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과 의식 - 현대심리철학입문
P.M.처치랜드 지음, 석봉래 옮김 / 서광사 / 199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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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질과 의식이라는 책을 "유물론의 향기로운 전도서"라고 부르고 싶다. 저자는 매우 친절하고 세심하게, 때로는 강력한 논지로 유물론이란 종교를 전파하고 있다.  전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는데 있어서 매우 미숙하다.  열정이 논리를 압도하여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몇몇 향기로운 전도자들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주도 면밀함과 솔직한 태도로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다만, 지적할 것은 부분적인 객관성과 전체적인 편향이다. 부분적으로 보면 주장과 반론의 객관적 검토가 뛰어나지만 전체적인 구성과 어투는 유물론을 옹호하고 있다. 난 이 책을 부분적 주장과 반론의 언급보다 전체적인 시각에서 되돌아 보고자 한다.
 

  존재론은 모든 철학의 근간이 되는 영역이다.  그런데 존재론은 논의에 비해 결실이 적고, 현대 사회의 병리현상이나 큰 전쟁등이 부른 절실함으로 인해 현대철학은 인식론이나 가치론의 영역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과학'이 꾸준한 발전을 거듭하며 그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고, 과학철학은 존재론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 주된 관점으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이제 이 새로운 관점으로 존재론을 다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사실 이런 식으로 존재론, 인식론, 가치론 등으로 영역을 구분하는 태도는 그것들의 상호 연관성으로 볼 때 그다지 바람직 스럽지 않다.  현대는 멀티미디어와 탈 장르의 시대가 아니던가? 이런 구분들은 워낙 거대한 철학적 논의를 편의에 의해 분할한데 지나지 않는다.)
 

 작가는 존재론을 꼼꼼히 정리하고 있다. 그런데 존재론의 언급에서 작가의 편향이 숨어있다.  작가는 존재론에서 이원론과 유물론만 다루고 전통적으로 존재론의 한 영역인 관념론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 (관념론에 대한 것은 5장의 방법론에서만 잠시 언급한다.) 물질을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관점을 존재론의 범주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이 작가가 가진 당연한 상식인 듯 보인다.

 

 의미론은 분석철학의 영역이다. 이는 언어의 뜻을 정확히 정의하고 분석하므로써 연구대상의 본질을 밝혀내는 철학의 한 분야이다. 처음에는 인간이 만들어낸 언어로 인간을 이해하려한다는 사실이 우습게 느껴졌으나 이 책에서 존재론과 의미론의 밀접한 관계를 알아낼 수 있었다. 언어를 정의 하는 방법은 크게 내적 현시와 이론적 망상구조에 의한 정의로 대별된다. 내적현시에 의한 정의 방식은 인간이 느끼는 내성에 의해 언어를 정의 하는 방식이다. 이 방법은 존재론상의 이원론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내성은 자기 외에는 어느 누구도 대신 경험할 수 없는 방식이므로 내적 현시에 의한 언어의 정의는 어떤 형식으로도 서로 같음을 증명할 방법이 없는 회의론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런 회의론에도 불과하고 이원론자들이 이 방식을 인정하는 이유는 내성이라는 정신적 경험이야 말로 영혼을 존재하게 하는 본질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론적 망상구조에 의한 언어의 정의 방식은 유물론자들이 채택하는 방식이다. 이는 어떤 언어의 정의는 그 언어의 본질적 속성이 관찰가능한 다른 속성과의 인과관계속에서 결정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내성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배제할 수 있는 정의 방식이기에 유물론자들에 의해 인정되고 있다.

 

   유물론은 여러가지 면에서 인간이란 존재를 격하시키는 측면이 있다. 환원적 신경과학은 인간의 창조적 활동은 뇌의 작용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진화론은 인간을 동물의 수준으로 끌어 내린다. 하지만 인식론의 영역은 유물론의 관점에서 바라보아도 인간의 자리매김을 달리 하는 측면을 가진다. 작가는 이 책에서 인식론의 영역을 '다른 존재의 마음의 문제'와 '자기 의식의 문제'로 축소하여 다루고 있다. 많은 인식론의 영역을  존재론과 장법론의 견지에서 다루고 있는 듯하다. 심리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이르로 근본적으로 인식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며 이 책의 영역인 심리철학도 많은 부분 인식론의 측면에서 다루어 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작자는 존재론에 치중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인식론과 존재론에 대한 느낌을 간단히 적으려 한다.


