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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 2 - 자립편 ㅣ 청춘의 문 2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박현미 옮김 / 지식여행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바이올렛(violet), 파랑과 빨강이 겹쳐진 색으로 우아함, 화려함, 풍부함, 그리고 고독과 추함이라는 다양한 느낌을 전하고 있다. 그로인해 바이올렛은 예로부터 왕실의 색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품위있는 고상함과 함께 외로움과 슬픔을 자아내는 바이올렛, 보라색! <청춘의 문> 그 두번째 이야기 '자립편'은 그렇게 보라색을 띄고 있다. 첫번째 이야기가 순수하고 맑은 파란색에 가까웠다면 두번째 신스케에게 다가온 이야기는 바로 보라색으로 대표되는 색깔이다. 그렇게 파랑과 빨강이 만나 보라색이 되어버린다.
자신을 도와주던 많은 이들의 도움을 사양하고 홀로 서기를 선택한 신스케, 그 길고 험난한 청춘의 시간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도쿄로 올라와 대학생활을 시작하지만 잠자리하나 먹을거리 하나 구하기가 쉽지 않은 고행의 날들이 시작된다. 학교 선배 오가타의 도움으로 살 집과 아르바이트를 얻게 된 신스케. 하지만 선배의 도움?은 그뿐이 아니다. 오가타를 통해 환락가를 경험하고 하숙집 딸 레이코와 에이코와 만나게도 되엇으니... 청춘의 시간동안 통과해야 할 과제중 하나인 사랑과 성! 신스케가 걸어가는 <청춘의 문> 두번째 이야기의 커다란 부분은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
'신스케는 지금 대체 자신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세상은 인간을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놓았는지, 살아가기 위해서 사랑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이런 의문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로 있다. 그것들이 분화되지 못한 채 부글부글 몸속 어딘가를 꽉 막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신스케는 밤의 공기 속에 서 있었다.' - P. 448 -
도쿄에서의 생활이 어느정도 안정을 찾아갈때 즈음 신스케의 첫사랑이기도 했던 오리에가 도쿄로 올라온다. 하지만 왠지 오리에가 귀찮고 부담스러운 신스케. 이를 눈치챈 오리에는 결국 자기 자신을 학대시키기에 이른다. 오리에를 구하려 하는 신스케, 오리에를 비롯한 신스케 주변의 많은 여성들, 그리고 남자들의 이야기. 소년에서 청년으로 이제 청년에서 어른이라는 이름을 어느덧 가까이 준비하게 된 신스케. 그의 청춘의 문이 서서히 뚜렷한 윤곽을 내어 보이기 시작한다.
보라색은 심리적으로 쇼크나 두려움을 해소하고 불안한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역할을 하며, 정신적인 보호 기능을 한다고 한다. 책 표지 하나에도 이 작품이 담아내려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읽어낼 수 있는 대목이다. 순수한 푸른색에 빨간색 한 방울일 떨어지면, 그것은 여지없이 보랏빛을 띄게 될 것이다. 신스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청춘의 문> 자립편은 신스케의 사랑과 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론 대학생이라는 위치에서 겪어야 할 더 많은 인생의 고민과 아픔들이 담겨져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리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자립편에서도 역시 신스케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매춘부 가오루, 강사 이시이, 하숙집의 레이코와 에이코, 양아치 오가타, 도쿄로 상경한 오리에... 만남을 통해 배우고 깨닫고 때로는 자신의 것을 잃어버리고 놓치고 놓아버리는 수많은 과정을 반복한다. 만남의 반댓편에선 이별이라는 감정들, 단순한 쾌락과 사랑의 감정들... 이런 수많은 감정과 이야기들이 바로 그 청춘의 시간속에 놓여진다. 그 시간들을 거니는 신스케의 모습을 보며 잠시 우리가 겪었던 그 추억의 터널속에 몸을 맡겨본다.
우리가 꿈꾸던 청춘의 낭만과 가슴 아픈 상처와 고민, 하지만 이 작품 <청춘의 문> 두번째 이야기에서는 그 깊이 있는 고민들이 조금은 가벼운 것이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들기도한다. 가벼움이라기 보다는 약간의 쏠림, 치우침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물론 청춘의 문을 지날때 가장 커다란 과정중 하나가 사랑과 성이라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 말고도 아파하고 고민할 대상과 이야기들은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시련과 고통이 배인 역사적인 배경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대하는데 조금은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하는것도 아쉽다.
'신스케는 자신이 그 미지의 암흑 같은 바다를 힘차게 나아가는 고독한 선원처럼 느껴졌다. 그는 지금 또 하나의 새로운 인생의 문을 빠져나가려 하고 있다.' - P. 531 -
그래도 청춘이란 시간, 그 혼돈의 문을 지나는 신스케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가지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들 개인 개인의 시간들을 추억하기도 하고, 지금을 살아가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도 된다. 우리에게 청춘의 문, 그 시간은 끝이 난 것일까? 아직도 그 혼돈과 고민의 시간을 걷고 있지는 않을까? 청춘소설이라는 장르로 묶어내지 않더라도, 간만에 미스터리가 아닌 순수 문학의 향기를 느낄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조금은 야릇하면서도 젊음의 그 비릿한 내음을 오랫만에 맡으며...
일본 문학계의 거장 이츠키 히로유키! 그와의 첫만남이었던 <청춘의 문>, 이 한 작품으로 그를 평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평가란 말 자체가 우스울 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그가 빛내온 '나오키 상'이 담아내던 명성과 느낌들과는 또 다른, 순수하고 약간은 투박하면서도 남성적인 매력들이 아마도 <청춘의 문>의 매력, 혹은 이츠키 히로유키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보라빛 청춘, 아직 모두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은 청춘의 문, 우리는 오늘도 그 시간을 걷고 있다. 청춘에서 인생으로 이어진 그 문에 우리는 아직도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