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녀에 얽힌 살인 고백
사토 세이난 지음, 이하윤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장애인 여성과 13세 미만 아동을 성폭행했을 경우 유기징역 외에 무기징역까지 처할 수 있고, 공소시효도 폐지하며, 장애인 시설 종사자의 범죄행위시 가중처벌....' 소위 도가니법이라고 불리는 '성폭력 범죄와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2011년은 온통 성폭력 범죄와 관련된 사건들로 혼란스러웠고 안타까운 한해였다. 법으로 강제되지 않으면 안될 지경에 빠진 이 혼탁한 세상, 그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슬프고 안타깝고 아프고 아프다. 일본 대사관 앞을 지키고 서있는 어린 소녀의 동상이 떠오른다. '일본군 위안부 평화비' 라는 이름을 가진...

 

반세기 전에 사람의 탈을 쓴 악마들이 저질렀던, 법이라는 것, 인륜이라는 것을 앞에 놓고도 부끄러움 하나 없이 소녀 동상의 철거를 말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반세기를 훌쩍 넘어 우리 손으로 자행되는 또 다른 잔인한 상처와 너무도 닮아 있음에 소름이 돋는다.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그 소녀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는듯 보이는 한 소녀가 여기에 있다. <어느 소녀에 얽힌 살인 고백>속 '아키'라는 소녀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너무 앳되고 순수하고 연약해 보이는 그녀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난 것일까? 그녀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까?

 

아키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10여년전 이야기가 되살아난다. 한 남자에 의해서... 당시 이 소녀, 아키를 담당했던 아동보호소 소장 쿠마베를 시작으로 그녀를 알고 있는 이들과의 인터뷰가 시작된다. 아키가 다니던 학교의 담임교사, 병원의 의사선생, 아키 주변의 이웃과 친구들... 이들과의 인터뷰와 쿠마베의 인터뷰가 교차한다. 밝고 명랑한 소녀 아키, 그녀의 상담을 맡았던 쿠마베는 그녀가 학대를 받고 있으며 그 대상이 바로 그녀의 엄마인 키미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키미에의 내연남인 나쁜 남자 스키모토, 그의 폭력과 또 다른 학대, 시간을 거슬러 얽히고 설힌 그들의 관계속에 아키의 상처는 더욱 커져만간다. 그리고 아키와 관련된 죽음의 전주곡! 10년전 아키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찾아다니는 이 남자는 누구인가?

 

<어느 소녀에 얽힌 살인 고백>은 미스터리라는 장르적 특성을 가지면서도 인터뷰 형식이라는 독특함을 지닌 작품이다. 미스터리를 즐기는 독자들이라면 예전에도 이와 유사한 작품들을 만나 봤을줄 안다. 유명한 몇 작품을 꼽아본다면... 가장 먼저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과 '속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너무나 충격적이면서도 독특한 구성으로 미나토 가나에를 일본 미스터리 대표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만든 이들 작품의 형식 역시 인터뷰로 풀어가는 구성이었다. 그리고 누쿠이 도쿠로의 '우행록'도 손꼽히는 작품중 하나다. 온다리쿠의 '유지니아' 역시 인터뷰 형식이 인상깊은 작품이다.

 

 

'어릴 시절 한때, 나는 언젠가 부모님 손에 죽는 게 아닐까 두려워하며 지냈습니다.'

 

책의 끝부분에는 원작에도 없던 작가의 후기가 대미를 장식한다. 특별히 한국어판의 출간을 기념해 저자 사토 세이난이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어느 소녀에 얽힌 살인 고백>이 어떤 작품이고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말하고 있다. 그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아이를 지킨다는 것, 부모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해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한번 생각하고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대답은 계속 변하고 바뀐다는 것을 인지하고 대처해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는다!'

인터뷰 형식의 구성과 아동 학대라는 조금은 익숙한 소재와 형식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2011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우수상 수상작에 빛난다. 그렇다면 평범한 그릇속에 저자 사토 세이난은 어떤 색다르고 맛난 음식들을 준비한 것일까? 인터뷰라는 형식이 진부하다면 사건을 풀고 엮는, 등장인물들의 인터뷰와 대화속에서 살아 숨쉬는 캐릭터들의 매력이 가득한 작품이다. 미스터리 장르 답게 트릭과 복선, 마지막 반전 또한 기존과는 차별화된 색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낡은 가죽부대에 넣은 새 포도주! 바로 그 느낌 그대로...

 

<어느 소녀에 얽힌 살인 고백>는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들추어내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계보를 잇는다. 일본 미스터리에서도 이미 많이 소개되기도 했던 일본의 '아동 학대 방지 등에 관한 법률' 제9조와 연관된 사건과 이야기들로. 그래서도 안되겠지만... 법으로도 풀 수 없는, 전혀 낳아지지 않는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 이야기들이 다시한번 독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짖누른다.

 

딸아이의 아빠가 된 지 어느새 18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 몇일 후면 또 한 아이가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된다. 하지만 그런 기쁨의 와중에 이런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범죄들로 가슴 한켠이 무겁게 만들고 부모라는 입장에서 다시한번 고민하고 심사숙고 하게 된다. <어느 소녀에 얽힌 살인 고백>은 퍼즐을 짜맞추어가듯 빠져드는 즐거움에 더해 아빠라는 이름이 한번쯤 고민해야할 사회성 짙은 이야기들로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의 재미까지 더해준다.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이 활짝 웃을 수 있는 그 날을 위해, 우리 아이들이 더 밝고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이 하루 빨리 다가오기를 바래본다. 사토 세이난과 같은 작가들의 사회에 대한 깊은 고민이 이런 멋진 작품들로 새롭게 태어나기를 기대해본다. 학교 폭력, 아동 학대, 빈곤층에 대한 차별, 여성 성폭력 등 이런 사회 문제들이 언제나 우리 사회에, 아니 우리에게 직접적인 상처를 던지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 올 수 있음을 인지하고 하나하나 풀어가는 현명한 우리, 우리 사회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다시한번 그녀에 얽힌 고백들에 귀를 기울이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