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독약 1 - 에덴 동산 이후의 중독과 도취의 문화사 책세상총서 17
알렉산더 쿠퍼 지음, 박민수 옮김 / 책세상 / 2000년 3월
평점 :
절판


낭만주의 작가들에 도취된 자료수집가의 지루하고 못된 이야기

“신의 독약 : 에덴 동산 이후의 중독과 도취의 문화사” 이 책의 제목과 부제이다. 물론 취향의 문제이긴 하지만 내겐 아주 그럴 듯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면서 이 그럴 듯한 제목이 점차 빛을 잃어 가는 것을 느꼈다. 제목을 따라가며 빛을 잃어가는 과정을 생각해 보는 것은 이 책에 대해 말하는 좋은 방법인 듯 하다.

* 신의 독약


인류의 탄생과 동시에 진행된 ‘앎의 역사’에 있어서 술을 비롯한 약물의 역할은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이성의 냉철함이 결여한 새로운 앎의 수단으로서의 약물은 결코 역사의 주변부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한다.
사실 새로운 것을 알아낸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상식의 견지에서는 약물에 의한 새로운 앎의 방식이 편법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상식 역시 사람이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한 것이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앎에 열광해 왔다.
 저자는 알코올을 비롯한 약물에 그다지 반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해석이 결여된 사실만을 늘어놓는 것인지도 모른다. 약물에 대한 긍정을 역사적 사실에 적당하게 숨기는 방식으로 말이다. 상식의 측면에서 보면 이것 참 ‘못된 이야기’이다. 누구나 금지된 것을 좋아하듯 이런 못된 저자의 생각은 흥미를 끈다. 마치 결사조직의 비밀을 공유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다 보니 저자의 궁극적인 관심은 독약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중독과 도취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독약을 제목으로 하는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다. 하긴 애당초 나의 관심도 약물 보다는 도취에 있었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다.

*에덴 동산 이후의


에덴 동산 이후라는 말은 너무 거창하다. 에덴 동산 이후라면 장구한 시간을 함축하고 있기도 하고, 인류 보편의 어떤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시간적인 고찰에 있어서도 공간적인 고찰에 있어서도 너무나 협소한 19-20세기 서양의 낭만주의자들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 중독과 도취의 문화사


약물이 새로운 문화 창조의 힘으로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서양의 많은 작가나 예술가들이 약물에서 비롯된 영감을 통해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에머슨, 앨런 포, 윌리엄 제임스, 보들레르, 니체, 고흐, 노발리스, 실험에 불과했지만 괴테나 실러조차….) 그러나 이러한 뒷이야기들을 스포츠 신문의 흥미거리 기사처럼 나열하는 것으로는 ‘도취의 문화’를 제대로 해석해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도취의 의미나 사회적, 심리적 메커니즘 같은 성찰도 없고, 문화사라고 할 만한 내용은 더욱더 아니다. 같은 유형으로 계속해서 제시된 작가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사실 지루했다.

이제 저자가 지닌 진정한 관심을 알만하다. 나중에 뒤져보니 그의 전공은 약물학자도 역사학자도 사회심리학자도 인류학자도 아닌 영문/독문학자 였던 것이다. (물론 영문학이나 독문학이 위에서 언급한 학문보다 못하다는 소리가 아니다. 단지 책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제목이 내용과 잘 맞지 않고, 그 제목에 끌려 책을 선택한 사람의 관심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관심은 19-20세기의 낭만주의 작가들이 약물을 어떻게 이용했는가 하는 것이었으며, 이 책에서 다루는 그들의 뒷이야기들은 작가와 그들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역할을 할 것이다.

“19-20세기 낭만주의 예술가들의 약물에 얽힌 뒷이야기들” : 재미는 덜해보이지만 새로 붙여본 이 책의 좀더 정직한 제목이다. 

* 도취에 대한 성찰을 위해 이책을 골랐다면 얇지만 깊이 있는 니체의 처녀작 ‘비극의 탄생’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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