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여섯 살 딸아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 언제와?' 우리는 주말부부다. 아니 주말 부녀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주말부녀다. '이제 두 밤 자면 아빠 가지! 왜?', '아니... 어린이집 가기 싫어서...' , 깜짝!!
'왜? 힘들어?' 말을 들어보니 어린이 집에서 년말에 재롱잔치 준비가 한창인가보다. 매일매일 그것때문에 선생님한테 혼나구 그런가보다. 얼마나
힘들까? 잠깐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런걸 꼭 해야하나? 아이들에게 뭔 못할짓인지... '힘들어두 두 밤 자구 아빠랑 주말에 놀자! 자전거 타구,
시장놀이 하구' 요즘 딸아이가 가장 즐거워 하는 일이 놀이터 가서 자전거 타구, 집에 와서는 시장놀이 하는 거였다. '알았어 아빠, 사랑해요
안녕!' 조금 기분은 나아진듯, 하지만 여전히 힘이 없다.
모 예능 프로그램의 제목 같이, 세상의 모든 아빠는 아이들에게 언제나 슈퍼맨이다. 뭐든 다 할 수 있고, 뭐든 다 알고, 엄청나게 키도
크고 힘도 세고, 아이들에게 아빠란 존재는 그렇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렇게 슈퍼맨이었던 아빠는 가진것 없고 힘없고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발각된다. 친구들이 아빠보다 좋아지고 아빠와의 간격은 조금씩 조금씩 멀어져만 간다. 얼마전 끝난 '아빠를 부탁해!'란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에게
도 곧 닥칠 우리 부녀의 모습을 잠깐 생각해보기도 했다. 자전거, 시장놀이로 연결된 지금의 아빠와 딸, 시간이 조금 흐른뒤 우리는 무엇으로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키네마의 신>은 어쩌면 먼 훗날의 아빠와 딸, 그들의 연결고리가 된 '영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니 영화가 주인공이 아니라
'아빠와 딸', 가족이 주인공인 영화다. 도박병과 영화를 즐기는, 빚투성이로 점철된 철없는 노인 마루야마씨. 반면 그녀의 딸 아유미는
도쿄종합개발이라는 꽤 괜찮은 회사에서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어느날 갑작스런 아버지의 심장수술이 있던날, 마침 그날은 그녀가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제출한 날이었다. 아버지의 수술과 함께 아버지가 일하던 관리인실에서 아버지일을 대신하게 된 아유미씨는 우연히 아버지의 관리인 일지를
보게된다. 영화의 감상노트와도 같은 그 일지를...
도박으로 빚투성이가 된 아버지와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되어버린 딸! 좋은 직장에 다니는 딸이 항상 자랑스러웠던 아버지, 하지만 딸은 도박에
멍든 아버지의 삶을 혐오한다. 하지만 이런 그들에게 예상치 못한 작은 연결 고리가 찾아온다. 그것은 바로 '영화' 였다. 아버지의 부탁으로
아버지의 단골 극장이었던 '데아트르 은막'과 아버지의 친구 데라신을 찾게 된 아유미는 '신시네마 천국'을 보게 되고, 아버지의 영화노트에 그
감상을 적는다.
우연찮은 이 행동이 그들의 삶을 180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아버지가 아유미의 글을 '에이유샤' 라는 영화잡지 블로그에
재미삼아 게재하면서 아유미,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까지 영화의 세계에 발은 내딛게 된 것이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들이 그들의 앞에 벌어진다.
블로그 '키네마의 신'과 고짱, 그리고 '로즈버드'의 등장... 그들에게 벌어진, 이 믿을 수 없는 특별한 이야기들이 예상치못한 감동으로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가 바로 이 작품 <키네마의 신>에 담겨져 있다. 하나는 바로 이 책이라는 종이의 향기이고,
다른 하나는 작품의 소재인 '영화'이다. 아이를 키우는 지금도 아내와 가끔 극장을 찾는데, 과거 젊은 시절에는 하루에 두 세 편의 영화를 보기도
했을만큼 영화를 사랑했다. 요즘은 극장도 극장이지만 시간상 컴퓨터로 보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말이다. <키네마의 신>속에는 참 많은
영화들이 등장한다. 오랫만에 만난 반가운 친구처럼 제목만 나열된 이 작품들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기도 한다.
'볼 때마다 생각한다. 영화는
여행이라고.
시작과 함께 순식간에 보는 이를 다른 세계로 데려간다. 명화란
그런 게 아닐까. 그리고 엔딩 크레디트는 여행의 종착역. 방문한 곳을, 만난 사람들을 다시 떠오릴게 하는 회상의 장소다. 그러므로 길어도
괜찮다. 그만큼 푹, 추억 속에 잠길 수 있으므로.' - P. 005
영화를 여행에 비유한 이 말이 참 인상적이다. 젊은 시절에는 참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영화도 참 많이 봤었는데....
이런 추억과 아쉬움속에 영화와 여행은 참 많이 닮아있다는 이 말에 공감!이 드리워진다. 그리고 두 단어속에는 추억이란 말도 함께 담겨져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알콩달콩 아버지와 딸이 그려내는 영화, Cinema 그리고 가족의 사랑과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새로운 인간관계의 복원!
무엇보다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터져나온 '감동' 깊은 이야기들이 너무나 인상적인 작품이다.
300페이지 정도의 딱 정당한 크기에 담긴 이야기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구제불능 아버지와 직장에서 밀려난 백수 딸, 두 사람에게
영화처럼 찾아온 인연!' 이런 평범하기 짝이 없는 책 소개와는 비할 바 없는 특별하고 진한 감동이 책을 내려놓으며 독자들의 가슴을 울릴것이다.
아버지와 딸, 가족이라는 소재가 던지는 감동과 더불어, 이 시대의 배경이 되는 시기의 고민이었을 복합상영관과 작은 극장 사이의 사회적 갈등이
그려지기도 한다. 에이유샤 편집장의 아들 교타, 은둔형 외톨이인 그를 사회로, 사람들 속으로 다시금 불러낸 것 역시 너무나 감동적이다. 평범한듯
전혀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감동이 영화의 재미와 함께 책의 향기를 더욱 진하게 피어오르게 만든다. <키네마의 신>이라 쓰고
<감동>이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