리도 듣지요. 그의 가난은 그렇게 절대적인 생활의 누락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바닥부터 올라와 거머쥔 성공이기에 그는 지금 더욱 빛이 납니다.

그는 이제 모두가 인정하는 성공한 개그맨입니다. 이제는 많은 프로그램에서 쉽게 그를 만나죠. 하지만 그는 여전히 금이 간 발목으로 통증을 참고 있습니다. 발목 수술을 하면 걷기까지 최소 3개월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동안 대중에게 잊혀질까 두렵다고 말합니다. 이제 좀 쉬어가는게 좋지 않겠냐고, 모두가 당신을 기억할 것이라고 아무도 잊지 않을테니 좀 쉬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에게 지금 얻은 행복이 시간이 얼마나 절박했고 그랬기에 얼마나 즐거운지 알아서 박수를 보내기로 합니다. 그래도 조심하세요! 이 책을 읽어보세요, 그럼 당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지 알게 될 테니까요.  


 

P.90 

"연기자로서의 나의 꿈은 희극배우지만 아들로서의 꿈은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는 겁니다."
 

 



녀, 어른이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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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1초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리가 사랑한 1초들 - 곽재구 산문집
곽재구 지음 / 톨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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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사랑한 1초들│곽재구│문학동네│2011.07.25


란 하늘에 바람이 몽글몽글 피운 뭉게구름을 넋놓고 바라보는 1초, 요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입니다. <포구기행>이라는 그의 책을 몇년 전 낡은 증고서점에서 구입했지만 읽지 않았던터라 낯설은 그가 사랑하는 1초는 어떠할까 궁금했습니다. 이거야! 라고 콕 찝어 말해주면 좋을텐데 그는 그저 담담히 산티니케탄에서의 그의 생활을 들려줍니다. 한때는 열망하였던 나라, 인도! "노프라블럼!"을 외치는 인도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이제는 좀 시들해졌던 참입니다. 별거없는 일상이 참 재미가 없어서 지루한 책장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p. 95 사람을 좋아하고 모든 생명들에게 큰소리로 인사하기 좋아하는 그가 왜 어두컴컴한 흙집 속에서 한 생애를 살아야 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를 생각하면 현생에서의 내 삶이 많이 다행스럽기도 하고 많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쿵, 하고 묵직한 무언가가 내려앉습니다. 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덧없음에 지치던 날들이었습니다. 왜 내게 주어진 것이 이리도 쓴지, 이유를 찾고 싶어서 안달이 났더랬는데 그들에 비하면 나는 천국에서 앓은 소리를 했던 꼴입니다. 그렇게 나는 깊이도 그의 이야기에 빠졌습니다. 달걀을 바닥에 깨트리면 달걀프라이가 된다는 그 더위는 상상하기만 하여도 숨이 막힙니다. 릭샤를 타고 비오는 거리를 달리고 싶어집니다. 조전건다 나무에서 풍기는 달빛냄새도 궁금합니다.

특히나 마시(가정부)들과의 고군분투한 이야기들에는 피식피식 깨알같은 웃음도 쏟고, 아하! 감탄도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고 이야기에 빠졌습니다. 시인이라서 그런지 담백하게 잘 정돈된 언어로 읊조리는 그의 이야기는 나를 산티니케탄에 옮겨 놓았습니다. 2층 베란타 바깥 난간에 나란히 앉아 샌드위치를 만들어 티타임을 갖는 마시 곁에 앉고 싶습니다. 그렇게 다름,을 깨닫고 인정해가는 과정들에서의 행복이 내게도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사라(인도 생활이 사 년째인 한국 아가씨)는 그녀의 마시가 500루피(10루피=250원, 콩을 야채와 볶아 루띠라 부르는 손바닥 크기의 공갈빵 4개, 짜이 한잔을 먹을 수 있는 가치예요. 그러니 500루피는 정말 큰 돈입니다.)를 훔쳤는데, 돈을 보이는 곳에 둔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큰 돈을 보았다면 자신도 욕심이 날 것이라고 마시를 감쌉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들이 소복히 쌓인 책입니다.

