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변명' 끝에, 오늘 우리는 커다란 기쁨과 작은 희망으로 들떠있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일이 발생했고, 그것이
국민의 뜻에 합당했다는 판단하에 그것은 인정받았다. 그 기나긴 시간동안 주인인 국민들을 알아보지 못한 대통령은 변명 아닌 변명만을 내어놓으며,
사과 같지 않은 사과를 일삼고 뒤에선 국민들의 뒤통수를 휘갈겼고, 떳떳한 자신의 의견 한번 개진하지 못한채 오늘을 맞이하게 되었다. 기쁘면서
슬프고, 웃으면서도 씁쓸하다. 이게 끝이 아닌, 우리에게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는 '아주 긴 변명' 조차도 늘어놓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또 다른 <아주 긴 변명>
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 변명은 아내를 사고로 잃은 한 남자의 것이었다. 300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기~이인 시간동안 그의
변명같은 이야기는 끝을 모르고 이어진다. 지금은 유명 소설가인 사치오. 그에게 (보통 남편들이라면) 청천벽력과도 같을 소식이 전해져 온다.
갑작스런 사고로 인한 아내의 죽음! 하지만 사치오는 흔들림이 없다. 가까운 지인이 죽어도 그렇지 않을텐데, 하물며 아내의 죽음에도 눈물한방울
훌쩍 거리지도 않는 강인함(?)이 엿보인다.
'사랑해야 할 날들에 사랑하기를 게을리 한 대가가 작지 않군.
대신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공존은 상실을 치유하고, 할 일을 늘려주고, 새로운 희망과 재생의 힘을
선물해주지. 그러나 상실의 극복은 바쁜 일이나 웃음으로는 절대 성취되지 않아. ... 우리는 둘다 살아 있는 시간을 너무 우습게 봤어.' -
P. 325 -
이제 사랑하지 않아. 털끝만큼도...
사치오의 아내였던 나쓰코 역시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처음부터 사치오가 유명 작가이지도 않았지만, 그를 뒷바라지 하고
유명해지기 시작해서도 나쓰코의 역할과 태도는 전후가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 부부의 관계 역시 이미 일정한 간격 그 이상으로 벌어져 있었다.
나쓰코의 갑작스런 죽음에도 꿈쩍 않던 사치오도 같이 사고를 당한 유키의 가족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심경의 변화가 찾아온다. 그리고
그에게 사랑하던 그녀, 나쓰코가 다시금 마음속에 남겨진다.
'아낀다' 의 뜻은 '귀중하게 여겨 함부로 쓰거나 다루지 아니하다.' 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너무나 소중해서 닳을까봐 애지중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익숙해지게 되면 그 애지중지의 대상이 그, 혹은 그녀에서 나 자신으로
옮겨지게 마련이다. 부부관계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소중한 것은 가장 가까이에 있지만 우리는 익숙해진 관계의 틀 속에서 이 모든 것들을
놓치고, 다음에 다음에 미루면서 살아간다. 오늘이 아니면 안되는데... 하지만 언제나 기회를 잃어버리고 후회를 반복한다.
<아주 긴 변명>에 시선을 모은 이유는 니시카와 미와 라는 낯선 작가때문이 아니라 '김난주' 번역가의 이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에쿠니 가오리와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들뿐아니라 일본 소설작품 번역으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그녀이기에 믿고 만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책을 읽어가는 내내 담담하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내의 죽음을 기점으로 '변명'으로 이어져가는 한 남자의 삶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결국 그의 곁에 없는 아내의 빈 자리를 드러나고 깨닫게 되는 시점에서의 섬세한 감정 표현이 두드러진다.
"왜 우리는 소중한 것들에게 상처를 주는 건지. 눈에 보이는
신호를 무시하고, 잡았던 손도 놓아버리고, 언제나 기회를 날려버리죠. 왜 이렇게 맨날 헛발을 디디고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는지. 정말
끔찍합니다. 책을 읽어도 돈을 벌어도 전혀 현명해지지를 않으니. ..." - P. 284 -
소중한 것은 언제나 나중에서야 깨닫게 된다. 상처를 주고, 한껏 아파하고, 쉽게 손을 놓아버린후 '후회'라는 이름으로 부메랑이 되어
아픔으로 되돌아온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도 그렇고, 아내에 대한 시간들, 그리고 가까운 친구와의 이별 역시 그렇게 아픔섞인 후회로 자리한다.
나이가 들면서 예전보다 참 말이 많아졌다는 생각이든다. 누군가에게서 나를 변호하고 나의 잘못을 들키지 않으려하고 나의 말이 옳다고 소리높여
외치려고 말이 많아지는 것은 아닐까?
변명아닌 변명으로 나 자신을 정당화하려했던 오늘 우리의 대통령을 떠올리게 만든 <아주 긴 변명>, 그리고 설거지 하는 아내의
손이 닳을까 아까워 내가 애써 설거지를 도맡아했던 결혼초와는 너무 변해버를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소중한 시간을 이 작품을 통해
선물받았다. 이제 봄이다. 두꺼운 겉옷을 벗어버리듯 나를 위한 위대한 변명을 던져버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그들을 아끼는 작은 행동이
필요한 시간이 필요해보인다. 아주 긴 변명 대신, 사랑해야할 날들에 사랑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