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의 초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양억관 옮김 / 이상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이번에 만나볼 작가는 '마쓰모토 세이초'다. 사람들은 그를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의 아버지'라 부른다. 사회파 미스터리? 일본 미스터리 추리소설을 즐기는 독자들이라면 그 내용을 알겠지만, 아직 낯선 이들을 위해 잠깐 이들 용어에 대해 알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그것이 미쓰모토 세이초의 이 작품 <제로의 초점>을 이해하는데에도 도움이 될테니까... 본격, 사회파, 그리고 신본격이란 용어로 일본 미스터리가 구분되기도 하는데... 간단히 말해 '본격 미스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퍼즐을 푸는 형태의 원형적인 미스터리를 말한다. 시마다 소지, 에도가와 란포, 요코미조 세이시 등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반면 '사회파 미스터리'는 인위적인 배경과 인물설정, 트릭이 난무하는, 현실감이 떨어지는 이런 본격 미스터리에 반기를 든다. 작가가 인위적으로 창조해낸 세계가 아닌,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와 연관된 범죄들을 소재로 삼아 문제를 풀어내는 미스터리를 바로 사회파 미스터리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마쓰모토 세이초인 것이다. 1950년대 전후의 전쟁과 상흔으로 얼룩진 시대상에서 이런 사회파 미스터리가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게 된다. 하지만 1980대 즈음 작가들의 트릭을 경시하는 사회파에 반발하면서 추리소설의 본질인 수수께끼 풀이를 주장하는 '신본격파' 가 등장한다. 아리스가와 아리스, 우타노 쇼고가 그 대표적 작가들이다.

 

일본 문학의 거인, 사회파 추리소설의 아버지 마쓰모토 세이초의 <제로의 초점>은 일본 사회 어두운 시간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바로 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암울하고 어두운 시대분위기를 반영하듯 약간은 무거운 색깔을 입고 있는듯한 느낌의 작품이다. 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점령한 일본, 아직은 혼란스럽고 그 상처가 아물지 않은 이 사회의 아픔을 조심스럽게 끄집어 낸다. 마쓰모토 세이초가 담아낸 이 사회적 이야기의 배경과 인물은 바로 '여성'이다.

 

일본의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전쟁의 시간이 바로 이 작품에서도 그 배경이 된다. 1957년 일본 북서지방의 가나자와에서 실종사건이 벌어진다. 스물 여섯살의 아타네 데이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10살 차이의 우하라 겐이치와 도쿄에서 결혼을 하게 된 그녀. 신혼여행직후 근무하던 가나자와로 후임과 함께 떠난 남편은 일주일 후에 돌아온다는 말을 남긴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다. 갑작스런 결혼에 아직 남편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 데이코, 남편의 책 속에서 우연히 두 장의 사진을 발견한다. 저택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소박한 민가의 모습이다. 이 사진과 남편의 실종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남편을 찾아 가나자와로 기차를 타게된 데이코는 남편의 후임이었던 혼다와 함께 사라진 남편의 행적을 쫓게 된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기 전날 다카오카라는 곳에 다녀와 다시 집으로 갈거라고 혼다에게 했던 마지막 말, 하지만 남편은 왜 도쿄에 가는 도중에 위치한 다카오카를 다녀오려고 했을까? 가나자와에서 지내던 남편의 하숙집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데이코가 알지못하는 남편의 숨겨진 생활과 함께 남편의 실종사건은 더욱더 오리무중이 된다. 남편이 도움을 받던 지방 유력인사 무로타 씨의 집을 찾은 데이코는 그의 집 앞에서 깜짝 놀라게 된다. 바로 남편의 책에서 나온 저택의 사진이 바로 그 집이었기 때문이다.

 

 

데이코가 알지 못하던 남편의 과거가 하나둘씩 베일을 벗는다. 1950년 잠시 경시청 순경으로 근무하다 1년반만에 그만둔 사실, 남편의 유일한 혈육인 형 우하라 소타로, 데이코의 시아주버님이 가나자와로 찾아와 홀로 세탁소를 들르며 남편의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사실... 미군 점령 시절의 경찰이었던 남편은 직무가 매춘부 단속이었다고 한다. 그가 경찰을 그만둔 이유와 이번 실종사건이 관계가 있는 것일까? 남편이 가진 사진속 모로타씨 저택과 또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이런 의문만 커지는 와중에 소타로가 여관에서 살해되는 살인의 전주곡이 시작된다. 겐이치의 실종, 소타로의 죽음... 도대체 그들에게는 어떤 비밀이 있는것일까?

트릭보다는 사회적 배경과 동기에 관심을 가지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특징답게 <제로의 초점>은 패전의 상흔이 존재한 미군정 시절이라는 역사적 시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독특한 매력을 지닌 인물이나 시선을 사로잡는 인위적인 배경보다는 너무나 평범해보이는 두 남녀의 결혼이란 하나의 사건?을 시작으로 베일에 쌓인 한 남자의 실종을 모티브로 평범한듯 흡입력있게 이야기가 펼쳐진다. 단순해 보이던 실종 사건 하나가 깊은 어둠을 담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새로운 이야기로 거듭나고 그것은 당시 사회적 아픔을 끄집어 낸다.

 

<제로의 초점>은 2009년 마쓰모토 세이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제로 포커스>란 제목으로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배우 히로스에 료코가 데오코 역을, 나카타니 미키가 사치코 역을 맡아 소설과는 또 다른 캐릭터가 가진 매력과 스토리의 재미를 전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상영되었지만 일본 영화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는 최근 현실을 반영하듯, 안타깝게도 그리 관심을 끌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소설보다 잘 만든 영상은 그리 흔치 않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결혼이란 상대에 대한 그런 정도의 막연한 이해만으로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여자는 상대의 그런 미지의 부분에 대해 두려움과 매혹을 함께 느낀다. 그렇게 결혼을 한 뒤 미지의 부분은 점차 밝게 드러나고 두려움도 사라져 매혹은 평범으로 바뀌고 만다. 데이코는 그렇게 생각했다.' - P. 15 -

 

데이코가 결혼에 대해 했던 말이다. 아니 이것은 당시 여성들의 생각을 대표하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은 <제로의 초점>이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의미를 포함한다. 여성이란 존재가 가진 위치와 삶의 의미... 그것을 작가는 조심스레 들추어낸다. 사실 책을 읽는 중간 즈음에 범인이 누구일까? 개인적으로는 예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쉽게도 그것이 들어맞아버렸다. 반전이나 충격적인 결말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다소 김빠지는 작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그럴것이 벌써 50여년이 훌쩍 넘어버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범해보이는 사람과 배경들 속에서 전혀 생각치 못한 사회적인 부분을 건드리고 끄집어 내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창작 작업의 기술 자체가 바로 반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된다. 일본 미스터리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와 미야베 미유키가 '미스터리의 전설과 아버지'라고 칭송하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오래된 미스터리가 일본 미스터리의 오래되고 진한 향기로 코 끝을 간지럽힌다. 약간은 어색한 고전스런 말투, 역사적 시간을 배경으로 한 이 미스터리로 잠시 잠깐 고전 미스터리의 향기속에 취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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