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호형사
쓰쓰이 야스타카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아바나에서 공수해 온 한 개피 8,500엔 짜리 시가를 피우고, 차는 캐딜락, 10만엔이 넘는 라이터를 쉽게 잃어버리고, 영국제 맞춤 양복을 입고 빗속을 거니는, 재벌 간베 기쿠에몬 회장의 아들, 간베 다이스케 형사! <부호 형사>는 바로 간베 형사의, 간베 형사를 위한, 간베 형사를 위한 미스터리다. 그까이꺼~~ 뭐~~ 돈이 얼마가 들건 범인만 잡으면 되지 뭐~!! 돈으로 범인을 잡고,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부호 형사, 다이스케. 기발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뭔가 비뚤어진 이 사회를 비웃는듯도 싶고, 천재 작가 쓰쓰이 야스타카의 첫번째 미스터리는 그랬다.

 

역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부호 형사>의 성분 함량표이다. 얼마전에 만났던 <로트레크 저택 살인사건>에서는 '반전'이 가장 큰 점수를 받았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캐릭터' 에 만점이 부여되어있다. 앞서 언급했던 부호 형사 다이스케는 물론이고, 그가 소속된 특별수사본부에 소속된 형사들 모두가 그들 나름의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다. 히치콕을 닮았다는 책임자 후카야마 경시를 비롯해 코즈카, 누노비키 형사는 물론이고, 언제나 유쾌하고 미스터리 팬이기도한 사루와타리 형사에 이르기까지... 이들 캐릭터는 딱딱할 수 있는 미스터리에 재미와 웃음을 전해준다.

 

7년째 끌어오는 5억엔 강탈 사건, 화재로 죽은 주조 회사의 사장과 밀실 살인, 유괴 사건과 계획 살인이라는 미스터리... 성분 함량표에도 들어있듯, 이런 고전의 반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미스터리적 배경과 요소들을 가지고 있지만 <부호 형사>는 역시 색다르다. 바로 재벌인 아버지의 돈을 범인을 잡는 일에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어마어마한 '부자 형사'라는 설정 때문이다. 젊은 시절 돈을 벌기 위해 무슨 짓이든 했던 자신의 죄책감을 씻어내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기꺼이 쓰라는 아버지 덕분에 부호 형사의 활약은 돈. 돈. 돈. 그 자체의 화려함에서 시작된다.

 

범인을 잡기 위해 화려한 댄스 파티를 열고, 밀실 살인을 해결하기 위해 회사를 만들어 버리고, 유괴범이 요구한 거액을 자비로 내어놓고, 시내의 전 숙박시설을 예약해 버리는 등... 이거 대한민국 가난한 형사들이 이 책을 만나면 홧병이라도 나지 않을까 괜한 걱정이 들기도 한다. 돈과 미스터리!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두 가지를 어색함 없이 매끄럽게 마무리한 천재 작가. 진지한 미스터리의 전형에서 조금 벗어나 있지만 전혀 새로운 미스터리를 완성해 낸 쓰쓰이 야스타카의 특별한 매력에 빠져든다.

 





 

이 천재 작가는 언제나 웃음의 코드를 내려놓지 않는다. 돈 많은 다이스케를 나무라거나 부러워하면서도 언제나 그의 계획과 그의 돈을 이용해 범인을 검거하고 사건을 해결하는데 쿨한 특별수사본부 형사들도 그렇고... '밀실의 부호형사'에서 사건 해결을 위해 만든 회사가 흑자를 내자 '불효막심한 놈'이라 오히려 역정을 내고 다이스케를 사장에서 해고시키는 간베 회장의 모습도 그렇다. 돈으로 무엇이든 가능한 이 나라, 이 사회에 대한 천재 작가의 도발이랄까? <부호 형사> 물질과 정의(正義)라는 어울리지 않는 양면을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풍자해 놓은 특별한 작품이다.

 

앞서 이 작품에서 만점을 받은, 캐릭터 부문에 있어 절대 빼어 놓을 수 없는 한 사람이 있다. 다이스케의 아버지, 간베 회장의 비서인 '하마다 스즈에'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다이스케의 사건 해결을 위해 기꺼이 도움을 마다 않는 그녀는 사실 다이스케를 짝사랑하고 있다. '부호형사의 미끼'에서 이미 그녀의 마음을 확인한 다이스케도 아마 그녀를 어느 정도 음.... 아닐까?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다이스케 때문에 눈물 짓는 스즈에를 보고 '꼭 고장난 샤워기 같아. 가뭄이 들었을 때 강에 세워놓으면 좋겠어....'라고 다이스케가 말하는 부분에서 빵~~ 터지고만다. 앞으로 그와 그녀의 로맨스를 기대해봐도 될까?

 

'무려 2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는 쓰쓰이 야스타카. <부호 형사>는 일본 SF의 대표작가인 쓰쓰이 야스타카의 첫번째 미스터리 도전작이다. 1978년 작품이니 벌써 출간된지 30년이 훌쩍 넘은 작품이다. 천재 SF작가의 미스터리 도전. 당시 그의 도전을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시간을 달리는 소녀'나 '파프리카'와 같은 작품을 통해 기발한 상상력, 패러디와 풍자로 날카로운 웃음을 던지는 이 작가의 다소 엉뚱 발랄한 이 미스터리는 지금과는 몇 배 더 충격적인 작품이 아니었을까? 오랜 시간의 무게 속에서도 그 만의 독특한 색깔을 간직한 미스터리, <부호 형사>가 즐겁다.

 

'재미있지 않으면 쓰지 않는다.'는 쓰쓰이 야스타카만의 독특한 스타일. 아마도 이것이 개인적으로 나의 책 읽는 스타일과 맞아떨어지지 않나 싶다. '재미있지 않으면 읽지 않는다.' 물론 재미라는 것은 읽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이겠지만... 재미있는 작품이란 것은 어느정도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책을 읽고 이 작품을 어떠니 저러니 하는 평가를 위한 책 읽기가 아니라 특별히 그 작품을 평가할 말이 없어도 '그냥 재미있었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한 책이 정말 좋은 책, 좋은 책읽기가 아닐까싶다. 오늘 또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나고 책읽기를 경험한다. 왠지 느낌 좋은 작가 쓰쓰이 야스타카의 첫번째 미스터리 도전작을 통해 풋풋함과 색다른 미스터리의 즐거움을 접하게 된다.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와 그녀, 다이스케와 스즈에가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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