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속에 숨겨진 암호와 비밀들을 숨막히는 전개로 파헤쳐가던 소설 '다빈치 코드'가 역사와 상상의 나래속에서
신선하게 다가왔던 시간이 벌써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화속에는 그림 외에 무언가가 담겨있다는 말이 '다빈치 코드'를 보고나면
정말 사실인듯 느껴진다. 그리고 또 하나의 예술 작품을 통해 그 말이 진실이 아닐까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세계적인 예술가 피카소의 작품을
통해서 말이다. 피카소라는 이름과 함께 한번쯤은 만나봤을 - 혹시 제목은 모를지라도 - '게르니카' 라는 작품속에서 '그 무언가'를
찾아본다.
'옛날에 있지, 전쟁이 있었단다. 사람이 많이 죽었어. 일본
사람도, 미국 사람도, 스페인 사람도..... . 이건 전쟁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이래. 이젠 전쟁을 해선 안 된다고, 피카소가
그림으로 말한 거야.' - P. 9 -
어린시절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피카소의 그림을 만나 미술계에 발을 내딛게 된 '요코'! 그녀는 지금 어린시절의 그 장소,
뉴욕현대미술관에서 회화, 조각부문의 큐레이터로 일하며 피카소 전문가로 통한다. 지금까지도 우리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충격적인 사건, 9.11
테러를 통해 남편을 잃어버린 요코, 나락으로 떨어졌던 그녀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을 건네준건 바로 다름아닌 피카소의 작품이었다. 남편이 결혼
선물로 주었던, 피카소가 그렸다는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드로잉, 그리고 반전(反戰)의 상징이기도한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그녀에게, 상처받은
뉴욕시민들에게, 전 세계인들에게 치유의 힘을 보여줄거라 믿게된다.
그런 믿음과 신념으로 피카소전을 기획하고, 스페인으로 반환 된 '게르니카'를 전시를 기획하게 되지만, 현실은 요코의 의도대로 녹녹하지만은
않다. 하물며 누군가의 음모로 인해서 유엔본부의 게르니카 태피스트리(명화를 천에 복재해서 그린 것)의 암막 사건 용의자로 억울한 누명을 쓰기에
이르는데... 누명을 쓴 요코, 그녀는 진짜 게르니카를 찾기위해 스페인으로 떠나게 되고, 게르니카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암투와 목숨을 건 사투가
전쟁의 포화속에 담겨진 역사의 한 페이지와 함께 거침없는 전개로 긴장감을 더해준다.
사실 <암막의 게르니카>속에는 요코의 이야기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작품은 두 개의 시간을 넘나들며 '게르니카'와 관련한
사건과 이야기를 재미있게 그려나간다. 현재의 시간속에 요코가 있다면, 과거의 시간을 이끌어가는 인물은 피카소의 연인이었던 '도라'이다. 그림
의뢰가 들어오고 무엇을 그릴지 고민하던 피카소는, 스페인 내전 당시 나치가 폭격한 자신의 고향 게르니카의 참혹한 현장을 그리게 된다. 전쟁의
비극, 고통, 상처와 아픔을 피카소 자신이 표현하던 예술 방식으로 담아낸 작품, 반전 메세지를 담아낸 작품이 바로 '게르니카'인 것이다. 도라의
시선으로 그려진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함께 현재의 요코의 시간들이 교차하며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이야기는 재미를 더하게된다.

<암막의 게르니카>의 저자 하라다 마하는 9.11 테러 당시의 상황에서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실제로 뉴욕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 출신이기도 했던 그녀는, 9.11테러가 발생하고 미국이 이라크에 보복을 선언했던 뉴욕유엔본부의 기자회견을 모티브로 이 작품을 썼다고
전해진다. 당시 유엔본부에 걸려 있었던 게르니카 태피스트리가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암막에 가려져 있던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반전의 상징인
게르니카 앞에서 이라크 공습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한다는 아이러니한 현실, 이것이 바로 하라다 마하의 <암막의 게르니카>라는 제목처럼
고스란히 소설속 이야기의 소재가 된 것이다.
'예술가란 무엇인가. 그는 정치적인 존재다. 지속적으로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다. 그것은 괴롭거나, 씁쓸하거나, 달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세계에 의행 형성될 수밖에 없다. 타인에게 흥미를
느끼지 않고, 그들의 존재에 참여하지 않고 상아탑 안으로 숨어버리는 것이 가능할까? 절대 그렇지 않다. 회화는 실내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에서 적에 대항하여 공격하고 수비하는 도구이다. -파블로 피카소 -
개인적으로는 하라다 마하를 한번 만나본 적이 있다. 물론 작품속에서 말이다. 2015년 '키네마의 신'을 통해서 그녀의 향기를 잠시나마
함께 했었다. '구제불능 아버지와 직장에서 밀려난 백수 딸, 두 사람에게 영화처럼 찾아온 인연!'이란 짧은 수식과 더불어 가족이라는 감동이 있는
이야기에 개인적으로 좋아라하는 영화라는 소재까지... 기분 좋아지는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몇년이 흘러
피카소라는 이름과 함께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품으로 그 이름을 다시금 되집게 되었다.
아트 미스터리 서스펜스! 아직 만나보지 못했지만 그녀의 이전 작품인 '낙원의 캔버스' 역시 큐레이터라는 그녀의 경험을 살린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니, 이 분야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로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해나가는 그녀의 모습이 더없이 멋지기만 하다. 예술은 단순히 예술만이
아니다. 예술가 역시 위에서 말한 피카소의 말처럼 단순히 예술가 만이 아니어야 한다. 최근 우리 사회는 블랙리스트다 화이트리스트다 해서 말들이
참 많아보인다. 예술가들의 붓과 펜 끝을, 입과 소통의 창구를 막아버린 권력자와 그 시녀들은 아마도 피카소의 이 말에 겁을 먹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다.
'다빈치 코드'가 그랬던 것처럼, 이 작품 역시 영상화 하면 더욱 시선을 모을 작품이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인디페이퍼라는 출판사는 사실
조금은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작품 <암막의 게르니카>를 통해서 많은 이들에게 조금 더 사랑받고 침체된 우리 문학계에 또 하나의
신선한 바람이 되어줄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https://www.facebook.com/indiepaper 무더운 여름, 많은 이들이
흘렸을 땀의 흔적들이 이 결실의 계절에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으로 피어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피카소는 스페인과 민주정치 부활과
게르니카의 스페인 귀환이 유언이었다고 한다. 위대한 예술가의 유언처럼, 우리 땅에서도 진정한 민주주의와 예술의 자유가 무르익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