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찬
소피 오두인 마미코니안 지음, 이혜정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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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찬소피 오두인 마미코니안│소담출판사 │2010.04.20│p.363

 

 

 

포크에 묻은 붉은 핏방울이 떨어지는 검은색 표지는 도저히 식욕을 돋우지 못합니다. (내게 각인된 소담의 이미지와 조금 거리가 있는 듯한 느낌의 책 한권에 조금은 의아해하며) 전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섭렵하며 컬렉션 하기도 했었는데 심리 스릴러는 참 오랜만입니다. 뜨거운 여름날 더해진 난독증에 나를 매혹하기를 바라며 와인을 시작합니다. 한상 그득 차려진 한식 상차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차례로 올려지는 음식에 감질납니다.

 

이야기는 소애성애자를 담당하게 된 하트 형사와 소아 성범죄 피해자를 상담하는 소아 정신과 여의사 엘레나에게서 시작합니다. 핑크빛 로맨스의 싹이 틀 무렵 발생한 끔찍한 살인사건은 두 사람의 삶을 뿌리 채 흔들어 놓습니다. 고도 비만 남성들에게 집중된 실종과 살인은 준비되는 요리에 대한 더욱 강하게 키웁니다. 잔혹한 살인 사건은 피해자의 피로 시를 남기며 메시지를 전하는데 어쩌면 범인은 자신을 빨리 잡아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능적인 범죄의 끝, 어떠한 논리로도 그의 행동이 정당화 될 수 없지만 그가 당했던 실로 극심한 고통을 마주하며 비난의 화살은 갈 곳을 잃어버립니다.

 

유린 당한 인간 본연의 존엄에 대한 위험은 단지 개인에게 속한 문제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등장 인물 개개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의 과정을 통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내면에 쌓여 팽창된 상처들을 어루만지도록 합니다. 유난한 밤 더위가 지속되었던 날들에 깊은 밤의 질감을 망각하게 할 심리 스릴러를 기대했지만 마지막 장을 덮는 손길은 바람 한 점 없는 퇴약볕 아래 놓쳐진 듯 지쳐 버렸습니다.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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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 김선주 세상 이야기
김선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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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김선주│한겨레출판사│2010.06.15│p.380

 

 

 

기억도 옅은 어느 날에 누군가로부터 추천을 받았던 책, 제목만 듣고서는 감수성 담뿍 묻어나는 에세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도서관 귀퉁이에서 발견한 책이 너무나 반가워 덥썩 집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쿵! 제대로 한 방, 나의 가벼운 예상을 깔끔하게 뒤엎고 ‘사회’학 책입니다. 저자 김선주는 한겨레의 대표 칼럼니스트이자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지식인으로 손꼽히는 유명인이더군요. 나의 무지에 경의와 찬사를, 그리고 패닉! 1993년부터 2010년까지 거의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녀의 칼럼을 모아 책으로 엮었는데 또 한 번 나의 무지로의 용감함에 깊은 탄식. 90년대는 내가 초·중·고를 지난 시기이기에 어쩌면 내겐 조금 낯설고 어려운 얘기겠구나 위안해보지만 소용 없이 나는 작고 초라해집니다.

 

하나를 알고 있음에 위험은 그 하나가 전부가 된다는 사실이지요. 그녀가 전해주는 이야기에 무조건 휘둘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보려 하지만 내 안에 채워진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나는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아랑곳없이 휘둘립니다. 나의 백지와 같은 무지가 두렵습니다. 하지만 타고나기를 경제나 사회에 대하여 아둔하며 흥미가 없으니 애를 써도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없습니다. 나꼼수를 들으며 MB를 비판하고 신문의 경제면을 펴는 일이 번듯한 어른의 일인냥 몰고 가는 요즘의 사회가 나는 사실 두렵기도 합니다. 이 사회의 균형을 위해서 나와 같이 무지하고 순박한 어른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풉) 부끄러움을 다독입니다. 순전히 핑계입니다.

