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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들의 나라 한국 조연들의 나라 일본 - 한일비교의 문화심리학
이누미야 요시유키 지음, 솔과학 편집부 옮김 / 솔과학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는 동안 머릿 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날카로운 칼"이었다.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일본에 대한 저작이었던 "국화와 칼" 때문은 아니었다. 칼에 대한 이미지를 얻게 된 것은 2장의 세번째 챕터 제목인 '금강검의 위력' 때문이었다.
주체성-대상성 자기 이론은 긍정적 환상의 문화 차이를 일도양단하는 금강검과 같은 위력을 보여주었다. - 96P
저자가 한국과 일본의 문화차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택한 이론은 '주체성 - 대상성 이론'이다. 책 제목처럼 주체성은 주인공의 심리를 말하고, 대상성은 조연들의 심리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이론이 한일간 문화적 현상들의 차이를 너무도 명확하게 설명하자 저자는 "이 이론은 기막히게 잘 드는 '칼'이다~!" 라고 생각하고는 기뻐서 탄성을 외치고 있다. 독자로서도 덩달아 신이 났다.
그리고, 대륙을 건너 영국에서 유명한 또 다른 칼인 "오컴의 면도날"도 떠올랐다. 이 면도날은 여러 가정을 따로 하지 않는, 가장 단순한 설명이 진리일 확률이 높다는 개념의 상징이다.
그동안 여러권의 일본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 때로는 그럴듯 하다고 느꼈지만, 대체로는 엉터리라고 생각했다. 엉터리라고 느낀 이유는 매우 주관적이거나, (서양의) 이론에 억지로 끼워맞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억지로 끼워맞추더라도 이론을 적용해 보는 책의 수준이 높긴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매우 훌륭하다.
이론이 태어나는 것은 주관적인 관찰과 경험들의 토양에서 가능하다. 저자는 한국인 아내와 결혼해서 20년 넘게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이다. 그의 경험은 한일간의 미묘한 차이를 식별해 내고, 이론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수준이다. 게다가 그는 문화심리학을 전공한 박사다. 주관적 경험을 보편적 이론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트레이닝을 받은 것이다.
결국, 저자는 동서양의 차이보다는 미묘한 한일간의 차이를 잘 설명하는 이론을 만드는 것(혹은 찾아낸 것)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그 동안 시도되었던 수많은 한일간 비교문화 연구들을 성실히 정리하고 있다는 점과 언급된 거의 모든 내용들이 통계적인 검증에 의해 뒷받침 되고 있다는 점이다. 수많은 가정과 문학적 상상력이 난무하는 일본 관련서들과 비교하면 차원이 다르다.
(다만, 가끔 논문을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부분들은 살짝 아쉽긴 하다.)
이쯤해서 어떻게 저자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고 있는지를 밝혀야 겠다. 저자 이누미야 요시유키 씨는 나의 대학원 선배이다.
"에이 뭐야~! 책 홍보하는거였어?"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나는 이 책을 널리 홍보하고 싶다. 지금까지 본 한일간 비교문화 저작 중에 가장 좋은 책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이론적 틀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다양한 이론적 틀을 갖추는 것만이 우리의 삶을 좀 더 풍성하고, 진실에 다가가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지속된다면, 우리는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비극을 반드시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성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가진 반지성주의가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를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읽는 내내, 이 책은 지성과 교양이라는 집을 짓기 위한 단단한 벽돌이라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