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옹호 - 공생공락의 삶을 위하여
김종철 지음 / 녹색평론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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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헐떡이며 가쁘게 달려온 길. 꽤 많이, 더 빨리 왔는데 한 사람이 홀연히 나타나서 이야기 한다.

"이 길이 아니야~! 이 길로 조금 더 가면 낭떠러지가 있다고!" 라고 말이다.

전력질주해서 온 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진짜라고 믿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투자해서 달려왔기 때문에.

"에이 거짓말 마쇼~!" 라고 말하며 뒤쳐질까 또 다시 앞길을 재촉하지만, 덥기는 너무 덥고, 심장은 터질 것 같고, 머릿속은 뒤죽박죽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사람의 말은 굉장히 신뢰할 만하다. 논리가 정연하고, 증거도 충분하다.

뭔가 가슴이 먹먹하다.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이 길이 아니라니..."

 

홀연히 나타난 그 사람은 녹색평론사 김종철 대표이고, 충분한 증거를 바탕으로 논리 정연하게 쓰여진 평론들의 모음은 "땅의 옹호"이다.

아직 그의 평론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 할지도 모른다.

"산업사회의 끝머리에 투자(실은 투기) 대상으로서의 땅이 아니라, 소규모 농업의 터전으로서의 땅을 옹호하는 사람이 살고 있다니?"

"너무 촌스럽고, 시대 착오적인 발상이 아닌가?"

"한발 빠른 정보를 가지고 투자를 통해 효율성을 높여도 시원찮을 판에 노동집약적 농업이 왠말이야?"

 

그러나 당신은 당신이 선택한 그 길을 지날 때, 왜 그렇게 더웠는가?

지진과 해일, 홍수와 폭설 등 기상 이변을 만나서 고생하지는 않았는가?

아니, 이런 것보다는....

먼저 빨리 가느라고 마음 터 놓을 친구도 없이 외롭고, 주머니 속의 돈은 다소 늘었으되 마음은 황폐해지고 스트레스만 늘지는 않았는가?

평론집 "땅의 옹호"가 읽는 사람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이유는 이 책의 관심사가 환경의 파괴에 맞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징후들의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인문학(영문학)을 전공한 인문학자답게 그의 초점은 사람의 마음에 맞춰져 있다.

무엇이 사람들을 이렇게 각박하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사람들을 서로 시기/질투하며 못잡아 먹어서 안달나게 만들었는가? 하는 것들 말이다.

 

김종철 선생의 정신적 멘토인 이반 일리치의 <환대와 고통>이라는 에세이를 엿보자.

 

작고한 추기경 쟝 다니엘루가 들려준 경험은 이러한 복잡한 역사적 진실을 간단히 전달해 주고 있다.

그의 중국인 친구 한 사람이, 기독교도가 된 다음에, 북경에서 로마까지 걸어서 순례를 행하였다.

중앙아시아에서 그는 규칙적으로 환대를 받았다. 슬라브 국가들 속으로 들어가서는 그는 이따금 누군가의 집으로 초대되었다.

그러나, 그가 서방 교회 지역에 도착한 뒤에는 그는 구빈원에서 잠자리와 먹을 것을 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왜냐하면 각 가정의 문들은 낯선 이들과 순례자들에게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114페이지)

 

인간의 오랜 전통이자 기독교의 핵심이었던 자발적 환대의 정신(네 이웃을 사랑하라~!)은

서구 근대국가의 발전과 그로 인한 제국주의적 팽창을 통해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지금 세계는 소수의 다국적 기업과 그들에 봉사하는 범지구적인 엘리트 계층이 향유하는 낭비적인 소비문화의 확장을 위해서

다수의 삶이 끝없이 희생을 강요당하는 구조화된 '폭력의 경제' 속에 갇혀있다. (116페이지)

초강대국 미국의 생활방식(세계인구의 1/20이 세계 자원의 50%를 낭비적으로 소모하고 있는...)을 추구하는 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소규모 공동체가 가진 미덕을 되살려야 한다.

인류가 당장의 욕심을 접고 공생공락하는 지속가능한 생활은 오직 소농들이 번창하는 농촌 공동체의 활력이 보증될 때만 가능한 것이다.

 

인류의 욕심은 지구를 점점 갉아먹고 있는데, 그래서 아파진 지구는 열이(온난화 현상) 난다.

이제 미열의 시기는 지나고 고열의 시기가 오고 있다. 여차하면 열병에 죽을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순간적인 욕심이라는 열기에 휩쌓여 눈이 멀어 있다.

 

부의 공평한 분배나 경제적 민주주의를 논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다급하고 절실한 것은,

미국적 생활방식 혹은 근대문명의 본질을 근원적으로 묻고, 그 너머를 내다볼 수 있는 급진적 상상력이다.

이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는 한 우리는 저항한다고 하면서 실은 비인간적 체제의 영구화를 돕는 신민 혹은 노예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다.

필요한 것은 '진보'가 아니라 개안 혹은 회심이다. (178페이지)

정말 문제는 한미 FTA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돈을 벌고,

'성공'을 해야 한다는 이 사회에 팽배해 있는 밑도 끝도 없는 욕망이다.(204페이지)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압도적인 지배 하에 들어가 있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민주주의의 진정한 반대개념은 정치적 독재가 아니라,

경제성장이라고 해야 옳을 지도 모른다. (208페이지)

 

현대인들의 마음을 갉아먹는 불안과 공포,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은 물질적인 성공이라는 한가지 기준에만 맞춰져 있다. 

전 지구적으로 모두가 물질적으로 함께 풍요로울 수는 없다. 그것은 지속가능하지 않기에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고, 속임수이다.

모두가 같이 행복하게 살려면, 물질적으로는 같이 다소 가난하게, 정신적으로는 같이 풍요롭게 살아야 한다. (377페이지)

 

"이 길이 아닌갑다~" 하는 이야기들은 열심히 길을 향해 뛰고 있는 사람들에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같이 가난하게 살자는 충고에 콧방귀를 뀔지도 모른다.

"마음으로는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나혼자 뒤쳐지면 어떻해?"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을 것이다.

해결책이 만만찮다. 욕심을 버리는 일은 쉽지 않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한 이유다.

 

그래도 일단은 눈을 뜨고, 어떻게든 마음을 돌려봐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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