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丹齋) 신채호 선생의 이름에는 왠지모를 외로움, 투쟁, 집념과 열정이라는 수식들이 함께 할 것 같은
느낌이든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만한 이름이지만, 그에 대해서 자세히, 아니 어떻게 살았고 어떤 죽음을 맞이 했는지조차 어렴풋이 아는 이
역시 그리 많지 않을 줄 안다. 어쩌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배움을
써야한다!' 라고 하셨던 그의 조부의 말씀이 그의 가슴에 와닿아 진정 어린 고민과 피땀의 흔적으로 이 책
<조선상고사> (물론 기존에는 '조선사'라는 연재 형식의 글이었지만)가 탄생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노고에 진심어린 감사를
드리고 싶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적으로 전개되고 공간적으로 펼쳐지는 정신적[心的] 활동 상태에 관한 기록이다. 세계사는
세계 인류가 그렇게 되어온 상태에 관한 기록이고, 조선사는 조선 민족이 그렇게 되어온 상태에 관한 기록이다.' - P. 21 , 총론 中
에서 -
이 작품 <조선상고사>는 우리가 배워온, 익히 알고 있는 역사에 대한 흐름과 지식들에 대한 체계들을 부정하고 새로운 역사 인식의
필요성, 혹은 가능성에 대한 도전을 담은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가 익히 배워왔던 (그렇다고 자세히 그 내용들을 알지는 못하지만 ㅋㅋ)
삼조선이라고 알고 있던 단군, 기자, 위만 조선 이라는 기존의 역사 체계를 부정하고 대단군조선과 신조선, 불조선, 말조선의 삼조선 그리고 부여와
고구려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전해주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렴풋이 '환단고기'라는 책을 접했기에 조금은
익숙한 내용들도 있었지만, 이런 이름들이 낯선 독자들이라면 조금은 생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든다.
'신채호의 외침 속에는 1천 년간 사라졌던 역사의 비밀이 있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쿠테타로 점철된 우리 근현대사의 시계에서 애쓸것도 없이 확인하고 증명되는 말이다. 오랜 과거의
시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얼마전 영화 <해적>이라는 작품속에서도 담겨져 있었던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그 정당성,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만드는 것 역시 비슷한 의미속에 있다. 우리가 흔히 만나는 TV 사극속 정치 상황에서도 가장 중요한것 역시 바로 그것, 정당성,
정통성이었다. 그것은 누가 부여하는 것인가? 우리의 역사는 그것을 승자가 부여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우리의 역사만이 아니라 세계 어느곳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물며 성경의 기록조차도...
그 역사의 비밀을 살포시 열어본다. 사람들은 신채호를 무정부주의자로 호칭한다. 민족주의자가 아닌 무정부주의자! 그래서 이 작품 역시 우리의
민족주의에 호소한다기보다 역사적 사실, 누군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은폐하고 부정하려는, 뒤바꾸려 했던 역사적 진실을 바로잡으려한다. 중국
진시황의 분서갱유, 그에 못지않은 우리나라의 역사, 역사서에 대한 탄압에 비통해한다. 신채호는 '조선 역사 1천년 이래 최대 사건'을 고려 시대
묘청과 김부식의 대결이라고 평가한다. 김부식이 묘청의 혁명을 진압하고 '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 사대적이고 퇴보적 역사관이 이 나라를 집어삼켰다고
보았던 것이다. 전적으로 그 의견에 동의한다. 그래서 더 비통하고 안타깝다.
광복절과 같은 특별하고 역사적인 날이면 중국에서는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시절의 만행에 대한 자료들을 내어놓는다. 차분하게 조금씩 조금씩
완벽하게 검증된 자료들에 대해서 말이다. 그들이 그것들을 준비하고 수집해서 세상에 내어놓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부럽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우리들의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다. 하물며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고대사와 근현대사에 대한 역사적 해석까지도 시시각각 바뀌고 부딪히는
모습들을 보며 안타깝기 그지없다. 과거에는 중국에, 그리고 일본과 미국에 빌붙어서 이 나라를 쥐락펴락 했던 인물들이 써내려간 역사! 유교적
사대사상에 이데올로기에 희생되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도 모르는, 그 진실에 대한 갈망과 욕구는 현재에서도 여전히 진행형이란 사실이 안타깝다.

