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지난주부터 말라붙었던 대지에 가녀린 비가 내린다. 불볕이던 대지를 적시는 빗물로 온통 끈적거리는 습기를 머금은 일주일을 버텨냈다. 오늘도 여전히 비요일, 말라버린 저수지 바닥을 채워주기엔 아직 역부족이지만, 우리들의 목마른 갈증을 채워주기엔 충분함을 다시금 느끼는 그런 비가 내린다. 끈적거림과 내리쬐는 볕하나 없는 찜통더위로 몇날밤을 지세온 나에게 또 다른 끈적거림과 오싹한 책 한 권이 배달되었다. 익숙한 이름, 오랫만에 만나는 반가운 이름, 언제나 기대를 품게되는 이름의 그와 만난다.


모리미 도미히코! 7년, 8년전? 어느새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대표작이라면 역시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꼽을 수 있을것 같은데, 이 작품을 만난건 소설이 아닌, 만화로 출간된 2010년 경이었다. 독특하다는 첫인상을 뒤로하고 그해 그의  또다른 몇몇 작품들과 함께했던 기억이있다. '유정천 가족', '요미야마 만화경'... 하나같이 모리미 도미히코의 독특한 색깔로 쓰여진 작품들이 너무나 인상적으로 다가온것은 나뿐만이 아닐것이다.


' "왜 야행일까?" 내가 중얼거리자 화랑 주인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야행열차夜行列車(밤에 다니는 열차 - 옮긴이)의 야행 일수도 있고, 아니면 백귀야행百鬼夜行(온갖 귀신이 밤에 다닌다는 뜻 - 옮긴이)의 야행 일지도 모르죠." '  


그렇게 정말 오랫만에 만나는 모리미 도미히코를 기대하지 않는다면, 반갑지 않다면 분명 거짓말이 맞을 것이다. <야행夜行> 이라는 제목을 통해 유추해본다. 본문속 대화속에서 보여지는 '야행'에는 왠지 기차가 등장할 것 같고, 분명 오싹한 귀신들이 모습을 내어보이지 않을까 기대된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스타일이 그렇듯 그것들이 너무 강렬하게 존재감을 뿜으며 등장하는 것이 아니고 이야기속에서 문맥속에서 어딘지 모를 오싹함과 괴담 수준의 공포를 통해 독자들의 눈과 귀를 모으게 하고 마지막 어떻게 이야기가 마무리될까? 궁금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전해준다.


10년만에 만난, 학창시절에 다니던 영어회화 학원 동료들과 교토의 구라마 진화제를 다시금 찾기로 한 나, 오하시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10년전 그때는 오하시를 포함해 모두 여섯명이 구라마를 방문했지만 돌아온 사람을 다섯명뿐이었다. 하세가와씨가 그날 밤 실종된 것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녀! 그리고 10년만에 다시 구라마 진화제를 찾은 사람들! 오하시는 문득 하세가와씨와 닮은 사람을 보게되고 그녀를 쫓아 한 화랑에 들어서는데, 하세가와씨는 온데간데 없고 거기에서 기시다 미치오라는 작가의 동판화 '야행'을 만나게 된다.





실종된 하세가와씨, 그리고 구라마를 찾은 오하시와 나카이 씨, 다케다군, 다나베 씨, 그리고 후지무라 까지... 이야기는 오노미치를 찾은 나카이씨가 겪은 이야기부터 다시금 시작된다. 갑작스럽게 집을 나가버린 아내를 찾아 나선 나카이는 오노미치에서 그녀와 똑같이 생긴 여자와 만나면서 벌어지는 오싹한 경험을 하게된다. 오쿠히다를 방문한 다케다의 이야기속 할머니는 그들에게 죽음에 대한 예언을 하고, 아오모리를 방문했던 후지무라는 하나도 변하지 않은 어린시절 친구를 만나게되고, 다나베씨는 열차속에서 만난 미스터리한 소녀까지... 하나같이 몽환적인 분위기속에서 하나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이야기가 이어진다. 바로 처음에 언급했던 기시다 미치오와 그의 작품 '야행'으로 말이다.


기시다 미치오! 그는 누구일까? 하세가와씨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그리고 오하시를 제외한 다른 동료들이 겪었던 믿기 힘든 오싹하고 괴이한 경험들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이 모든 이야기들의 중심에 선 '야행'이 가지고 있는 비밀은 무엇일지... 이런 궁금증들로 책장을 넘기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이야기 속에 빠져든다는 말이 맞을듯 싶다. 언제나 그랬다. 많이는 아니지만 모리미 도미히코의 작품들과 함께 했던 순간에는 생각지못한 판타지와 몽환적 분위기, 가끔은 기이한 이야기들로 눈과 귀를 사로잡기 일쑤였다. 아마도 그의 작품들이 야마모토슈고로상, 일본SF대상, 서점대상 등에 꾸준히 그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21세기 일본의 새로운 재능! 모리미 도미히코를 일본에서 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교토라는 공간을 주로 배경으로 사용해서 '교토 작가', '교토 천재'라는 별명 또한 가지고 있는 그이다. '매직 리얼리즘' 이란 표현으로 그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대신할 수 있을것 같다. 현실과 가상이 혼재되어 있어 어느것이 현실이고 환상인지 모를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그만의 독특하고 색깔있는 기법을 우리는 이렇게 부르고 있다. 또한 교토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일본이 가진 독특한 색깔 역시 작품속에 잘 녹여 담아내는 작가가 바로 모리미 도미히코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반전의 매력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야행>이 가진 매력중 하나이다. 여러 동료들의 이야기와 그속에 등장하는 동판화 '야행'과 인물들, 다양한 퍼즐들을 맞추어 나가다보면 어느새 예상치 못한 반전이 우리들을 기다린다. 이야기의 시작때부터 진한 물음표로 시작했던 마지막 결말에 대한 궁금증... 작가 기시다 미치오의 작품 '야행' 그리고 '서광' 이 속에 그 작은 답이 담겨져 있다. 밤(夜)에 담겨져 있는 여러가지 의미와 이미지들이 작품속에서 메아리친다. 어둠이 품고 있는 두려움, 사람이 가진 악(惡)의 근원! 귀신과 죽음이라는 공포, 하지만 밤은 신비로움과 빛에 관한 갈망과도 연결되어진다. 모리미 도미히코는 바로 이런 단어들에 <야행>을 담아낸것이 아닌가 싶다. 아주 오랫만에, 비요일에 만난, 분위기가 정말 잘 어울리는 이 만남이 너무나 즐겁고 행복한 날이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