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와 게의 전쟁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요즘엔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이 너무 많아.' ... 그래 요즘엔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인면수심의 살인 사건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엄마, 그 몇 푼 안되는 돈 때문에 부모를 죽인 자식들, 임신한 아내를 죽인 남편, 태어난 아이를 화장실 변기에 버린 미혼모... 어쩌면 이제는 너무 흔한 사건들이 점점더 강한 것을 내보이듯 앞다투어 세상에 상채기를 낸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사건들에 혀 한번 차는 걸로 대신하는지도 모를일이다. 소중한 사람이 무엇인지, 그런 소중함이 잊혀진지 오래된 우리 사회. '요즘엔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이 너무 많아.' 어디선가 이런 한숨섞인 소리가 들려온다.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작품이고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기억한다. '악인'속에서 들려오던 저 목소리가 아직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요시다 슈이치' 하면 특별한 느낌과 감동으로 기억하게 된다. 그런 그가 기나긴 쉼표를 깨고 3년만에 우리를 찾아왔다. 개인적으로도 2009년 '사랑을 말해줘', 그리고 '사요나라 사요나라'라는 작품을 끝으로 3년만에 만나게 된다. 기나긴 여운으로 남았던 '악인' 그리고 3년, 이제 또 다른 가슴속 울림이 <원숭이와 게의 전쟁>과 함께 한다.

 

갓난 아기를 안고 신주쿠 가부키초의 골목 구석에 웅크린 마지마 미쓰키의 모습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별볼일 없는 남편 도모키는 호스트로 일한다. 그의 동료인 하마모토 준페이, 그리고 첼리스트 미나토 게이지. 특별할 것 없는 이들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작은 사건이 벌어지고 별 관계를 찾을 수 없는 그들은 복잡하게 서로 얽히게 된다. 우연히 목격한 뺑소니 사고, 이 사고로 인해 이야기는 복잡하고도 독특한 구성속에 빠지게 된다. 미쓰키, 도모키, 준페이, 미나토를 비롯해 사와 할머니, 미나토의 매니저, 형의 대학생 딸, 술집 마담 등 8명이 그려내는 이야기가 '악인'의 특별함을 넘어선 독특함을 전해준다.

 

이 작품의 원제는 '원숭이와 게 교전도'라고 한다. 처음 제목을 보고는 이 작품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미치오 슈스케, 그를 아는 독자들이라면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여튼 요시다 슈이치의 이 작품, 이 제목은 일본의 전래동화에 나온 어미게를 죽인 교활한 원숭이, 그리고 그 원숭이에게 복수를 한다는 새끼 게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제목에서 아주 쬐끔 이 작품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평범하지 않은, 너무나 색다른 요시다 슈이치만의 특별함으로 이 작품도 인상지어질 것이 분명하다.

 

 

'쓰기 시작했을 때는 일본이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원숭이와 게의 전쟁>에 대한 요시다 슈이치의 말이다. 평범하기만한 등장인물들, 우리 주변에서 한번쯤 보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그들의 이야기가 날카로운 시선속에 담긴다. 하지만 그가 써내려가는 이야기는 날카로움보다 부드러움으로 그려진다. 평범한 이들, 아니 사회적 약자들을 보듬는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담아낸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소외된 이들, 힘겨운 이들이 사회에 던지는 작은 복수?가 이번 작품이 기존의 다른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과 다른 점이 아닐까 싶다.

 

'강한자가 이기는게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자다.' 라는 말도 있고 비슷한 말이지만 '정의가 승리하는게 아니라 이기는게 정의다.'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인지 세상은 돈으로, 권력으로 모두가 이기려고만 한다. 얼마전 우리도 새로운 대통령을 뽑느라 연말 차가운 시간이 후끈 달아오르기도 했다. 그 어느때보다도 열기를 더했던 이번 선거, 아직까지도 그때 보여지던 갈등이 해결은 커녕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책속에서 이런 우리의 현실과 유사하게 등장하는 모습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힘없는 이들의 작은 반란? 그 속에서 작가는 작지만 강한 메세지와 특별한 삶의 의미들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악인'이 묘한 여운으로 오랫동안 가슴을 먹먹하게 했듯, <원숭이와 게의 전쟁>은 또 다른 의미를 담고 희망이라는 의미로 깊은 여운을 전한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요시다 슈이치의 바램이 전해지듯 묘한 감정이 페이지를 덮는 그 순간까지 아릿하게 전해온다. 인간 심리에 대한 탁월한 묘사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감수성! 그리고 깊은 고뇌! 요시다 슈이치의 이런 특별함은 이번에도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그들의 전쟁, 아니 우리의 전쟁, 원숭이와 게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교활한 원숭이는 아직도 우리들 사이에서 모두를 현혹시키고 가슴 아픈 새끼게들의 반격은 현실에서는 큰 바위 위에 던져진 작은 계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통쾌하진 않지만 새끼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요시다 슈이치의 메세지가 색다르게 느껴진다. 묘한 긴장감속에서 즐거운 작은 반격으로 마무리되는 특별한 이야기, '악인'과 요시다 슈이치라는 그 이름 옆에 <원숭이와 게의 전쟁>을 함께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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