p.218

내가 보기에 소루밀라는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유쾌한 일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인도의 흙과 바람과 햇살이 만든 설움이지요.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그냥 다람쥐나 염소나 소처럼 살아온 것이지요. 뭔가 물건이 많이 있으면 욕심을 내지만 그때뿐이지요. 없으면 그만이고 있으면 잠시 가져다 쓰는 것입니다.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갈 필요도 없고 고용주의 눈에 들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가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삼 주의 긴 휴가 끝에 일주일쯤 건성건성 일하고 다시 사흘 쉬고 그게 고용주와의 계약 이행에 심각한 문제가 되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지요. 안다면 아무도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p.298

조이렙의 바울 축제에 갔다가 9인승 지프에 서른 명도 넘는 사람들이 탄 것을 본 적이 있지요. 스물여석 스물일곱 세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셈을 하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계속 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지붕 위까지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의 모습이 유쾌한 콩나물시루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트럭에 가득 찬, 버스의 지붕을 가득 메운 인도인들 중 인상을 지푸리는 이를 나는 본 적이 없습니다. 길을 가다 손을 흔들면 그들 모두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지요

 

한국인들조차 그를 마니푸르인(미얀마 국경 가까운데 사는 인도인들을 지칭하는데 한국인들과 흡사하단다)으로 착각하고 길을 물을 정도로 그는 그 안에서 이질감이 없습니다. 내게 여행이라 함은 그 곳의 명소를 찾아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는 여행객이 되는 일이였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차츰 바뀌어갑니다. 그 곳의 삶 안에 놓인 생활인이 되고 싶습니다. 물론 내게 지금은 그만큼의 여유로움이 없으니까 살아보는 것은 어렵지만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그 곳의 커피숍을 찾는 일입니다. (나는 커피도 좋아하니 일석이조) 여행까지 가서 커피숍에 앉아 시간을 때우는 것이 아깝지 않느냐 누가 내게 물었지만 나는 시간을 때우는 것이 아니라 채웠습니다. 나도 안식년을 맞이하면 꼭 짜이 한 잔 하러 가야겠군요.

달빛이 깨끗하고 바람이 서걱거리던 가을 밤에 모든 아름다운 1초들의 가꾸어 낸, 풍요로운 생을 마주했습니다. 그것은 물직적인 풍족은 차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행복입니다땅과 바람이 키운 인도인들의 삶으로의 그 너그러운 시선을 닮은 그의 이야기가 참으로 평안합니다.



 

p.345

삶이란 원래 이런 거야. 이렇게저렇게 다 헤맨 뒤에야 지혜의 길에 도달할 수 있는 거라구,

 






녀, 어른이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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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기행문 - 세상 끝에서 마주친 아주 사적인 기억들
유성용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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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방기행문│유성용│책읽는수요일│2011.06.20 

 

p. 91 한마디로 다방은 배울 게 별로 없는 곳이다. 물론 커피도 맛없고. 하지만 그곳은 어쩌면 사라져가는 걸들과 버려진 것들의 풍경을 따라가는 이정표처럼 여겨졌다. 나는 그 길을 따라 가고 있었다.

방? 의아함 한편으로 반가움이 넘실하게 차오르는 단어예요. 물론 나야 다방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야 없지마는 아직도 우리 시골 마을에 가면 다방이 제법 제 몫을 해서 내게도 김양 언니가 낯설지 않고 괜스레 반갑습니다. 하지만 생활여행자, 라는 맛깔나는 닉네임을 가진 그가 사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마냥 부럽기도 하였습니다. 도대체 어떤 복을 차고 나오면 이렇게 여행을 삶, 으로 삼을 수 있을까 하는 뭉둥그레한 시기(猜忌)가 놀부 심보마냥 붙어 '네 이야기 좀 들어볼까?' 하는 뿔따구 난 비루한 맘도 있었지요. 그렇게 따라간 그의 걸음은 풍류(風流)가 번지지도 혹은 반짝반짝 빛을 낼듯 내지도 못하고 오히려 한 여름 살이 쩍쩍 붙어 버리는 낡은 인조 가죽 쇼파의 찐뜩함, 그러함이였어요. 작가는 말했어요.

