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포항에서 일어났던 지진으로 아직까지도 온 나라가 공포와 안전 문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진도 5, 6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쉽지 않지만 그곳에서 느꼈을 많은 분들의 공포와 한숨이 그려진 언론과 미디어속에서 우리는 조금은 공감하고 아파하기에 충분함을
느꼈다. 더불어 지진으로 인한 원전에 대한 안전문제 역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 사실 지진이 있기 얼마전까지만해도 전쟁이다 뭐다해서 북한과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 사이에 여러가지 험악한 말들이 설왕설래 하기도 했었는데, 하물며 이런 작은 지진에도 원전 안전 문제가 도마에 오르는
현실에서 전쟁이라니, 생각만해도 아찔하지 않은가?
갑자기 등장한 전쟁이야기는 이 책 <전쟁터의 요리사들>때문에 문득 든 단상이기도 하다. 노란 머리 휘날리는 미국 대통령의 기행이
아니고서도, 전쟁은 결단코 우리 땅에서 이루어져서는 안되고 혹시의 경우라도 우리의 의사나 결정 없이 벌어져서도 안된다는 점은 아마도 명확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전쟁을 말하면 한국은 몸서리
친다'는 한강 작가의 NYT 기고 글이 개인적으로는 참 마음에 와닿는다. 그리고 아마도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그런
생각과 함께 하리라 믿는다. 전쟁의 참혹함! <전쟁터의 요리사들>은 바로 그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깊어지던 시기, 드디어 미국이 참전을 결정하게 된다. 이로써 1942년 지원병 모집에 나서게 되는데, 평범한 생활을 하던
이 책의 주인공인 티모시 콜은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원 입대를 결정하게 된다. 인생의 낙을 '먹는것' 에서 찾곤했던 콜은 어린 시절부터
즐겨보던 할머니의 레시피 공책을 부적삼아 입영열차에 오른다. 그의 나이 열일곱! 2년여의 훈련끝에 그가 참전한 전투는 바로 그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 참혹한 전쟁터의 한복판, 열아홉 어린 나이의 소년은 그렇게 참혹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몸을 내던지게 된다.
할머니의 레시피 덕이었을까? 콜은 조리병으로 착출되고 에드, 디에고, 라이너스와 함께 조리병으로써 식재료의 보급과 관리, 그리고 조리에
이르기까지 병사들의 식사에 관한 막중한 책임을 지게된다. 그러던 중에 사라진 분말 달걀 상자와 같은 조리병과 관련된 사건들부터, 괴이한
살인사건과 맞닥들이기도 하고, 유령 사건 등 다소 황당한 사건들과 마주하기도 한다. 조리병이기에 앞어 전투병의 역할 역시 그들의 임무이기에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한 미스터리한 사건을 팀과 동료들은 해결해 나간다.

'사랑스러운 조리병들이 선사하는 일상 미스터리'라는 수식으로 가볍게 만나게 되었던 작품이다. 하지만 그런
수식처럼 이야기는 단순한 코지 미스터리의 범위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그들의 임무는 단순히 조리병을 넘어 전투병에
이르기때문이다. 더불어 이야기의 배경이되는 공간 역시 우리에게는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이다. <전쟁터의 요리사들>은 그
공간배경이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던 유럽 여러 나라에 걸쳐있다는 사실이다. 전혀 일상적이지도 않고 그 사건 역시 일상 미스터리의 범주안에
가두기는 쉽지 않아보인다.
'나를 걱정해준다면 바깥세상에서 열심히 살아라. 앞으로 더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전쟁터에 가지 않아도 되도록.' ... 세상은
백도 흑도 아니다. 회색의 세계다. 이 흐린 하늘처럼 명암이 변덕스레 바뀌는, 잔인하고 아름다우며 향수를 자극하는 회색이 한없이, 한없이 뒤덮고
있다. - P. 522, 523 중에서 -
더구나 더욱 일반적이지 않은 한 가지가 더 있다. <전쟁터의 요리사들>의 작가 후카미도리
노와키, 일본 작가의 작품임에도 일본인이 등장하지 않는 비아시아권의 주인공들과 사건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벌인 전쟁의 묘사가
아니라,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 미국의 시점에서 전쟁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는 사실 역시 이 작품에 찬사를 보내게 되는 이유이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2위', '나오키상, 서점대상 후보'를 비롯해 수많은 상에 노미네이트 되는 등 후카미도리 노와키의 노력과 특별함을 여실히
느낄수 있는 작품임에 틀림없을것 같다.
'각국의 이해관계로 인해 생긴 정의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고 말하는 후카미도리
노와키의 말처럼, 미스터리한 사건을 풀어나가는 콜과 동료들의 시간들을 이어보면 어느새 전쟁이라는 단어가 간직한 참혹함과 비열함을 고스란히
느낄수가 있을 것이다. 처음 <전쟁터의 요리사들>이라는 제목을 통해 가졌던 단편의 고정관념은 어느새 참혹한 전쟁터를 누비는 열아홉살
소년을 통해 거대한 스케일을 소비하고 조금은 무거운 마음을 간직하게 된다. 셰프 탐정? 콜과 동료들! 그들의 특별한 활약상, 놀랍도록 섬세한
유럽의 시간들, 그리고 전쟁! 생각지도 못했던 독특하고 즐거운 책과 함께 한 시간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