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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맨션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6
오리하라 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오랫만입니다! 이런 인사로 시작해야 될 것 같다. 지난 2011년 '이인들의 저택' 이후 벌써 3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개인적으로는 2010년에 만났던 '~者' 시리즈를 마지막으로 정말 오랫만에 작가를 만났기 때문이다. 사실 '오리하라 이치' 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그리 오래지 않다. 2010년 이었던가 '행방불명자'를 통해서 처음 그의 이름과 만나게 되었고, 그가 그렇게 유명한 작가였는지, 아니 그렇게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는 작가였는지 그 단 한 작품을 통해서 깨닫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해 출간된 '~者' 시리즈는 모두 만났고, 그 다음해 오리하라 이치의 또 다른 히트작인 '도착' 시리즈도 손 안에 넣을 수 있었다. 그 이후 아쉽지만 '침묵의 교실'과 '이인들의 저택'은 아직 만나지 못했는데... 이번에 그의 새로운 작품들과 만날 수 있어서 이 기쁨을 뭐라 쉽게 표현할 길이 없다. 짙은 파란색의 표지에 빨간 하이힐을 신은 뽀얀 다리! 이 <그랜드맨션>이란 곳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온전히 그의 펜끝에 몸을 맡겨 보는 수밖에 없을것 같다. 자 시작해볼까? ^^
눈은 번쩍! 정신은 바짝!
오리하라 월드에 들어선 이상, 이정도는 기본이다. 언제 어디서 뒤통수를 얻어맞을지 아무도 모른다. 설마, 혹은 그럴리가? 라는 방심은 금물!이다.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그랜드맨션>은 그랜드맨션이라는 공동주택이 그 배경이된다. 4층으로 된, 하지만 4층에는 801호가 위치하지만... 201호 사와무라 히데아키가 이야기를 시작해서 105호 다가 이네코 할머니, 303호 마쓰시마 유카의 목소리로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총7편의 단편 미스터리들이 쉴새 없이 화자를 뒤바꿔 가며 독자들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역시 오리하라 이치! 역시 서술트릭의 달인답다. ㅠ.ㅠ
서술트릭이라는 말이 낯선 독자들도 있겠지만... 오리하라 이치는 서술트릭의 대가다. 서술트릭이란 쉽게 말해 작가가 거짓말을 하는 걸 말한다. 전통적인 미스터리에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범인이라면 서술트릭 소설에서는 작가가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물론 대놓고 작품속에서 거짓 정보를 나열하는것이 아니라 화자를 애매모호하게 해서 혼돈을 준다거나, 작가가 해설역을 가장해서 능청을 떨어 독자들을 잘못된 정보속으로 몰아넣는 등 사건 해결에 골똘해있는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독자들이 가진 상식과 선입견의 헛점을 노리거나 특정한 사건 관련 정보를 고의적으로 누락시킨다던지 하는 식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바로 서술트릭이다.

<그랜드맨션>의 서술트릭은 시간적인 오류를 이용한 것이 돋보인다. 두번째, 세번째 단편인 '304호 여자'와 '선의의 제삼자'는 특히 독특한 시간 구성을 통해 예상치 못한 반전을 이끈다. 102호 스킨헤드 남자(다카하라 신노스케)의 역할도 첫번째단편 '소리의 정체'와 마지막 '리셋'에서 두드러진다. 단편 '마음의 여로' 에서는 화자와 그 속에 등장하는 일기의 주인공에 대한 궁금증을 쫓다 또 다시 뒤통수를 어루만지게 된다. 일곱편의 단편 하나하나 역시 오리하라 이치구나 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기에 충분해보인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여러사람의 시선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하다보니 독자들을 처음 화자에게 시선을 빼앗기게되고 중간에 등장하는 또 다른 시점 화자를 통해 혼란에 빠지게 된다. 서술트릭의 대가 답게 오리하라 이치는 독자들을 쥐락 펴락 하며 즐거이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이번에도 된통 뒤통수가 시큰거린다. 도저히 그를 이길수는 없는 걸까? 잠시 좌절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런 반전의 묘미가 이 작가를 더욱 애틋한 기다림으로 이끄는 원동력일것이다.
다양한 소재, 조금은 무서운 소재들이 이야기속에 등장한다. 가정폭력에서 유아학대, 우리에게도 엄청 익숙한 보이스피싱과 고령화 사회인 일본을 대표하는 단어이기도 한 연금 부정수급 문제, 일조권 문제 등 사생활 보호 문제와 독거 노인에 관한 문제까지 <그랜드맨션>에 등장하는 소재들만 놓고보면 그 이름이 무색하리만큼 그랜드하지 못한것이 사실이다. 우리들이 맞닿아 있는 현실의 문제들과 비슷한 부분들이 엿보이기에 이야기속에 더 쉽게 빠져드는지도 모를일이다.
소재 자체는 참으로 무겁기 그지없지만 조금은 가벼운 즐거움으로, 예기치 못한 반전과 허를 찌르는 시간차 서술로 오리하라 이치는 이번에도 아쉬움없는 한판을 선물해준다.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들이 다시 마지막에 꼬리에 꼬리를 물듯 연결되면서 어느것 하나 쉽게 지나쳐 넘어갈 수 없는 섬세하고 꼼꼼한 미스터리의 재미를 선보인다. '봄 여름 책 겨울' 이란 문구를 어딘가에서 만났다. 참 인상적이고 공감가는 이 가을, 오리하라 이치의 즐거운 미스터리와 함께해도 참 좋을듯하다. 가을, 이 책의 계절이 반갑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