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두리 없는 거울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박현미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유령을 본 사람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눈앞에 있는 건 당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것을 뭐라고 생각하든 그것은 당신 마음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참 많은 무서운 이야기들과 함께 성장해왔다. 문득 문득 생각나는 것들을 써보자면 이렇다. '빨간휴지 줄까? 파란휴지 줄까?'도 있었고, '자정에 칼을 물고 거울을 보면...' 뭐 이런것도 있었고, '학교에서 2등에 의해 떨어져 죽은 1등이 통통통 다니며, 어! 여기도 없네!...' 어쩌구하는 이런 괴담들도 익숙하다. 이런 학교 괴담들이 특히 오싹한 공포를 전해주는 경우가 꽤 있었다. 이런 저런 괴담들에 우리들이 다가선 이유는 바로 앞에 놓여져 있는 글처럼, 우리들의 마음이 다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유령, 혹은 귀신이 정말 있는지 없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좀처럼 마음이 굳건한 이들에게 유령이란 존재는 한낱 헛것 정도로 밖에 인식되지 않지만, 그만큼 신경이 예민하고 쇠약한 이들에게 유령은 흔하디흔한 존재가 아닐까? 여러가지 스트레스, 상처와 아픔, 고통과 말하지 못할 괴로움들이, 마음속에서 엉크러져 유령을 만들고 괴담이라는 이름을 달고 많은 이들에게 퍼져나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또한 공감 아닌 공감과 함께 상처입은 이들에게 물위 기름 방울처럼 쉽게 퍼져나간다.

 

지금 만나게 될 <테두리 없는 거울>은 '노스탤직 호러' 라는 수식과 함께 한다. 앞서 언급했던 우리들의 성장 과정속에서 만난 익숙한 공포의 소재들이 모두 이 작품속에 등장한다. 학교에서, 혹은 그 또래 아이들에게서 잉태되는, 잔인한 공포라기보다 그 아이들의 감성속에 담겨진 향수가 깃든 노스탤직 호러의 모습이 바로 <테두리 없는 거울>이다. 공포나 미스터리 소설속 주인공들중 학생 혹은 그 또래의 아이들이 많은 이유는, 성장의 고통과 아픔, 미래에 대한 환상과 다양한 감성이 공존하기에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존재들이 때문일것이다.

 

'계단의 하나코' 라는 학교 괴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역시 익숙한 소재가 등장한다. 학교 계단 속에 사는, 옛날 음악실 창문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소녀 유령에 대한 괴담이다. '계단에 사는 하나코의 일곱 가지 불가사의'와 얼마전 계곡에서 죽은 채 발견된 한 학생에 관련한 오싹한 이야기! 한번쯤 들어봤을 만한 학교 괴담이 책의 시작부터 온몸에 소름을 돋게 만든다. 이 단편을 포함해서 모두 다섯편의 이야기들이 책속에 담겨진다. 표제작인 '테두리 없는 거울' 의 소재 역시 '자정에 거울을 돌아보면 거울속에 자신의 미래가 순간 보인다'는 괴담을 소재로 한다. 표제작인 만큼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작품이기도 하다.

 

 

마지막 이야기 '8월의 천재지변' 은 왕따를 모면하기 위해 '유짱'이라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내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환상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순수한 아이들의 감성과 우정을 느낄 수 있는, 마지막을 감동적이고 따스하게 장식한 멋진 작품이다. 이 외에도 분신사바를 소재로 한 '그네타는 다리'와 조금은 기괴하기 만한 '아빠, 시체가 있어요'도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준다. 누군가의 죽음이 있고, 쉽게 접할 수 없는 공포가 있지만 조금은 유머러스하게, 어떨 때는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노스탤직 호러의 즐거움을 전해준다.

 

<테두리 없는 거울> 이란 제목이 가지는 '의미'는 두 가지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을것 같다. 하나는 거울이란 사물이 가진 본래적인 특성, 무언가를 비추어보는 그 특성에 대한 비유일 것이다. 거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것, 다시말하면 앞서 언급했던 우리 눈에 비친 유령은 곧 우리 자신의 마음과 다르지 않음을 거울에 빗댄 것이 아닐까. 또 다른 하나는 거울속에서 보여지는 존재에 대한 부분이다. 거울속에 비쳐진 '나' 나 혹은 배경들은 실제 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거울에 테두리가 없다는 것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 자체가 모호해졌다는 의미일 수 있기때문이다.

 

이런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이야기는 특히 아이들의 눈속에서 그 특징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학교에서의 보이지 않는 폭력들, 왕따 문제나 혹은 선생들에 의해 가해지는 성폭력들이 대표적이다. 아이와 어른의 중간 단계에 선, 아이들에게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상처와 고민, 아픔과 좌절에 대한 표현 자체가 괴담의 형식을 빌어 우리 사회에 목소리를 내던지고 있다. 하나코는 왜 계단속에 살게 되었는지, 분신사바를 하고, 거울속에서 아이들은 왜 자신의 미래를 찾고 있는지, 왕따를 면하기 위해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상처와 고통으로 가득한 우리 아이들의 가슴 아픈 현실을 바라보게된다.

 

세번째 만남이라 기억된다. '츠나구'와 '태양이 앉은 자리'를 통해 약간은 다른 장르적 특성을 가진 작품들로 만났던 '츠지무라 미즈키'는 다시금 만난다. 그때도 그랬지만 그녀 작품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청소년기의 아이들인 경우가 많아 보인다. 어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물론 알지만 잊혀졌거나 무심코 지나쳐 버리는 그들만의 아픔과 상처를 현실과 환상의 경계 속에서 츠지무리 미즈키는 우리들에게 '호러'라는 이름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아픔을, 공포를, 그리고 향수를 자극하는 그녀만의 독특한 색깔이 담긴 호러의 맛에 빠져든다. 너무 예쁜 표지에 매료되고, 향수와 감성을 자극하는 색다른 노스탤직 호러!를 만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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