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섬! 나에게는 두 가지 정도의 인연으로 다가오는 섬이다. '열두 달 남이섬 나무
여행기' 라는 부제를 가진 <나무, 섬으로 가다>는 그래서인지 나의 눈을 쉽사리 사로잡았다. 물론 '남이섬'이라는 개인적인 인연을
접어두더라도 또 하나 이 책에 마음이 끌렸던 이유는 아마도... 내가 나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서 일까? 우리에게 그리고 이제는 세계인들에게
더 익숙하고 친숙할 그 섬의 또 다른 시선, 나무를 통해서 바라본 섬의 사계라는 특별한 시선이 아무래도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이 작품은 2016년 2월부터 2017년 1월까지 한 달에 몇번씩 남이섬을 머물며 담아낸 나무, 바람, 해와 달의
모습에 귀기울인 작품이다. 단순히 나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섬과 나무, 그리고 그 속에 담겨진 이야기와 사연들을 그려낸다. 시작의 글에서
작가는 '나무'의 뜻을 이렇게 풀이한다. 나무가 '나는 없다(無)' 또는 '나만은 없다(無)'로 들린다고... 나무가 흔들리면서도 꿋꿋이 서있을
수 있는 이유는 서로에게 가지를 기대고 어우리지기 때문이며 혼자서는 살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이다. 우리 세상도 그렇다. 나 혼자서만은
살수 없다. 나무처럼 어우러져야 살 수 있다. 나무가 모여 숲이 되듯...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그 계절을 따라 남이섬 곳곳에 숨은 아름다운 풍경과 발끝에 채이듯 어쩌면 흔한
나무 한그루 한그루에 의미를 불어넣는다. '동쪽 강 서쪽 강 만나는 두물머리 창경대' 섬 남쪽에 있는 이 풍경에서 밤나무와 산수유 등 우리
주변에서 볼수 있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익숙한 나무들과 풍경이 뒤섞인다. 남이섬에 존재한다는 220여종, 2만5천 그루가 넘는 나무들의 천국,
남이섬 탐험이 그렇게 시작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남이섬, 나무 여행을 하면서 곁에 <APG 나무도감>을 같이 준비했다. 습관처럼
말이다. ^^
앞서 남이섬과 나의 인연을 이야기 했었다. 그 하나는 아내와의 연애 시절 인연이다. 만나고 얼마지나지 않아 아내에게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냐고 물었다. 그때 아내의 대답이 바로 이 남이섬이었다. 그때만해도 개인적으로도 처음 만나는 남이섬은 어쩌면 그때까지도
드라마 '겨울연가', '욘사마'의 섬이었다. 물론 지금도 동남아 관광객들에게는 그런 의미로 많이 다가오겠지만... 낯선 섬, 하지만 정말
따뜻하고 즐거웠던 섬, 그렇게 사랑을 키워준 멋진 곳이 고맙게도 바로 남이섬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인연은 바로 남이장군과 관련되어서이다.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실제 남이장군의 묘가 바로 내가
살고 있는 화성 비봉에 자리한다. 하지만 '남이섬'이라는 명칭을 가져오게 된 전설속 돌무더기가 바로 이 남이섬에 존재한다. 묘하다면 또 묘한
인연! 그리고 또 하나 '나무'라는... 남이섬은 어쩌면 남이장군 묘에 관한 전설처럼 전설속의 섬이 될 운명이었을 수도 있었다. 지금의 청평댐이
없었다면 물속에 가라앉아 온전히 섬의 모양을 갖추지 못했을테니 말이다. 전설같은 섬이 지금은 멋진 나무들과 함께 겨울연가, 연인들의 섬, 요즘
또 다른 즐거움 짚라인 등과 함께 또 다른 전설이 되고 있으니 너무 재미있지 않은가?
물이 오르고 잎이 나서 꽃이 피는 시기가 아니면 또 아닌대로, 작은 꽃 눈과 마른 열매가 달린 늦은 겨울을 달려
매미 유충이 소리내어 울 봄을 달린다. 벚꽃 멀미를 느끼다가도 어느새 밤꽃 향기로 섬은 가득해진다. 밤나무 줄기를 타고 올라간 능소화들은 하늘의
끝을 붙잡을 기세로 손을 뻗쳐올린다. 싸리 나무가 보랏빛 여름을 연다면, 배롱나무는 '백일홍'이라는 이름답게 붉은빛으로 타올라 8월 무렵부터
3개월간의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 그리고 가을...
'나무는 매미뿐 아니라 많은 곤충이
알을 낳는 보금자리이다. 땅속 애벌레에게는 수액으로 젖을 주고, 나무 위에 사는 이들에게는 초촉잎으로 밥을 먹여준다. 새에게는 맛난 먹이들이
숨어 있는 나무가 살아 있는 통조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 P. 59 -
가을이 되면 '참나무 집안 도토리 형제들'이 우리를 찾아온다. 우리나라에는 보통 6종류의 참나무 도토리 형제들이
있는데... 가장 쉽게 그들을 구분하는 방법은 바로 잎과 줄기의 모양을 보고 구분하거나 도토리의 모양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는 도토리의 모가자 털모자같은 모양을, 신갈나무와 갈참, 졸참나무는 매끈한 빵모자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구분이 쉬울것이다.
가늘고 날카로운 잎을 가진 상수리와 굴참나무, 그리고 신갈과 떡갈 나무는 잎이 넓적하다. 졸참, 갈참 나무는 그 중간이랄까? 이런식으로 참나무
집안 도토리 육형제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이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 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 [벌레먹은 나뭇잎] , 이생진 , P.307 -
어느 시인은 벌레가 뚫은 떡갈나무 잎을 보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낭만... 나무 한그루를 보고, 아니
벌레가 지나간 흔적을 남긴 나뭇잎의 아름다움을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 것이다. 작은 책 한 권을 펼치면서 습관처럼 나무도감을 꺼낸 나의 모습이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다. "이름이란 게 무슨 소용인가. 장미는 다른 이름으로 불려도 똑같이 향기로운게 아닌가." 줄리엣이
했다던 혼잣말이 더욱더 이 책의 향기를 말해준다. <나무, 섬으로 가다>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알려주는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마지막 '나무 찾아 보기'는 또 다른 작은 친절함으로 다가온다. 지금 나의 집 마당 앞에 몇
개의 잎이 팔랑거리는 감나무가 앙상하게 눈에 담긴다. 그 모습 자체만으로 지난 가을의 풍성함을, 여름의 싱그러움이 고스란히 머릿속에 그려진다.
몇번을 찾았던 남이섬, 이번에 다시 그 섬을 찾는다면 <나무, 섬으로 가다>의 길을, 그 풍경속 나무를 만나보리라. 밝은 웃음과
활력, 열정이 넘치는 섬에서 조금은 다소곳이 정적인 느낌의 남이섬을 이 책을 통해 만난다. 색다른 경험, 또 다른 만남의 기대! <나무,
섬으로 가다>가 건네준 작은 선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