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
히라야마 유메아키 지음, 윤덕주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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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자는 모든 희망을 잃게 된다!'

꽤나 자극적이면서도 궁금증을 불러 오기에 충분한 한 줄이 책의 표지를 장식한다. <남의 일>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담겨져 있기에 이런 과감한 수식을 가능케 한 것일까? 그렇다면 이 책을 읽으라는 소리인가 아니면 읽지 말라는 이야기인가? 책에 대한 자신감일까? 희망을 잃어도 되는, 그런 사람들이라면 혹은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어보라? 그런 말일까?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한 한 줄! 시선이 모아진다.

 

순수해보이는 소녀의 입술이 새~ 발갛다. 언듯, 피? 하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그건 무슨 산딸기 같은 걸로 보이는데... 언듯 지나쳐 가는 느낌이 굉장히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별로 잔인하지도, 뜯어보면 무서울것 하나 없지만... 왠지모를 오싹함마저 드는 무서운 이야기들이 책속을 가득 메울것 같다는 느낌을 가지고 페이지를 열어본다. 14편의 단편들이 이야기를 준비한다. 표제작인 '남의 일'부터, '호랑이 발바닥은 소음기' 까지.... 어떤 이야기일까? 궁금하게 만드는 제목들이 인상적이다.

 

벼랑에서 굴러 떨어진 남자와 여자. 남자는 거꾸로 매달리고 발이 끼어 움직일 수가 없고, 여자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아이, 하지만 아이가 사라졌다. 긴박한 상황에 처한 그들에게 나타난 한 남자! 그는 손이 더러워 질 것 같다는 이유로 이들의 도움 요청을 거절하는데... 정말 <남의 일>이라는 제목이 딱 어울리는 그런 남자의 알 수 없는, 정말 사고를 남의 일보듯 하는 남자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 잔인하고 예측 불가능한 반전! 30페이지도 않도는 짧은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 담긴 독특한 설정과 내용들이 정말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14편의 단편들속에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대부분 이런 '남의 일' 같은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현상, 혹은 그럴법한 이야기들을 그려낸다. 표지에 쓰였던 '이 책을 읽는 자는 모든 희망을 잃게 된다'던 자극적인 멘트에 담긴 의미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야기들이다. 호러라는 장르속에 담겨진 이들 이야기들은 끔직하기도, 혐오스럽기도 하고, 생각하지 못한 잔인함으로 가득하다. 이런 이야기들의 모티브가 어쩌면 우리 사회의 모습이라는게 더 충격적이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공포란 과연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보았다.'

무관심과 허무! 이것이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이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넘쳐나고, 생각치 못한, 아니 생각하기조차 싫은 끔찍한 이야기들이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인양 자연스럽게 뉴스를 통해 흘러나오는 우리의 현실! 그런 모습들이 바로 <남의 일>속의 이야기들이 언듯 언듯 스쳐지나간다. 정말 무서운 것들, 이 작품의 저자 히라야마 유메아키가 말하는 무서움과 공포가 바로 무관심, '남의 일'보듯 하는 우리의 그 무관심에 있는 것이다.

 

히라야마 유메아키 와는 처음 만나는 것 같다. '유니버설 횡메르카토 지도의 독백' 이라는 단편집으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를, 그리고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2008년 국내에도 출간되어 인간 내면의 광기를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7년여만에 다시금 독자들에게 손을 내밀며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이 담긴, 섬뜩한 이야기들로 예측하기 힘든 색다른 공포를 전해주고 있다.

 

 

'글로 보는 스플래터 무비' 라는 표현으로 <남의 일>은 표현 된다. 피와 살점들이 난무하는... 잔인하고 공포스러운, 웃음끼를 빼버린 담백한 공포 호러 소설! 히라야마 유메아키라는 작가에 대한 첫인상은 정말 정말 깊게, 독특하게 새겨져 버릴듯하다. 공포를 유발하는 등장인물들, 그들의 잔인한 모습은 우리 사회의 상처와 갈등이 숨겨져 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건 바로 우리들 자신인 것이다. 그리고 그 엄청난 사건의 잔인함 속엔 우리들이 서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 어째서 모두들, 모든 것에 대해 좀 더 상냥하게 대하지 못하는 걸까? 누구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처럼 남도 소중하게 대한다. 그리고 내 꿈을 소중하게 여기듯이 남의 꿈도 소중히 여긴다. 그저 그렇게만 해도 세상은 희망이라는 마법으로 넘칠 텐데.... ' - P. 183 , 전서묘 中에서 -

 

​이 책을 읽으면 희망을 읽게 된다는 경고도, 어쩌면 위에 쓰여진 책속의 한 구절로 인해 무너져 내릴 수도 있을것 같기도 하다. 희망이라는 마법이 바로 세상을 바꿀 힘이며, 그 희망을 위해 우리 사회가 우리들이 해야할 행동에 대한 팁을 작가는 던져주는 듯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들의 내용들을 정말 정말 잔인하고, 자비없이 비인간적이다. 분명 이것은 사실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이에 대한 선택권은 오로지 독자들의 몫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나의 필요만 보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의 안경을 쓰면 상대방의 필요가 보입니다.'

- 정용철, 사랑의 인사 中에서 -

 

오늘 아침 문득 펼친 책속에 담겨졌던 짧은 글을 마지막으로 소개하려 한다. '필요와 사랑'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 두 단어가 절묘하게 어울리듯, <남의 일>을 사랑의 안경으로 바라보면 절대 남의 일이 아님을 작가는 우리에게 이야기하는듯하다. 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공포, 무관심의 상처를 새롭게 바라보고 대처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색다른 공포소설로 여름 휴가의 시작을 정말 쫀득쫀득하게 시작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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