"텅 비어 버렸다. 그래서 꽤 오래 나는 저절로 살아져버렸다. 누구는 나를 보고 속세의 어여쁜 액세서리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소외된 인간이다. ‘여행생활자’란 말을 만들어낸 나는 여행을 많이 하고 다녔고 이리저리 베이고 굴러다녔다. 그러다 어느 읍내의 쓸쓸한 밤거리에서 ‘달방환영’이라는 네 글자가 반짝이는 간판들을 보았다. 월세 손님도 환영한다는 글자들이었겠지만 나는 마치 달 위에 놓인 방의 환영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돈이 없어 가끔씩만 그런 여관방에서 잘 수 있었다. 대신 나는 땅콩만 한 스쿠터를 타고 바람처럼 전국의 다방을 싸돌아다녔다. 아니 어쩌면 바람이 아니고 바람에 쓸려 다니는 검은 비닐봉지 같았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얼굴에는 늘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다녔다. 그러다 아무 다방에나 들러 세수를 하고는 ‘나는 세상에서 꽤 가치 있는 인간이야’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그대들과 마주 앉아 심심하게 커피를 마셨다. 간혹 정답기도 했다. 뒤돌아보면 사라지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약간 의심스러운 모양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 각도 만큼의 비뚜루한 시선으로 조금은 엉성그럽게 그러나 그러함이 더욱 애정이 깊어 그의 여정을 조금 더 긴 호흡으로 따라갑니다. 아마 나도 이번엔 제법 단단한 각오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였는데 (준비를 해 둔 것이 다행이지요) 다방, 은 그저 빛 좋은 구실에 불구하였고 그가 그들과 심심(深深:작가의 뜻은 이것이 아니였달지라도)하게 마신 커피처럼 제법 심심(甚深)한 이야기들이 가끔은 농담처럼 툭 불거져나오는 그 구절구절 한참을 만져봅니다. p.242 어쩌면 희망이란 건 하얀 소금 사러 소금 가게 갔다가 검은 연탄 사오는 격, 

사실은 적잖이 실망도 했습니다. 어쩌면 다방커피처럼 달착지근한 여행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책을 덮으며 떠오르는 장면은 2년 4개월, 계절이 8번은 족히 바뀌었을 그 시간임에도 불구하구 삼천포의 봄바다도 거제의 반짝이는 여름 바닷길도 아닌 암태도의 겨울 날선 바람을 가르며 차가히 달리는 스쿠터의 꽁꽁 얼은 얼굴이였어요. p. 252 길은 자주 비포장이고 귓가로 매서운 바람 소리만 들려왔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바람을 가르다 내가 큰 소리로 소리쳤다. "추우면 내 주머니에 손 넣어요." 그가 대답했다. "안 추워요." 장갑도 없으면서 안 춥긴……. 바람은 이미 칼바람이다. 속도를 조금 높이니 주머니에 손을 쏙 넣는다. 지금은 푹푹 찌는 더위로 열대야가 지속되는 한 여름임에도 불구하구, 뜨근한 아랫목에 차갑게 갈라진 언 손을 녹여 주고 싶은 마음이였어요. 그렇게 나의 주머니에 당신의 언 손을 녹이는 것이, 그것이 우리네 삶일까 하여 실망했던 마음이 조금 미안하여 얼른 감추어 버립니다.