 

2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쓰여진 글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일에 불편함이 없었던 것은 명확한 가치관의 일관성 덕분이겠지요. 자신의 ‘앎’에 대하여 ‘신념’에 대하여 이렇게 단단해지기까지 그녀의 내부에서는 얼마나 많은 부딪힘을 견디어 냈을까요. 나는 고작 일년전의 일기장도 부끄러워 감추기 급급한데 말이지요.

 

 

p.348

사람이 누군가를 알게 된다는 것은 정신 속에 그 사람이 지문으로 남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나는 천성이 그러지 못하니까 여전히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겠지요. 하지만 그녀의 이름은 내게 선명한 지문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그녀처럼 야무지게 목소리를 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어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나는 조금 더 많이 알고, 많이 읽으며, 귀는 조금 더 열어 두어야겠습니다. 참, 《나이 곱하기 0.7》이라는 그녀의 글에는 박완서 선생님이 생전에 하신 “요즘 사람의 나이는 자기 나이에 0.7을 곱해야 생물학적, 정신적, 사회적 나이가 된다.” 말씀이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계산하면 이제 나는 겨우 21살. 마음이 조금 수월해집니다. 당신의 마음도 조금 가벼워지셨지요?

 

 

 

p.287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며칠 지나지 않아 우연히 잡은 책이

그리스 철학자들의 우화인데 첫 구절에 이렇게 씌어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남에게 충고하는 일이고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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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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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 후, 일 년 후│프랑수아즈 사강│소담출판사│2007.12.07│p.198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작은 방에 조제가 있습니다. 걸을 수 없는 그녀의 이름 ‘ 조제’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속 여주인공 이름을 따온 것입니다. 느릿느릿 서두름 없이 흐르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다시 꺼내봅니다. 여전히 영화는 빛의 흐름을 이해하고 따뜻한 색을 내며 마음을 어릅니다. 참 좋았던 영화지요.

 

프랑수아즈 사강의 <한 달 후, 일년 후>에는 아홉 명의 남녀가 등장합니다. 영화 속 조제가 좋아했던 조제, 의학을 공부하는 조제의 남자친구 자크, 작가 지망생이자 조제의 연인이었던 베르나르, 베르나르의 부인 니콜과 베르나르를 좋아하는 배우 베아트리스, 베아트리스를 좋아하는 두 남자 알랭 말리그라스와 그의 에두아르 말리그라스, 그리고 알랭의 아내 니콜, 그리고 앙드레 졸리오. 9명의 남녀는 사랑과 이별, 미움과 그리움으로 얼기설기 얽혀 있습니다. 많은 등장 인물 때문에 그들의 어긋나기만 하는 관계 때문에 같은 자리를 맴돌며 호흡을 고르는 일을 반복합니다. 어쩌면 그들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을지 두려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p.84

 

젊음이 맹목에 자리를 내줄 때, 행복감은 그 사람을 뒤흔들고 그 사람의 삶을 정당화하며, 그 사람은 나중에 그 사실을 틀림없이 시인한다.

 

 

나에게도 사랑에 자신만만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타인의 사랑을 기만하기도 했고 숨쉬는 일조차 버거운 이별도 있었습니다. 참 여러 가지 모습의 사랑이 나를 지났습니다. 끊임없이 사랑받았고 사랑했습니다. p. 144 "나리, 이 사실을 아셔야 해요. 여자에게 시간은 아주 중요해요. 지나가버린 시간도 떄로는 아직 의미가 있죠. 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은 전혀 의미가 없답니다." 오지 않은 시간이 의미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현재에만 충실했던 나였기에 사랑 안에서 자유로왔습니다. 나이 탓이라기엔 진부한 변명이지만 이제 나는, 지금의 나만을 생각하며 사랑에 빠지기에 나는 너무도 많은 것을 지켜야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의 진실성에 대하여 조금 더 덤덤하게 어쩌면 그녀 조제처럼 시간에 대하여 온전한 감각을 찾았는지도요. p.136 "일년 후 혹은 두 달 후,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그가 알고 있는 사람 중 오직 그녀, 조제만이 시간에 대한 온전한 감각을 갖고 있었다.

