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인의 항아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1
오카지마 후타리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뫼비우스의 띠', 학창 시절 누구나 한번쯤 작은 종이를 가지고 만들어 봤을 뫼비우스의 띠는 바깥쪽과 안쪽을 구별할 수 없는 구조를 가진다. 이것이 2차원적인 구조라면 '클라인의 항아리'는 4차원으로 그 구조를 확대한 개념이다. 항아리라는 모습을 가진, 닫혀 있지만 사실은 열려있는 구조를 가지는 클라인의 항아리는 독일 수학자 F. 클라인에 의해 고안되었다고 한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지만 우리의 생각의 한계를 뛰어넘는 이 항아리는 또 다른 상상의 세계를 우리에게 선물한다.

 

이 '클라인의 항아리' 가 색다른 이야기로 우리 곁을 찾아왔다. 그 어느것도 결코 담을 수 없는 4차원의 구조, <클라인의 항아리>는 추리계의 전설적인 콤비, 도쿠야마 준이치와 이노우에 이즈미의 공동 필명인 '오카지마 후타리'의 작품이다. 7년이란 시간 동안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시간동안 콤비로 활약한 오카지마 후타리는 다양한 주제와 작품들도 그들만의 색깔을 발산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작품 <클라인의 항아리>을 마지막으로 해체되기에 이른다. 오카지마 후타리, 그들의 마지막 작품, 1989년 탄생한 이 작품이 그래서 더욱 관심이 간다.

 





 

취업할 가망성이 없는 대학 4학년, 우에스기는 어드벤처 게임북 공모전에 '브레인 신드롬'이란 작품을 공모하게 된다. 하지만 선택받지 못하고 낙담하던 그에게 '입실론 프로젝트'라는 게임 회사에서 러브콜을 보내온다. 우에스기의 작품을 게임의 원작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그들은 가상 감각 실험 장치, KLEIN-2라는 롤 플레잉 게임을 통해 혁명을 일으키겠노라고 호언한다. 그들과 계약을 체결하고 그들의 요청에 따라 게임의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직접 게임에 참가하게 되는 우에스기, 그와 더불어 게임 모니터 아르바이트로 타카이시 리사도 함께 참여하게 된다.

 

'나는 지금 도망치고 있다. 이곳은 산속의 낡은 건물, 아마도 누구의 별장이리라. ... '

 

우에스기는 처음 만난 아르바이트생 리사에 대해 좋은 감정은 느끼게 되지만, 클라인의 항아리라 불리는 게임기에 몸을 내 맡겼던 리사가 다섯번째 날을 기점으로 행방불명 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우에스기 자신도 클라인의 항아리에 들어가 게임을 진행하던 중 들려온 '돌아가', '제어할 수 있을때, 도망쳐!'라는 경고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사라진 리사, 그녀의 친구 마카베 나나미가 우에스기를 찾아오고, 리사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게 된 우에스기, 하지만 다음날 우에스기는 다시 리사를 만나게 되고 모니터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여행을 간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그렇다면 나나미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게임을 진행할수록 '두 번 다시 들어오지마. 더 진행하면 안 돼. 제어할 수 있을 때 도망쳐. 돌아가!'라며 경고의 목소리는 강도를 더한다. 사라진 리사, 게임속 경고의 목소리, 조금씩 의심이 생기는 입실론 프로젝트의 비밀, 우에스기와 나나미는 지인의 도움으로 입실론 프로젝트와 클라인의 항아리, 그리고 미국에서 발생한 클라인 기념 병원 화재사건과의 연관성을 조금씩 밝혀 나가기 시작한다. 비밀 조직 DDST 와 입실론 프로젝트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클라인의 항아리는 도대체 왜 만들어진 것일까? <클라인의 항아리>는 그 독특한 구조 만큼이나 점점더 독자들을 미궁속으로 빠뜨린다.

 





 

1989년 작품인 <클라인의 항아리>는 가상현실이라는 소재를 통해 이후 영화나 다른 게임 등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지금은 너무나 익숙한 소재이지만 벌써 20여년이 지난 이 작품속에 이렇게 구체적이고 상상력 풍부한 소재와 상황들이 당시에는 너무나 획기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책을 내려 놓으면서도 이것이 현실인지 상상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공황상태! <클라인의 항아리>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독자들을 미궁의 항아리 속에서 허우적 거리게 만든다.

 

'항아리 안인가, 밖인가. 항아리 안이라고 가정하면 모든 것이 존재했다는 뜻이 된다. 반대로 이곳이 항아리 밖이라면 내 의식이 무너지고 말았다는 뜻이다. 나는 클라인의 항아리가 만들어낸 있지도 않은 환상에 사로잡혀 모든 제어 능력을 잃어버린 잔해다. 거울에 내 모습이 비쳤다. 하지만 내가 거울밖에 있고, 거울속 모습이 안쪽에 있다고, 어찌 단언할 수 있을까?...' - P.360 -

 

360페이지로 그리 짧지 않은 분량이면서도 오카지마 후타리 콤비는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재미있는 트릭을 곳곳에 준비한다. 다소 마지막 반전이 아쉽기도 하지만 20년이 훌쩍 지난 작품이고, 이미 익숙한 반전이나 결론에 익숙하기에 그런 느낌이 든것이리라. '처음에서 시작해서 마지막에 끝나면 돼!' '클라인의 항아리'에서 마지막이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시작이 없어야 할것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그 시작점에 발을 내딛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이 끝나지 않을 게임속을 걷게 된것이다. 그렇다면...

 

2011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이 작품은 SF 추리 미스터리라는 장르적 특성 말고도 다시 한번 우리 사회를 생각케하는 기회를 전해준다. 한미 FTA 비준안 통과로 어수선한 국내 상황조차 이제는 판타지로 믿고 싶어지는게 현실이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데 금값을 계산에서 빼내어 국민들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정부도 아마 판타지 정부가 아닐까? 재보선을 계기로 새로운 정치를 선언한 여야 모두 지금은 흐지부지 국민들의 마음만 어수선하게 만든다. 현실이 현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가난한 서민과 국민들의 마음을 그들은 알지 모를지... 도대체 진실이 무엇이고 현실이 어느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마도 <클라인의 항아리>의 한 장면과 연결되지는 않는지 ...

 

아쉽게도 오카지마 후타리 콤비, 도쿠야마 준이치와 이노우에 이즈미는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해체되었다고 한다. 도쿠야마가 작품의 아이디어를, 이노우에가 집필을 분담하는 식으로 작품활동을 했던 그들이지만 이노우에가 아이디어 까지 내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이런 불균형이 해체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노우에는 지금도 작품활동을 하고 있고, 도쿠야마 역시 방송계에서 그의 역량을 내보이고 있어, 혹시라도 한번쯤 그들의 두번째 만남을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클라인의 항아리'라는 독특한 소재 하나로 이런 SF 추리 미스터리를 만들어 낸 그들의 기발한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전설적 콤비, 오카지마 후타리!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분하기 힘든 오늘을 사는 우리는 오늘도 클라인의 항아리 속을 허우적 거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