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 이스마엘
다니엘 퀸 지음, 배미자 옮김 / 평사리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있게 소개할 만한 '나만의 보물'과 같은 책을 소개받고자 노력한다. 좋지 않은 책을 사서 읽는 금전과 시간 측면에서의 잠재적인 피해를 피할 수 있는데다가 추천자를 더 깊이 이해하는 좋은 단서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공자님 말씀에 혼자서 끙끙대며 생각하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최고라는 구절이 생각나는데, 그것은 공자님 시대보다 정보와 다른 유혹이 엄청나게 많아진 이 시대에서는 더욱 중요해 졌다. 이 '신뢰할만한 추천' 과정이 바로 선생과 선배의 역할이다. 자신이 먼저(先) 해본 것을 토대로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선생과 선배 아니겠는가?

 

다니엘 퀸의 '고릴라 이스마엘'을 추천한 사람은 바로 환경경영의 실천자 레이 앤더슨 씨이다. 그는 이 책을 600명 이상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600명이라... 나는 곧 검색에 들어갔고, 번역본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사서, 읽었다.

 

다니엘 퀸이라는 분은 대단한 열정의 소유자이다. 그는 자신의 지식을 효과적으로 재조합하여 전달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실제로 이책을 쓰기 위해 15년 이상의 준비 시간이 들었다고 한다.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였을까?

 

인간중심의 역사에 대한 반론이다. 인간이 세계에 속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세계가 인간에 속해 있는 것인가? 현재의 인간 문명이란 것이 인간의 이기주의 혹은 환상 위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누가? 화자는 고릴라 이스마엘이다. 인간이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못마땅하셨는지 고릴라가 제 3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 (500킬로 그램이 넘는 거대한 고릴라 이스마엘은 인간의 역사에 능통하고, 성경에 대한 지식도 대단하다.)

 

일종의 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문학적으로 대단한 구성은 아니다. 세계가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고, 인간은 그 세계를 정복하고 착취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간의 착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대화의 형식을 채택했다. 책에 나오는 수많은 아이디어 중에 내게 가장 와 닿는 이야기는 앤더슨씨와 같았던 듯 하다. 바로 사람들이 하는 "비행과 추락의 착각"에 대한 에피소드 말이다. (농경문화와 수렵문화에 관한 내용도 흥미롭긴 했다.)

 

이 이야기는 이렇다. 사람들은 하늘을 날고 싶어했고, 비행기라고 하는 것을 만들었다. 온 인류가 타고 있는 거대한 비행기. 그런데 이 비행기의 비행이 시작된 지점은 굉장히 높은 언덕이다. 길어야 100년 남짓 사는 사람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근시안을 가지고 보면 이 비행기는 잘 날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 비행기는 비행이 아닌 추락을 하고 있는 것이다. 추락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사람들은 그 속도에 취해서 비행이 성공적이라는 착각을 더 하게된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가까와 오는 땅바닥을 보고 소리친다. "우리는 비행하는 것이 아니라 추락하는 것이었어! 우리는 곧 땅바닥에 부딛혀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꺼야!" 많은 사람들은 태연하다. 수많은 시간동안 우리는 잘 지내왔고, 내가 죽기 전까지는 괜찮아 보이기에... 더욱더 신나게 가속 페달을 밟을 뿐이다.

 

이제라도 유체역학과 양력의 성질들을 고려한 날개를 만들어 진짜 비행을 할 것인가? 아니면 쾅! 할 때까지 추락할 것인가?

 

고릴라의 모습을 한 현자인 이스마엘은 여러가지 생태학적인 화두를 던져놓고, 제자의 사랑이 담긴 담요를 남겨둔 채 폐렴으로 세상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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