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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왼팔
와다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들녘 / 2011년 10월
평점 :
기이한 표정을 한, 약간은 어눌해 보이는 표정의 한 아저씨를 표지에 담은 한 권의 책이 2011년 국내 독자들을 찾아왔다. '노보우의 성'이란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수많은 독자들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와다 료', 그가 바로 독자들을 열광시킨, 이 노보우(얼간이) 나리타 나가치카를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센고쿠시대 이야기꾼보다 더 센고쿠적인 삶을 그려내는 소설가'라는 칭송을 받을 만큼 그의 이야기꾼으로서의 매력은 두말할 나위가 없어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노보우의 성'을 만나보지 못하고 그의 두 번째 작품을 먼저 만나기에 아쉽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욱 기대되고, 그 매력적인 이야기가 궁금해지기도 하다.
'참으로 묘한 소년이었다. 머리에 감을 얹은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생김새도 묘했다. 한껏 기른 머리카락이 거의 허리까지 내려왔다. 그 머리채를 묶지도 않아서 얼굴의 반쯤은 머리카락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나는 얼굴 또한 야릇했다. ... 소년의 이름은 고타로라고 했다.'
전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바람의 왼팔>도 한 사람을 전면에 내세우는 표지를 채택하고 있다. 이번에는 긴 머리를 한 소년의 모습이다. 얼마전 드라마에서 보여지던 배우 '유승호'의 모습이 언듯 떠오르기도 하는데... 어쨌든 이번에는 이 소년이 주인공인것 같다. 그 소년의 이름은 '고타로'라고 했다. 그리고 또 중요한 한 사람이 등장한다. 도자와 가문의 맹장인 하야시 한에몬! 15세기 후반에서 한세기를 거치는 일본의 센고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그 시대를 호령하던 다이묘들과 그들의 처절한 욕망과 전쟁의 시대를 그려낸다.
도자와 가문과 대립을 벌이는 고다마 가문이 있다. 고다마 가문의 무사 하나부사 기베에와 도자와 가문의 공로 사냥꾼 한에몬과의 치열한 대결과 끈끈한 우정, 그리고 그 사이에 서 있는, 아니 놓여 있는 소년 고타로. 고타로에게는 화승총을 다루는 천부적인 재질이 숨겨져 있었다. 전쟁에서 고다마 가문의 기베에에게 밀리는 한에몬, 이후 그와 고타로의 만남을 통해 기막히고 안타까운 그들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한에몬은 그가 처한 위기를 고타로의 천재적인 사격술이 극복해 줄거라 믿게 되고, '비겁한 짓을 하지마라'는 어린 시절부터 가져온 신념을 무너뜨리게 된다.
도자와 가문의 후계자인 즈쇼와의 보이지 않는 암투를 벌이는 한에몬, 한 여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그들의 사랑 쟁탈전, 그리고 시대에 가로막힌 전쟁의 파편들. 운명의 고리는 고타로와 한에몬을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몰아가게 되는데... 순진하고 어수룩하기까지한 한 소년, 소년의 운명을 뒤흔드는 하나의 사건, 전쟁, 그리고 마지막 발걸음이 독자들의 시선을 잠시도 책에서 뗄 수 없을 만큼 긴박하고 섬세하게 그려진다.

와다 료의 '노보우의 성'이 소설의 인기를 안고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을 기다리고 있듯, <바람의 왼팔> 역시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져도 참 재미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갖게 된다. 혼란의 시대를 풍미한 사무라이들의 치열한 대결, 가문의 후계를 둘러싼 암투, 누구도 몰랐던 비밀을 간직한 한 소년, 그리고 소설에서 절대 내려놓을 수 없는 매력적인 삼각관계 러브 라인까지... 다양하고 재미있는 소설적 매력이 가득한 센고쿠 시대의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전작과는 또 다른 매력을 전해준다.
<바람의 왼팔>을 가진 고타로가 두 말 할 나위 없이 이 작품의 주인공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한에몬이라는 캐릭터가 조금은 더 강렬한 느낌을 전해준다. 한에몬을 위한 하나의 커다란 소재이자 등장인물이 바로 고타로와 그 왼팔이 아닐까... 쉴 새 없이 독자들을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헤메이게 만들며 페이지를 넘기는 손이 잠시도 쉴 틈을 허락하지 않는, 내려 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 가득한, 정말이지 가독성이 짙은 작품이다.
책을 내려놓을 때쯤 이 엔터테인먼트 소설이 주는 즐거움과 함께 한에몬과 고타로에게 놓여진 현실과 그들이 변해가는 모습, 마지막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왠지 씁쓸하고 안타까운 느낌을 갖게 된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변화시키고 상처받고 스러지게 만든 것인가? 단순히 센고쿠 시대속에 그려졌던 비참하고 안타까운 모습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한에몬과 고타로에게 보여지는 듯한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책을 내려놓으며 인터넷 서점에서 곧바로 '노보우의 성'을 클릭클릭 하게 된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선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치열한 전투와 센고쿠 시대상의 눈속에 담아내듯 생생하게 그려내는 와다 료의 펜 끝으로 긴장감과 떨림을 멈출 수가 없다. 시대와 인물에 그만큼 섬세하고 드라마틱하게 영혼을 불어넣는 작가가 또 있을까? 소설과는 또 다른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도 한번 가져본다. 역사물이 아닌 현대물도 그에게 자 어울릴듯도 한데... 어쨌든 '엔터테인먼트 소설의 신성', 와다 료의 또 다른 이야기들이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