일제의 잔재가 만들어 놓은 우리의 역사!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바로 우리 자신들이 만들어낸 우습고 안타까운 창조적 역사가 아닐까?
우리가 그토록 배우고 외워왔던 김부식은 '삼국사기'에 담긴 사대적인 기록들, 일본 제국주의에 빌붙어 축소하고 은폐하기에 바빴던 친일파
역사학자들, 그리고 미국, 또 중국... 별반 다르지 않은 사학자들이, 교수들이 우리의 현재까지 뒤틀어 놓고 있다. 올바른 역사 교육과 인식이
바로 서지 못한 현실에서 우리는 아직도 식민사관에, 사대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과거 대륙을 호령했던 단군조선의 위용, 대륙을 내달렸던
고구려의 위상, 해외 영토를 거느렸던 대백제의 기상을 담은 진취적이고 자주적인 역사의 기록이 바로 <조선상고사>에 담겨져있다.
아직도 일본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우리의 진실된 역사, 역사서를 찾는 노력을 게을리하는 역사학자, 정치인들에 대한 채찍이자, 그런 존재를
잊지 말라는 독자들을 향한 외침이 이 책에 담겨져 있는 것이란 생각이든다. '역사는 역사 이외의 목적 때문에 기록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는 어쩌면 하나하나가 실제 역사와는 다른 목적들로 점철되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래서 이제서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세울수 있는 노력들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 시작점에 <조선상고사>가 놓여있다. 모르는 것을 알게하고 불완전한 것을
바로잡으려는 노력들이 바로 그 시작인 것이다.
이 작품은 신채호가 독립운동으로 감옥에 수감되어 있으면서 만든 작품이다. 그렇기에 그 안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방대한 사료들을 이용하는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내용들을 자신이 만났던 사료들에 대한 기억에 많은 부분 의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단하기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료 인용은 100% 완벽하지 못한것도 사실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서 현대의 학자들은 이 책을 역사서로서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런 사학자들의 태도 역시 올바른 것이 아니다.
곰과 호랑이가 등장하고 사람이 된다고 해서 단군 조선이 역사가 아닌 신화 정도로 취급하던 이들이, 어쩌면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의 등장은
사실로 받아들인단 말인가? 역사는 앞서도 언급했지만 사람, 시간, 공간의 3요소 속에서 태어난다. 하지만 한 나라의 건국을 담당했던 대단한
인물들에 대한 신화적 해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 시대적 상황과 그 신화 속에 등장한 인물, 배경 등에 대해서 올바르게
해석하고 이해시키는 것들 역시 사학자들의 몫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은이 신채호가 범할 수 밖에 없었던 사료적 오류들을 바로잡고 오류를 제거하는 작업이 <조선상고사>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책속에는 '깊이 읽기'라는 부분이 담겨진다. '깊이 읽기'를 통해 책속의 조금은 다양하고 어지러운 내용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과거 신채호가 이 책을 쓰던 시대와 다른 언어감각을 새롭게 우리 시대에 맞게, 독자들이 읽기 쉽게 도와준다. 옮긴이의 배려가 이 책
곳곳에 숨겨져 있다. 우리가 알던 단순한 시대적 흐름의 역사 기록, 오류로 가득한 사대적 역사관에서 나아가, 인물에 대해서, 시공간의 배열에
맞게, 한민족 전체의 틀의 확장한 신채호의 땀과 열정이 고스란히 <조선상고사>에 배어 나온다.
역사는 단순히 역사학자들만의 몫이 아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역사를 희생시킨 역사학자들로부터, 거짓을 기록하는 이들로부터, 진실된 역사를
되찾기 위해 땀흘리는 진정한 이들, 그들의 땀으로 일구어진 역사적 진실에 관심을 갖는 것이 역사를 올바로 세우는 첫걸음일 것이다. 한반도만을
무대로 기술한 역사가 아닌 한민족 전체의 관점에서 기록된 역사, 사람과 시공간을 왜곡하지 않는 역사를 담아낸 <조선상고사>를 만나보길
권한다. 기존의 역사서가 가진 오류를 바로잡고, 낯선 이름의 역사서들의 존재까지 확인할 수 있는 신채호의 국사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는 진정한
우리 역사와 만나자! 책을 내려 놓으며 다시한번, 아니 여러번 <조선상고사>와 만나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역사란 무엇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