 

이야기 속의 9명의 남녀는 늘 어긋나고 위태롭습니다. 지켜보는 마음이 안타깝고 불안합니다. 어느 누구의 사랑도 힘이 되어줄 수 없었습니다. 사랑은 ‘Give & Take'일 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이라는 것이 주기만 하거나 받기만 한다면 한쪽으로 치우쳐 쓰러지고 마니까요. 주고 받는 관계가 성립되었을 때 균형감각이 생깁니다. 조금씩 평행을 맞춰가는 과정이 사랑이겠지요. 하지만 이별이 사랑의 실패가 아님도 기억해야겠지요. 그들의 사랑을 만나고 시간에 대한 나의 감각은 조금 더 깨어났습니다.

 

 

 

p.186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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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푸드 - 삶의 허기를 채우는 영혼의 레시피 소울 시리즈 Soul Series 1
성석제 외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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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울푸드│성석제 외│청어람미미어│2011.10.10│p.220

 

 

 

당신 마음을 만지는 음식을 무엇입니까.

 

 

때때로 단어 자체가 감정을 가지는데 소울푸드, 주책없게 콧날이 시큰합니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굶주림의 끝에 가장 고픈 음식이 내게는 김치찌개입니다. 냄비에 기름을 두르고 세월이 담긴 신김치를 달달 볶다가 (다진마늘 조금) 육수를 넣고 한소금 끓으면 비곗살이 적당한 들어간 돼지고기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대파와 청양고추로 마무리. 아, 김치의 신맛을 잡아주려면 설탕을 넣어주면 밥 한 그릇 뚝딱 삼키는 김치찌개 완성. 참치나 스팸도 김치찌개와 잘 어울리는 재료지요. 아무리 맛있다는 김치찌개 집을 찾아도 엄마표 김치찌개엔 비길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먼저 부른 음식, 내게는 김치찌개입니다.

 

 

 

p.19

 

허기란 그저 물리적인 배고픔을 뜻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사랑에 배고프고, 우정에 배고프고, 시간에 배고프고, 진짜 배가 고픈 것이므로

우리 삶에 대한 가장 거대한 은유다.

 

- 백영옥. <주먹밥의 맛>

 

 

 

21명의 작가들이 풀어 놓은 ‘소울푸드’는 나와 같이 마음이 먼저 부른 엄마표 된장찌개이거나 배꼽친구를 떠올리게 하는 과자이거나 타지에서 맛보았던 라면처럼 비싸고 화려한 음식이 아니라 우리 삶의 어느 부분에 깊이 닿아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는 음식입니다. 첫눈 내리는 날 연인과 먹었던 잊을 수 없는 피자의 맛이며 제주 푸른 바다를 안주삼아 마신 와인처럼 누군가를 떠올려 미소짓게 하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녀의 말처럼 배고픔이란 외로움과 많이 닮아 있기에 우리가 바라는 행복이란 따뜻한 밥 한공기를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일, 그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내가 애정하는 만화 중에 「심야식당」이라는 만화가 있는데 심야식당의 음식에도 사람 냄새가 그득 배여 있습니다. 지친 순간에 음식은 몸의 주림 뿐만이 아니라 마음의 주림까지 채워주지요. 요즘 제일 애정하는 음식은 '조개술찜'입니다. 나의 가장 고마운 친구와 지난 겨울 밤, 심야식당을 닮은 사케집에서 사장님의 배려로 특별히 맛보았던 그 맛을 잊을 수 없지요. 문득 그 맛이 그리워져도 선뜻 다시 찾지 못하는 까닭은 음식의 맛이란게 시간과 공간, 그날의 감정까지 잘 버무려져 기억되기에 아무래도 그 맛을 다시 보기 어려울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랄까. (호호) 당신의 소울푸드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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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책이다 - 시간과 연민, 사랑에 대하여 이동진과 함께 읽는 책들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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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은 책이다│이동진│예담│2011.12.20│p.340

 

 

 

촘촘히 붙어 있는 그녀의 흔적을 눈으로 훑으며 방그레 웃음이 납니다. 닮고 혹은 다른 생각들을 더해 읽어내리는 책은 즐거움이 가득 부풀어 오릅니다. ‘밤’이라는 보드라운 질량에 대한 갈망으로 한참을 아껴가며 베개독서를 했습니다. 그 사이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만나기도 했구요. 아, 『빨간책방』은 책 전문 팟케스트입니다. 2회까지 올라왔는데 곧 두근콩두근콩 3회가.(야호) 영화평론가 쓰는 책 이야기니가벼우리라 생각했다면 예상보다 훨씬 다채롭고 풍요로운 이동진의 서재에 '제대로' 반할테니 준비하세요. '밤'을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더욱 더.

