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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
아브람 노엄 촘스키.미셸 푸코 지음, 이종인 옮김 / 시대의창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마다 책 읽는 방식이 다르지만, 나는 평소에 책의 본론을 읽기 전에 머리말을 먼저 읽는다. 그래서 책의 내용을 대강 짐작하거나 내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 지 판단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느낌이고 책을 읽으면서 그 느낌이 달라지기도 한다.
나는 이 책의 머리말을 처음 읽었을 때 어느 정도 집중해야 했다. 편안 자세에서 책을 읽었지만 자세를 고쳐서 책상에 앉아야 했고, 연필을 들고 논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중요한 구절마다 줄을 그어야 했다. 머리말을 다 읽으니 책을 다 읽은 기분이었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니 머리말이 이 책을 요약해서 정리해 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촘스키 씨와 저의 차이는, 이분이 과학을 말할 때면 공식적 형태의 지식을 뜻한다는 것이고 반면에 저는 지식 그 자체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다양한 지식의 내용이 특정 사회에 스며들어 교육, 이론, 실천 등의 기반이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푸코 53p>
생물학과 인류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 지능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게 없습니다. 17세기가 아니라 크로마뇽인 시대부터 따져도 그러합니다. 오늘 밤 우리가 토론하는 인간 지능의 근본 특성은 아주 오래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5000년 전이나 2만 년 전의 어린아이를 오늘날의 사회에 데려다놓아도 그 아이는 요즘 아이가 배우는 것을 그대로 다 배울 것이고, 그리하여 천재가 되거나 바보가 되거나 혹은 중간 어디쯤에 이를 겁니다. 어쨌든 그 아이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촘스키 57p>
촘스키와 푸코가 말하는 인간의 본성은 큰 견해 차이를 보인다. 촘스키는 인간의 본성이 시대를 뛰어넘어 불변하다고 주장하면서 결정론적 입장을 가진다. 반면에 푸코는 인간의 본성은 과학적인 해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처해 있는 현실 사회의 특징들 속의 한 지표로서 인간의 본성을 바라본다. 그래서 푸코는 촘스키와 달리 인간의 본성이 결정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촘스키의 주장들을 보면 상당히 과장된 경향이 있고 푸코의 주장들은 딱딱한 느낌이 든다. 어느 쪽에 손을 들어주기에는 무리가 있는데, 인간의 본성에 대한 둘의 시각은 내가 볼 때는 인지주의와 행동주의의 기본 이론들이다. 교육계열의 많은 학자들이 이것에 대해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논쟁을 벌이고 있으며 아직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둘의 주장들은 독자들이 어떻게 읽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판단되겠지만 나는 둘의 의견을 모두 긍정한다.
이외에도 둘은 '정의'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는데, 촘스키가 말하는 정의는 다분히 진보적이고 인권을 중시한다.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고 건강한 시민세력들이 성장하여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촘스키를 보면서, 미국 사회 내에서도 정의에 대한 진보적 인식이 이미 오래전부터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예로 들며 미국 사회의 권력형 비리들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은 압권이었다.
반면에 푸코는 정의에 대해 권력을 박탈 당한 자들의 항변이라고 본다. 즉 정의는 만들어진 개념이지 원래 존재하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푸코는 정치에서 권력이 독점되는 상황을 막아야 하고 사회적 약자들과 인권을 보호해야 하지만, 그것을 정의라고 보지는 않는다.
두 지식인의 의견들은 오늘날 사회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