 

(출처: 맹물다방http://maengmul.com/?page=19 4년전, 다방 기행 당시 찍은 부산 근처 바닷가)

p.208 진정으로 사귄다는 것은 혼자 느낄 고독감을 둘이서 하는 일. 세상에서 혼자 외롭다가 둘이서 외로운 일. 더욱이 꼭 안고 있는 정인의 품 너머 가인이 저리 곱게 웃고 있는 걸 어찌한단 말인가. 진정으로 사귄다는 것이 무엇일까. 모르긴 몰라도 그것은 다만 '마음으로 열심히'라는 말과는 다른 무엇일 것이다. 그는 혼자일 것이라고 제법 확고한 믿음(?)이 굳어 선 그쯤, 한 톨의 친절함도 내어주지 않고 그는 불쑥 아들 이야기를 꺼내어 놓습니다. 그것도 큰 아들이랍니다. 그럼 둘째 아이도 있다는 이야기인데, 한 가정의 가장이 그것도 아이가 둘씩이나 딸란 대한민국의 가장이 스쿠터에 올라 해를 바꿔가며 다방을 들낙거린다니 사실은 적잖이 놀라기도 했습니다. 서투른 짐작으로도 그의 가족들이 그를 이해하기까지 제법 많은 시간과 마음을 탕진하였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중에 써도 써도 남는 것이 마음이니 그쯤이야 좀 헤프게 써버린 듯 좀 어떨까 해봅니다.) 그리고 그 안의 그는 누구보다 더 외로웠을 그의 마음을 어설피 헤아리며 누구보다도 사귐에 굶주려 그는 그렇게 다방을 떠돌진 않았을까, 아마도 그는 여행의 특별함이 아니라 삶의, 퇴색되고 잊혀가는 오래 묵혀 수북히 먼지가 내려 앉은 어릴 적 일기장 같은 삶을 써내려가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억측해 봅니다.p.95 아무래도 인간은 '나'로 태어나서 평생토록 '나' 아닌 다른 것이기를 꿈꾸지만 끝내 '나'로 죽는 우스꽝스러운 존재다.

신산하던 여름의 가운데 날들에 일주일도 넘게 이 책을 붙들고 있었더랬습니다. 아무리 서둘러도 속도를 붙이지 못하는 묵직한 이야기들이 손을 댈수록 엉켜 버리는 실타래만 같았습니다. 가족 휴가로 찾았던 한적한 바닷가 그늘막 아래 다방커피 맛과 제일 비슷할 법한 캔커피까지 준비해 자리를 잡았는데 조금 더 가벼운 이야기였다면 좋았을 걸, 약간의 아쉬움도 토해 봅니다. 그래도 언제나 타인의 삶을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히 들어다보는 일은 제법 즐겁습니다.

 

p.267

뭘 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글쎄, 모르긴 몰라도 나를 계속 극복해나가야 하는 거 아니겠냐.

그럼 이상하네. 나중에는 나 아닌 누군가가 되려고 인생을 사는 거란 말이야?

이상하긴. 나로 태어나서 나 아닌 무언가가 되어 인생을 마치면 성공이지.

내가 끝나는 것이 온전한 죽음이야.

죽을 때도 여전히 나라면 아마 한 번 더 태어나서 또다시 살아야할걸?

하지만 빠뜨려선 안되는 중요한 게 하나 있지.

'사는 동안 끊임없이 나로 살아야만 나를 벗어날 수 있다는 거.'
 

 

녀, 어른이되다.

copyright ⓒ 2011 by. Yuju

 

그리고 그날의 바다 (무보정 in 학암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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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싸라비아 - 힘을 복돋아주는 주문
박광수 글.사진 / 예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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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컨데 내 사진책에는 네가 어쩌면 기대하는 아주 아주 멋진 풍경 따위는 없어. 왜냐하면 네가 기대했던 그런 풍경이 내 앞에 펼쳐질 때, 난 기민한 동작으로 카메라를 즉시 들지 못했거든...그래서 네가 보는 지금의 내 사진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막 지나간 찰나의 사진이야. 그러니 부디 내 사진을 보면서는 가장 아름다웠을, 사진의 바로 앞 순간을 상상해줘. 카메라를 바로 꺼내들 수 없었던 그 수많은 아름다운 풍경들과 나날을 말이야. 

