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여자 밀리언셀러 클럽 137
가노 료이치 지음, 한희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지그시 두 눈을 감은 한 여인이 있다. 무슨 깊은 사색에 잠겨있는지 그녀의 얼굴 속에는 햇살이 걸린 숲과 나무들이 어지럽게 늘어서 있다. 아름답고 매혹적인 그녀, 그녀에게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남자가 있을까? 가노 료이치의 <환상의 여자>는 표지부터 이렇게 뭇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녀가 누굴까? 제목에 담긴, 환상의 의미는 무엇일까? 수많은 물음표들이 두터운 책의 페이지를 넘기기 전부터 여러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든다.


고바야시 료코! 그랬다, 그녀의 이름은... 5년전 갑자기 사라져버린, 그가 사랑했던 여인, 고바야시 료코! '안녕!' 이란 두 글자로 아무렇지 않은듯 우연히 지하철 역 계단에서 그런 그녀를 만났다. 스모토 세이지!,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이면서 이야기를 진행해가는 화자가 바로 나, 스모토 세이지다. 변호사이고 2년전쯤 아내와 헤어졌다. 아내와 결혼 생활중 만난 화류계 아가씨가 바로 료코였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료코는 그렇게 한순간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오늘 우연히 만나게된다.


설레이는 만남도 잠시, 다시 연락하겠다던 그녀는 다음날 잔인하게 살해당하고 만다. 그의 자동응답기에 의뢰할 것이 있다는 마지막 음성을 남기고 그녀는 그의 곁을 떠나버렸다. 지웠다고 생각했지만 선명하게 자리고 있던, 사랑했던 그녀의 모습와 흔적들이 스모토 세이지의 모든 세포들을 자극한다. 료코는 클럽을 운영하고 있었고 그녀의 살인은 폭력조직이 연계된 치정살인으로 경찰과 언론은 보도한다. 살해 현장에서는 료코의 혈흔 이외에 다른 이의 혈흔이 발견되고, 얼마지나지 않아 자신들이 사건의 범인이라 자수하는 이들이 나타나는데...


<환상의 여자>는 제52회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을 수상한 가노 료이치의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작품이다. 5년여만에 만난 사랑했던 여인, 하지만 다음날 그녀는 죽음을 맞게 되고, 변호사인 주인공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내는 미스터리이다. 하지만 지금껏 그가 알고 있던 그녀의 실체는 거짓이었고, 하나씩 하나씩 사건의 진실로 다가가는 여정이 긴박하고 스릴 넘치게 그려진다. 환상에 쌓여 있던 여인의 실체를 쫓는, 폭력조직에 맞서고 그 어떤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 환상적인 남자의 모험?이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그가 사랑했던 여자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가? 이 작품의 소재가 된 미스터리한 여인의 존재는 이미 국내에도 소설과 영화로 사랑받았던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라는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했었다. 결혼을 앞둔 애인의 갑작스런 실종,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사건의 진실과 우리 사회의 아픈 단면,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결정! 충격적이기도 하고 숨쉴틈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이 미스터리처럼 <환상의 여자>의 소재 역시 비밀스러운 여인의 과거이다.


우리 사회가 가진 화려한 이면의 비열한 모습과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야 했던,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거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슴 한구석을 먹먹하게 만든다. 더불어 이 작품속에는 '가족'이 담겨져 있다. 어떤 모습으로든 가족의 붕괴를 경험한 이들의 헤아릴 수 조차 쉽지 않은 마음과 안타까운 공감, 하지만 그대로 주저 앉지 않고, 운명을 거부하고 개척하려 했던 이들의 애절한 이야기가 미스터리의 형식을 통해 긴장감 넘치게 그려진다. 


'그녀는 내 안에 살아 있었다. 울고 싶으면 울고, 몸부림치고 싶으면 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내 안에서 죽어버린 누군가가 계속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거는 결코 사라지지는 않고, 조금씩 멀어져 갈뿐이다. 그렇게 지독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눈을 감고 바라기만 하면 언제든 그녀를 만날 수 있다.' - P. 685 -


스모토 세이지의 료코에 대한 사랑은 정말 열정적이고 맹목적이고 극단적이기까지 하다. 사실 그들의 사랑은 '불륜' 이라는 말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지만, 그들 사이에서 피어난 사랑은 자신들의 안타까운 가정사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되어 쉽게 표현되지 못할 특별한 사랑이라는 말로 이어진다. 폭력조직과 어둠의 세계, 한 남자의 맹목적 사랑, 그런 의미에서 <환상의 여자>는 조금더 남성적인 느낌에서 공감이 가는 작품이라는 생각이든다.


섬세하고 치밀한 심리묘사와 사건을 풀어가는 추리와 반전, 촘촘하게 짜여진 구성, 개인적으로는 가장 매력적이었던 사요코를 비롯한 기요노, 하세와 같은 등장인물들, 뭐 하나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특별함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처음 만나게 되는 가노 료이치와의 만남이 처음 했던 기대 그 이상임을 확인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700여 페이지에 육박하는 무게가 즐거움의 무게로 새롭게 변화됨을 책을 내려놓으며 느낄 수 있을거란 확신을 갖게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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