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절규
하마나카 아키 지음, 김혜영 옮김 / 문학사상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해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유지환 시인의 '깃발' 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소리없는 아우성이라... 학창시절 배웠던 표현법으로 말하자면 은유 내지 역설법으로 표현될까? 이런 아름다운 시어들과 마주해도 문법을 따지고 어법을 따지는, 과거 교육에 지배당한 나 자신에 안타까움이 머릿속을 잠시 잠깐 스치며... <침묵의 절규>라는 제목의, 하마나카 아키라는 작가의 작품과 마주하면서 문득 이 시의 구절들이 떠오른다. 소리없는 아우성 그리고 침묵의 절규... ^^


이 작품에 대한 찬사가 시작부터 요란하다. '제16회 미스터리 문학대상 신인상' 수상이라는 하마나카 아키, 그리고 '미스터리를 읽고 싶다 신인 1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TOP 10', 마지막으로 일본 작가추리협회에 노미네이트까지도 되었다는 이 작품에 대한 수식만큼이나 그 기대치가 커진다. 하마나카 아키라는 이름이 신인이기에 낯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작품에 대한 수식 덕분에 '굉장한 신인의 엄청난 작품이구나!' 기대, 또 기대하면서 페이지를 넘겨본다.


'죽음의 바다'가 되어버린 어느 주택가 맨션, 스즈키 요코로 추정되는 여성이 죽은채 발견된다. 사체는 이미 부패할때로 부패해 이미 말라붙은 상황이고, 그 곁에 여러마리의 고양이 사체가 널부러져있다. 더군다나 배가 고팠던 고양이들이 이 사체를 뜯어먹었던 걸로 추정되는데... 이 죽은 사체의 주인은 누구일까? 그리고 그녀의 죽음은 단순한 고독사일까? 경찰은 사체의 신원이 집의 주인인 요코라고 단정짓고 있지만, 그 지역 형사과의 여형사 오쿠누키 아야노는 이 여자의 죽음에서 왠지모를 '사건'의 냄새를 맡는다.


요코의 시점, 아니 요코를 바라보는 어떤 2인칭의 시점으로 다시금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녀의 어린시절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발달장애가 있었던 동생 '준'이, 버블경제의 붕괴로 요코의 아빠는 회사에서 명퇴를 당하고 급기야 집에서 돈을 들고 가출을 감행한다. 그리고 그녀의 엄마 스즈키 다에코가 있다. 지방 전문대를 나와 고향 작은 회사에 취직하고 결혼을 하지만 남편과 사별하고 두번째 결혼을 한 요코.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고양이와 함께, 고양이의 먹이가 되어버린 요코! 그녀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요코를 바라보는 시점이 과거의 시간이라면 현재의 이야기들은 여형사 아야노의 시점에서 그려진다. 그리고 요코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과 더불어 또 하나의 사건이 이야기의 중간중간에서 나타난다. 에도가와 NPO 대표 살해사건에 대한 기사들이나 이 사건 관련 인물들의 증언 등이 요코와의 관련성을 조금씩 내비치면서 '사건'의 냄새를 풍기게 된다. 과연 요코는 죽은 것일까? 아니면 죽임을 당한 것일까? 또 이들 살인사건들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하지만 어디선가 웅성웅성 아우성이 들려오는듯 하다. 요코의 삶과 시간들을 그려내는 <침묵의 절규>는 사회파 미스터리를 지향한다. 우리 현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그곳에서 상처받고 고통받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공감할 수 있는 그림을 완성해나가는 것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요코의 삶속에서 우리는, 여성이라는, 사랑받지 못한 어린 시절을, 장기 불황에 따른 가족붕괴 등 다양한 시대적 아픔을 미스터리의 형식을 빌어 독자들의 시선과 마음을 붙잡아 놓는다.


이 작품 역시 미스터리의 구조적 성격을 띠고 있지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읽는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수식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머리싸움보다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상처에 대한 소리없는 절규를 그려내는 작품의 성격을 지닌다. 작가와의 치열하고 냉정한 두뇌싸움을 원하는 독자들이라면 후한 별점을 주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이 책을 내려놓을 수 없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코의 삶과 내면속에 담겨진 아픔과 상처,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공감이라는 틀 안에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기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이 작품에 대한 느낌을 시작했던 것처럼, <침묵의 절규>는 읽는 이들에게 다양한 감상을 전해주게 될 것이다. 요코, 그녀의 처절한 몸부림이 미스터리라는 틀안에서 색다른 시점으로, 독특한 구성으로 어우러져 '하마나카 아키'라는 이 신인작가의 이름에 강한 인상을 부여하게 될것이다. 조금은 두꺼운 무게가 있고, 중간중간 약간은 페이지 넘김이 더딜 수 있지만, 그렇다고 쉽게 책을 내려놓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시점의 변화, 그리고 마지막의 반전이 전해주는 쾌감을 느껴보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말이다. (단, 책의 뒷표지에 쓰여있는 내용은, 책을 내려놓기 전까지 읽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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