  인간은 최근에 들어와서 자기의 가치를 놀라울 정도의 큰 목소리로 부르짖곤 한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의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무한성을 떠올릴 때는 처음의 큰 목소리 만큼이나 자신의 왜소함과 무가치함을 절실히 깨닫는다. 시간과 공간의 틀은 존재론, 특히 유물론의 기본틀이란 점에서 인간은 존재론의 영역에서는 아주 미미한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거대한 두 축에서 하나의 작은 점으로 표시될 수 있다. 점은 넓이도 부피도 갖지 못한채 위치만을 표시하는 속성으로 볼때 얼마나 초라한 것인가? 인간은 이런 절망과 한계들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인간은 이러한 생각을 계속하다가 생각을 하고 있는 자기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과 상통하는 것으로 존재들을 바라보는 인식의 주체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존재론의 거대한 두 축에 또 하나의 축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것이 인식론의 시작이 아닐까?  인식론의 시작으로 인간은 공간과 시간에 매몰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또한 인간은 점에서 넓이와 부피를 갖는 존재로 발돋움하게 되는 것이다.

 

 방법론의 논의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현상학의 영역이다.  현상학은 자기 자신만의 세계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만의 생활과 그에 따른 사적 경험이 있다. 이런 경험의 기억들이 대뇌 피질부의 조그마한 주름으로 환원될 지라도 개인들의 경험세계의 존재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런 개인의 세계를 연구함으로써 보편적인 세계를 탐구하는 방법이 그럴 듯 하다고 느껴진다. 어차피 모든 연구는 개인의 경험의 일부이며 그 연구의 방향성은 사적 경험의 세계에 의해서 좌우될 수 있다. 보편적인 세계를 직접 연구하는 것이 이렇게 개인의 주관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방향을 바꾸어 사적 경험의 세계를 연구해서 보편적인 세계를 추론하는 방식이 바로 현상학이다. 방법론의 나머지 영역인 인지/연산적 접근법과 방법론적 유물론은 인공지능과 신경과학의 장에서 자세히 설명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두가지, 즉 컴퓨터 과학과 생명과학은 유물론의 발전과 이상 실현의 가장 중요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공 지능이란 가능한 것인가? 컴퓨터는 최근 인간이 만든 것중 가장 그럴듯한 것임에 틀림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자신을 연구하기도 하고, 자신이 만든 컴퓨터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본다. 인간의 정신을 유추해서 컴퓨터를 만들고는 컴퓨터를 유추하여 정신을 살피고 이제 그것을 만들어 내려 하는 것이다.  수 많은 공상과학 영화에서 인공지능을 가진 컴퓨터들의 반란을 다루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인공지능에 대해 회의적이다. 고등 동물의 의사 결정과정은 노링와 연산의 과정 보다는 감성의 영향을 더 많이 받기 때문이다.
 생리심리학은 그동안 궁금하던 인간의 행동을 상식에 맞는 새로운 관점에서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이제는 생물의 오묘한 신비가 생물학의 영역으로 환원되고 이제 미지의 세계로 남은 것은 뇌를 비롯한 신경계 뿐인듯 하다. 이제 신경과학이란 말이 곧 생물학을 뜻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신경과학에서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기쁨, 우울과 같은 감성적 영역들을 신경 전달 물질등을 통한 과학적 증명과정이다. 앞으로 신경과학이 발달을 거듭한다면 인간의 감성의 영역도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면 한편으로는 끔찍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태까지 물질과 의식을 읽고 느낀 점을 정말 두서 없이 적어 보았다. 시간에 쫓겨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넘어가거나 좀더 깊은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시험이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면 꼭 다시한번 읽고 많은 생각을 해 보아야 겠다. 이책은 존재론, 의미론, 인식론, 방법론 등의 철학적 발전 과정과 각 주장들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을 주었지만 그보다는 한 주장에 대한 빈틈없는 근거제시와 반론들을 통해 다각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갖게 해 준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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