 

 

p. 18

말하자면 밤은 치열한 다큐멘터리가 끝나고 부드러운 동화가 시작되는 시간일 거예요. 괘종시계가 열두 번을 치고 나면 저마다의 가슴속에 숨어 있던 소년과 소녀가 말을 걸어오기 시작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밤에 쓴 편지를 낮에 부치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낮의 어른은 밤의 아이를 부끄러워하니까요. 하지만 밤의 아이 역시 낮의 어른을 동경하지는 않을 겁니다.

 

 

편중되어 기우뚱되거나 소외되지 않도록 균형 잡힌 그의 '책' 이야기는 자신의 해박함으로 독자를 짓누르는 법도 없습니다. 또한 자칫 감성에 젖어 놓칠 중요한 것을 잃지 않도록 유쾌한 리듬을 적절히 유지합니다. 소개하고자 하는 책의 일부를 발췌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배우가 너무 극한 감정을 쏟아내면 관객은 그 감정에 젖지 못하고 겉돌게 되는 것처럼 -  덧붙이는데 그의 텍스트가 조심히 흔들리면 나는 살금살금 감정의 웅덩이를 넘어야 했습니다. 혹여 휘정거리는 걸음의 무게가 파장을 일으키지 않도록. p.  50 떨어져서 보면 무척이나 화려해 보이는 삶이라도,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 휘황함이 사실은 격렬한 에너지 소모와 붕괴의 흔적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p. 87 시간이 흘러 내가 기억하지 못해도 영수증은 끝까지 기억합니다. 일상의 진부했던 소재가 텍스트로 거듭났을 때 감탄과 질투가 고루 섞여서 빛깔을 가늠하기 어려운 감정이 무작정 소모되기도 합니다. 예전에 나도 그와의 데이트에서 사용되었던 영수증을 차곡차곡 모았는데 3년의 만남 후 영수증의 양이 어마어마해서 쓰레기봉투를 가득 채웠던 기억,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에도 불쑥 생각지 못했던 장소에서 발견되는 흔적이 이제는 새로운 기억이 되기도 합니다. p. 137 하지만 만일 사랑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그것은 흠 없고 고결하기 때문은 아니다. 주렁주렁 매달린 훈장이 아니라 곳곳에 감춘 흉터야말로 사랑을 아름답게 할 수 있다. 당도하지 못하는 사랑, 되돌아가는 사랑, 심지어 끊어지고 마는 사랑까지 아름다울 수 있다고 강변하게 되는 근거는 명확하다. 사랑이란 도착 지점이 아니라 여정 그 자체를 일컫는 말이니까.

 

밤의 고요를 마주합니다. 또각또각 시계의 초침 소리가 분명해지는 시간, 나는 그 시간이 참 좋습니다. 가끔은 좋아하는 인디밴드의 음악을 듣기도 하구요, 더 가끔은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기도 합니다. 요즘은 소리내서 읽는 책의 기분이 좋아서 오롯이 혼자일 때가 더 많습니다. 알고 있어요? 눈의 침묵으로 읽어내린 텍스트보다 공기의 파동을 더한 텍스트가 훨씬 맛있다는 것을. 마지막 장을 덮으며 기분 좋은 포만감이 나를 감싸안습니다. 그의 서재에는 만권의 책이 있다던데 그의 또 다른 책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p.309

 

여행이나 산책이 삶에 유익한 것은 그런 건지도 모릅니다.

내가 없어도 그 자체로 아무 부족함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쓸쓸히 인정한 뒤에도,

저만치 혼자 피어 있는 꽃의 아름다움에 작은 탄성을 터뜨리는 것.

나지막하게 감탄사를 발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기회가

이 계절에 당신에게 꼭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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