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항 1 버지니아 울프 전집 17
버지니아 울프 지음, 진명희 옮김 / 솔출판사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아내와 다퉜다. 지난 주말의 이야기이다. 세살된 큰 아이를 넘넘 이뻐라 하는 막내 꼬모네 집에 갔다가 일이 벌어졌다. 어쩌면 별것도 아닌 일로... 계속 퉁퉁대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왠지 보기 싫었다. 밖에서 점심을 먹고 누님댁에서 쉬다 저녁시간까지 있게 되어 저녁을 먹고 가라는 성화에 어쩔 수 없이 그러마 했는데 거기서 발단이 되었다. 꼬맹이 때문에 집에 가서 쉬고 싶었는지, 힘이 들었는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들어온 순간부터 퉁퉁대는 아내, 왜 그러냐고 물어도 말도 않하고 얼굴엔 짜증만 가득... 나도 괜시리 화가 나서는 짐싸라는 큰소리와 함께 그렇게 집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벌써 수요일, 4일 동안 아내랑 말 한마디 안했다. 돌아오는 길, 이유가 뭐냐? 그러지 좀 마라! 얘기를 해라... 계속 주저리 대는 나를 보고 말 한 마디도 안하는 아내. 나도 화났다. 아니 삐쳤다. 이건 뭐 남편을 무시하는건지 어쩌자는 건지... 첨으로 이렇게 별것도 아닌 일로 크게 다투었다. 이번엔 한번 오래 가보련다. 칼로 물베기... 별거 아닌 일이지만...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ㅋㅋ 누나들이 이 사건 아닌 사건으로 아버지를 떠올렸단다. 가부장적인 모습의 대표인물이었던 우리 아버지. 내 행동에서 그런 아버지가 보였단다. 그럴수도... 아니 아닐수도 있다. 어쨌든 이번 전쟁은.... 오래갈 것 같다. ㅠ.ㅠ

 

<출항>을 아내와 다툰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그 시대적 배경이 바로 영국 빅토리아 시대, 가부장적인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을 남성의 필요에 따른 예속물로, 남성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로서 가부장제가 보편화 하던 시대, 한 여성의 삶의 무게를 그려내는 작품이 바로 버지나아 울프의 소설 <출항>이다. 빅토리아 시대는 산업혁명의 무르익고 성숙기에 접어든 18세기 중후반 시대를 말한다. 경제적으로도 풍요롭고 외형상 사회적으로도 자유로와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억압되고 예속받는 여성들의 한이 묻어 있는 시대의 단면이 보여진다.

 

'울프만큼 많이 알려져 있으면서 울프만큼 읽히지 않은 작가도 드물것이다. ... 그녀의 문학은 한마디로 말해 인간주의 문학이다. 모더니즘, 페미니즘, 사회주의 따위는 그녀가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도중에 잠시 들른 간이역들에 불과하다. 궁극적인 목적지는 사랑과 이타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인간주의 라는 정거장이었다. ... '

 

열한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선박회사를 운영하는 너무나도 바쁜 아버지와 떨어져, 두 명의 고모와 지내는 스물네살 순진무구한 아가씨 레이첼 빈레이스! 그녀의 세상을 향한 작은 여행, 사랑 그리고 삶의 짧은 여정이 두 권의 책속에 그려진다. 아무것도 모른 백지 상태에서 세상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은 레이첼의 시선을 통해 빅토리아 시대 영국을 지배하던 남성 중심 사회속에서 억압받고 억눌린 여성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진다. '출항'이란 제목속에 숨겨진 이중적인 의미를 읽어 나갈수 있다.

 

 

버지니아 울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듯한 이 작가! 하지만 그녀를 작품속에서 만난 것은 처음인것 같다. 어디더라... 어디더라...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느 詩 속에선가 잠깐 스치듯 마주친 그녀의 이름이 다라는 사실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름은 정말이지 낯익다. 어디선가 만나본듯... 아직도... ㅋㅋ <출항>은 그녀의 처녀작이다. 10여년이란 시간을 두고 열 두번을 넘게 고쳐쓰며 늦은 나이에 항구를 떠난? 이 작품이 주는 의미는 그녀에게도 꽤나 색다른 느낌을 전해줄거란 생각이든다.

 

<출항>은 꽤나 어렵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제목에 담긴 다중적 의미를 차치 하더라도 그녀가 개척한 새로운 스타일의 소설 기법을 보여준다. '의식의 흐름'! 이란 이 기법은 특별한 스토리라인보다는 캐릭터의 의식과 느낌을 두서없이 서술하는 기법이라고 한다. 이런 스타일 때문에 그녀의 소설은 약간은 지루하고 어렵다는 반응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역시 어렵다.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하게 쓰여진 색다른 작품이 바로 <출항>인 것이다.

 

1941년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선택했던 버지니아 울프. 그녀의 처녀작이기도 한 <출항>은 그녀의 자전적 요소가 많이 담긴 작품이다. 마지막 레이첼의 모습속에 울프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울프는 처음 순수한 아가씨 레이첼의 이름을 씬시아라고 지었다고 한다. 씬시아는 신화속 사냥의 여신이자 달의 여신으로 남성적이면서 당당한 여성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반대로 레이첼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로 '희생제물'이란 의미를 갖는 피동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이름 하나에도 깊은 고민과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 이 작품을 더욱 가치있게 바라보게 만든다.

 

'사실상 울프는 자신의 여주인공의 죽음을 딛고 서서 새로운 출항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레이첼이 바다 깊숙이 익사하는 순간 자신의 자아/주체가 와해됨을 느끼는 것과 달리 울프는 그 심연에서 떠오른다. <출항>은 울프의 수면 위로 떠오르기이다.' - 2권, P. 385 작품해설 중에서 -

 

절대로 쉽지 않은 <출항>을 조금은 편하게 이해하도록 만드는 장치가 바로 책의 마지막에 있는 '작품해설'이 아닐까 싶다. 특별하지 않은것 같으면서도 그 속에 숨겨져 있던 특별함을 찾아내는 것! 이 책을 읽은 또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싶다. 남성을 위한 이기적 욕망의 도구로, 가부장제의 희생양으로서의 레이첼, 거기에 자신의 아버지를 모델로한 리들리, 자신의 이미지를 투영한 휴잇... <출항>은 처음으로 그녀를 그리고 마지막 그녀의 모습까지 예언한 그런 자전적 소설이 되어버렸다. 작가로서, 여성으로서 버지니아 울프, 그녀 자신을 그린 작품이다. 그녀와의 첫 항해는 그렇게 설레임으로 마무리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