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가 참 마음에든다. 인상적이다. 사랑하는 듯해 보이는 두 남녀, 그리고 그들 사이의 달 하나. 무채색의 색감 역시 그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담아낸듯 보인다. 제목 역시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영휴(盈虧), '차고 기울다' 라는 의미를 가진 이 제목은 또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한없는 물을표들이 늘어간다. 달이 차고 기운다? 사랑? 이들 사이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을까? 그남자, 그여자는 어떤
사연을 가슴속에 품고 있는걸까? 얼른 책을 열어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나는 달처럼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
오사나이 쓰요시. 한 남자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호텔로 들어선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유명 여배우와
일곱살 정도된 그녀의 딸이다. 그리고 또 한 명 만나기로 했던 남자의 부재를 오사나이는 그녀들에게 알린다. 그리고 오사나이의 과거 이야기가
시작된다. 도무지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감을 잡지 못하는, 그저 평범한 이야기이다.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 딸아이 루리의 어린 시절
가출과 이후 평범한 고교생활을 거쳐 대학에 들어가게 되는 이야기... 하지만 그 마지막에 드디어 사건이 벌어진다. 고교 졸업식을 마친 딸 루리와
아내 고즈에의 갑작스런 교통사고! 그렇게 오사나이는 혼자가 되었다.
자신의 딸, 오사나이 루리의 죽음.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고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온 또 다른 루리! 그리고 이야기의 시작이 될 나라오카
루리라는 여인의 삶에 이야기는 촛점이 맞추어진다. 사랑, 죽음, 그리고 환생! 이야기의 중반 이후부터 전반적인 흐름이 조금씩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또 다른 한 사람 '마사키 류노스케'라는 이름이 이야기 전반에 등장하며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반전은
마사키라는 이름이 아닌 전혀 다른 이름으로 시작되게 되는데...
<달의 영휴>는 2017년 157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사토 쇼고의 작품이다. '옴짝달싹할 수 없을 정도로 빈틈없는 이야기인데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말하는 아사다 지로, '압도적인 문장력을 가졌다!'고 말하는 기타카타 겐조의 심사평은 책을 내려놓을 때쯤 절대 과장이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2017년을 장식한 최고의 작품을 2018년 가장 먼저 만나는 행운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책을 내려놓으며 가슴을
울리는 표지와 차고 기우는 달에 비유한 제목에 가졌던 물음표는 이내 느낌표로 뒤바뀌어 버린다.

수수께끼 같은 만남! 처음 그 만남의 시작속에 오사나이라는 남자가 있다. 작품의 거의 대부분을 그의 시선,
혹은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채워 지지만... 어쩌면 오사나이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 아니다. 루리라는 이름이 가장 크게 다가오고, 그
이름의 반대편에 선 두 남자, 이야기의 시작점에 선 그들의 이름 역시 주인공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을 앞서도 예고
했지만, 다시금 생각해보면 결코 특별하지 않은 관조적인 입장의 오사나이의 반대편에 선 이들 때문에라도 그가 <달의 영휴>의 주인공이
확실해 보이기도 하다.
"하느님이 이 세상에 태어난 최초의 남녀에게 죽을 때 둘 중
하나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어. 하나는 나무처럼 죽어서 씨앗을 남기는, 자신은 죽지만 뒤에 자손을 남기는 방법. 또 하나는 달처럼
죽었다가도 몇번이나 다시 태어나는 방법. 그런 전설이 있어. 죽음의 기원을 둘러싼 유명한 전설인데, 몰라?" - P.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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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환생, 윤회...라는 조금은 평범한 소재를 차용하고 있으면서도 어느 한구석 평범하지 않은, 색다르고 특별한 느낌을 전해주는 스토리
라인은 정말이지 그 틈을 내어놓지 않는다. 사실 이야기의 초반 스토리의 복잡성과 혼동되는 낯선 이름들 탓에 약간의 지루함?이 느껴지는듯
했지만.... 그런 느낌을 상쇄 시켜주고 지탱해주는 한가지가 있었으니, 바로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수식이었던것 같다. 뭔가 있다! 이건
확실히 뭔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있었고 확실히 그 무언가를 찾아낼 수가 있었던 작품이다.
환갑을 넘긴 작가 사토 쇼고는 'Y', '신상이야기' 정도만으로 국내에 소개된 조금은 낯선 작가다. 이번 나오키 상 수상으로 아마도 그의
더 많은 작품이 국내 독자들을 찾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적지 않은 나이, 나오키 상을 수상하며 열정을 더해가는 노작가의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달의 영휴>를 옮긴이는 이 작품을 두 번 읽으라고 권한다. 사랑과 환생, 계속 반복되는 하나의 이름속에 담겨진 복잡한
이야기들을 다시금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줄것이라고...
하느님이 사람의 죽음에 두 개의 방법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과연 나는 어떤 죽음을 택할것인가? 나무같은 죽음? 아니면 달과 같은
죽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죽음의 모습이 그나마 인간적인 모습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것이 더 소중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반복이 아닌 단 한번의 삶임을 인식할때 지금 나의 삶이 더욱 소중하고 값지고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끔은 달처럼
죽어 다시 태어나기를 꿈꾸기도 한다. 아주... 아주... 가끔은...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