수생각의 뽀리에 꽃혀 있던 학창시절에 손편지 마지막에 꼭, 맘에 담았던 한 장을 그려내 담아주었다. 한줄의 글이 한칸의 카툰이 가진 힘은 구구절절 풀어내는 열마디보다 나의 맘을 위로하였더랬다. 몇장을 고쳐쓰던 손편지도, 열심히 따라 그리던 뽀리도 이제는 뽀얀 먼지 앉은 기억이였는데 오랜만에 사진이 가득한 에세이로 다시 만난 박광수는 세월을 보태어 그래도 그만큼 많이 다져진 느낌이다. <앗싸라비아>를 실로 마주하기 전부터 들려 온 지인들의 호불호(好不好)에는 부디 흔들리지 말자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지나쳐 마지막장을 덮는다. 사진과 그의 이야기, 어쩌면 그보다 많은 유명인들의 주옥같은 한마디가 어쩌면 조금 식상하고 성의없어 보일진정 그가 에필로그에 고백하며 부탁하였듯 사진의 바로 앞 순간을 상상하는 조금 더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함께 하기로 한다.

p.74 겉보다 속. 결혼하기 전 울 엄니는 겉옷뿐만 아니라, 속옷까지 다리미로 반듯하게 다려 주시곤 했다. 아들 사형제와 아버지의 뒷수발만도 충분히 힘에 부치실 터인데, 속옷까지 다리미질을 하시는 엄니를 옆에서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나는, 사람들에게 보이지도 않는 속옷을 왜 그리 열심히 다리시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자 엄니는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쓱 닦아내시고는, 다리미에서 눈을 떼지도 않은 채 내게 말하셨다. " 아들, 사람은 겉보다 속이 더 반듯해야 하는거란다."

기억을 소거해가는 엄니에게 바치는 마지막 책, 일지도 모른다는 첫 장의 그의 이야기에서 깊은 사랑을 느껴진다. 그가 이렇게 사람 마음을 건드리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속옷을 다리미질하며 아들의 속을 반듯하게 키우고 싶으셨던 어머니의 곱고 바른 사랑 덕택이 아니였을까. 세계의 여러곳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은 언뜻 쭉 훑어보아도 '앗싸라비아'라는 주문답지 않게 칙칙하고 버거워보인다. 그의 모든 이야기에 맞아, 라고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것이 그대로 우리의 삶이 아닐까. 반짝반짝 웃으며 빨주노초 알록달록한 응원은 아니더라도 있는 구태여 꾸미거나 보태지 않고 그대로의 따뜻한 시선이, 가끔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그저 우리의 삶이니까. p.55 삶은 정답을 찾는 시간이 아니고, 질문을 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이므로.  

p.165 누군가가 그랬지. 나이가 드는 것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단풍이 잘 물들면 꽃보다도 아름답다고. 서른을 눈 앞에 두고는 생각이 많아졌다. 나의 이십대가 이대로 끝나가는 것이 억울하기도 하고, 서른이 되는 것이 막연히 두렵기도 했다. 이십대를 맞이했던 성인이 되는 설렘과 두려움과는 또 다른 그 두려움은, 많은 이들이 이십대에 이루어 낸 것들은 나는 하지 못했음에 부끄러움과 그리고 남들처럼 태연히 삼십대로 살아내야 할 삶의 무게가 농밀하게 섞인 애매한 그것이였다. 그러다 문득, 나는 이제껏 내게는 너무 버거운 남들과 닮은 삶의 잣대를 드리우고는 왜 그만큼 닿지 못하냐고 다그치며 실망하고 애태우며 시간을 보내 온 건 아닐까 싶었다. 내 삶에 내가 제대로 주인이 되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며 다른 이들의 인생에 조연으로 기웃거리니 실망의 무게가 버거울 수 밖에.  나는 이렇게 책을 읽으며 나의 모지람에 그대로 순응하며 내 몫의 삶을 살아갈 용기를 조금씩 보태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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