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여성의 얼굴, 그리고 검은 혹은 하얀 색깔의 날개... 표지에 등장하는 '세이렌'은 호메로스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바다
요정이다. 여성의 머리와 물새의 날개와 몸을 가진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간혹 날개를 가진 인어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세이렌은 아름 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근처를 지나가는 배의 승무원들을 미혹시킨다. 그래서 배를 암초에 부딪혀 난파시키거나 조난시켜 뱃사람들 사이에서는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신화속 존재가 지금 이 시대 21세기에 나타난다. 사람들을 미혹하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말이다.
'이번에 데이토 TV는 BPO의 방송 윤리 검증 위원회로부터
지난달 방송한 애프터눈 JAPAN의 일부 내용에 대해 재발 방지책과 검증 방송을 권고 받았습니다. 보도국이 권고를 받은 건 올해들어 세
번째입니다'
<세이렌의 참회>는 반전의 제왕 나카야마 시치리가 던지는 우리 사회에 대한 또 하나의 날카로운 외침이다. 그가 이번에 꺼내든
칼은 바로 '언론'이다. 데이토 TV의 간판 프로그램인 '애프터 JAPAN'은 벌써 세번째 방송윤리위원회의 권고를 받은 터라 특종에 더욱 목을
매달게 된다. 2년차 기자 다카미 그리고 그녀의 선배 사토야! 단순히 그들만의 문제를 넘어 이제 사이토TV 회사에 경영까지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게된것이다. 그러던중 16세 여고생이 유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어느때보다도 특종이 절실한 상황에 놓인 다카미와 사토야는 이런 다급함에
언론인, 기자가 넘지 말야야 할 선을 넘어버리게 된다.
엠바고(embargo)란 '보도 시점 유예' 또는
'시한부 보도 중지'라는 저널리즘 관행을 지칭한다. 이 책에서는 보도 협정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얼마전 개막한 평창 동계올림픽 리허설에서 성화
점화를 무단 촬영한 외신에 대한 취재권 박탈이 적당한 예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엠바고가 지향하는 최종적인 목적은 언론을
수용하는 이들에 대한 권익의 보호에 있을 것이다. 이번 올림픽 개막식에서도 가장 중요한 성화점화에 몰리 시선이 이 어이없는 기자의 일탈로
시청자들은 허탈한 마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엠바고를 어긴 언론에 의한 피해자는 바로 우리가 되는 것이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 특징중 하나는 바로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는 긴장감'으로 표현 할 수 있을것 같다.
여고생 납치사건을 취재하던 다카미와 사토야는 납치된 여고생이 죽었고 그 용의자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하지만 보도협정을 무시하고 이
사실을 보도하게 되면서 방송사 입장에서보면 엄청난 특종을 손에 쥐게 된것이다. 용의자가 체포 되기만하면 특종을 거머쥐고 회사의 분위기도 바꿀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던 다카미, 하지만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어지고 다카미 역시 혼란에 빠지는데...

<세이렌의 참회>의 전체적인 구상은 단 이틀만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나카야마 시치리, 그를 천재 작가라고 부르는 이유가 아마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내가 쓰고 싶은 소설보다는 그때그때 모두가 읽고 싶은
소설을 쓰겠다' 는 작가로서의 자세를 가지고, 보통 어떠 작품 구상에서 편집자와 작품의 주제를 토의하고 사흘정도면 작품의 전체적인
구상이 완료되고 이후 하루 원고지 25장 정도씩 작품을 써내려간다고 한다. 정말 말만들어도 대단한 작품에 대한 열의와 천재성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가 아는 다작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아성을 위협 할(?) 작가가 아닐까? ㅋㅋ
' "허가되지 않은 곳에는 대체로 진실이 숨겨져 있어요. 저희는 대중에게 그걸 전달 할 의무가
있고요. 대중도 알 권리가 있어요." "진실말이군" "당신들과 방송 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도무지 그런 것에 관심을 두는 것 같지 않아서
말이지." ... "진실이라는 건 실제로 그렇게 달콤하지 않아. 당신이 일컫는 대중이란 인간들이 정말 그런 걸 원하느냐는 말이야." ' - P.
62~63 -
이 작품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우리 사회의 모습과 많은 부분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치르고 있는 이전 정권, 그 이전
정권의 비리와 상처속에는 언론이란 이름을 가진, '기레기'들의 활약상이 대단 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 년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어긋난
상식에서 벗어나 있는 일들을 바로 잡는데만으로도 많은 시간들이 소요될거란 사실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아직 정상화 되지 못한 공영방송들과 어떤
모습으로든 변화되거나 사라져야 마땅할 종편 방송들의 행태가 아직도 변함 없다는 사실이 앞으로 우리의 자세와 나아갈 길을 보여주고 있다.
앞서 엠바고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이의 문제점 하나가 바로 국민들이 알 권리와 반대편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이전 정권에서 짜여진 각본대로
꼭두각시 질문만 연발했던 기레기들의 모습을 엠바고로 볼 수는 없을 것이 분명하고, 어떤 것이 되었든 가장 중요한 것은 잘못된 언론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우리 국민들 자신이라는 사실은 자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기자, 언론인 이라면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자부심과 사명감도 필요하다.
하지만 잘못된 실수나 보도에 대해서 곧장 사죄하고 권력에 아첨하지 않으며 항상 고개숙이고 초심을 갖는 자세가 그들에게 절실하다는 생각도든다. 이
책을 이 시대 수많은 기자와 기레기들에게 바치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시나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의 끈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더불어 우리 사회속 작은 사회, 학교에서 벌어지는 집단 괴롭힘의 문제, 청소년
관련 문제들, 가장 기본적인 사회 가족간의 소통 문제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이렌의 참회>는 반전이 가진 매력도 대단하지만, 마지막 뭔가 마음이 확 정화되는 그런 느낌의 작품이랄까? 뭐, 역시 대단한
작가구나 생각케 만드는 작품이구나 확인하게 된다.
'속죄의 소나타', '연쇄살인마 개구리남자', 그리고 '세이렌의 참회'까지 지난 3개월 동안 매달 한번씩 그의 작품과 마주했었다.
만날때마다 새로운 소재와 작가만의 스타일로 '이 작가다!'라는 확신을 갖게 만드는 나카야마 시치리!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소재든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써 나가는
자세' 라고 말하는 나카야마 시치리... 그의 천재성과 더불어 올 한해도 그와 만날 일이 더욱 많아질것 같은
기분좋은 생각이 함께 한다. 봄이 시작하는 다음달에도 나카야마 시치리와 또 만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