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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수장룡의 날
이누이 로쿠로 지음, 김윤수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가즈 아쓰미'는 '그 섬'을 기억한다. 초등학교 2, 3학년쯤 되었을까? 엄마, 아빠, 그리고 남동생 '고이치'와 함께 찾았던 외외종조할아버지가 사는 '그 섬'의 기억! 할아버지를 따라 웅덩이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붉은 천이 매달린 대나무 장대'에 욕심을 낸 동생이 손을 뻗었다가 바다에 빠진다. 고이치의 손을 잡았다가 같이 바다에 빠져버린 아쓰미. 어른들에게 어렵사리 구조 되고, 바닷물을 토해내고, 어른들이 서로 고함치는 소리... '그 섬'에 대한 아쓰미의 기억은 작은 조각들의 단편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또 하나, 동생 고이치가 할아버지에게 선물로 그린 플레시오사우르스, 수장룡 그림... '그 섬'에서 도쿄 집으로 돌아온 뒤, 부모님은 이혼하시고 엄마와 둘이 살게 된 아쓰미...
나는 만화가다.
현재의 가즈 아쓰미는 만화가다. 종종 꿈속에서 그 때 '그 섬'의 단편들을 만난다. 벌써 삼십년 가깝게 흘러간 시간이지만... 아쓰미의 엄마는 그녀가 스물네살때 돌아가셨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만화가이다. 고이치는 몇년전 자살을 시도해 식물인간이 되어 혼수상태에 있다. 아쓰미는 SC인터페이스라는 기계를 통해 혼수상태인 고이치와 의사소통을 한다. 그것을 '센싱'이라 한다. 그러던 어느날 낯선 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기도 하고, 나카노 야스코라는 이름이 적힌 사진엽서 한장이 그녀를 찾아온다. 나카노 야스코?? 아쓰미는 기억을 되돌린다.
'추억이 있는 곳에는 안 가는 게 제일이야. 마음속 풍경은 현실과 만나는 순간 빛을 잃게 돼...'
아쓰미의 열혈 팬이었던 야스코씨의 아들 유타카, 그녀의 아들 또한 왕따로 괴로워하다 투신자살을 시도했고 고이치와 같이 의식불명상태에 있다고 한다. 나카노 야스코는 고이치와 센싱을 하고 싶다며 아쓰미의 허락을 부탁한다. 꿈인지 현실인지 아쓰미의 앞에 고이치가 나타나기도 하고, SC인터페이스를 통한 고이치와의 대화에서 아쓰미는 왜 자살을 하려했는지 동생에게 묻기도 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터 남매였지?'라며 고이치는 오히려 그녀에게 알듯 모를듯한 질문을 내민다. 그리고 결국 아쓰미는 그들의 비밀이 간직된 '그 섬'에 발을 내딛는데...
꿈인지 현실인지...
하늘을 나는 듯한 수장룡과 한 소녀, 환상 가득한 표지가 인상적인 <완전한 수장룡의 날>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제9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을 수상한 이누이 로쿠로의 작품이다. 인상적인 표지 못지않게 그 내용 또한 독특하다. 만화가인 주인공과 자살시도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동생, 그리고 그들을 연결시켜주는 SC 인터페이스라는 기계... 센싱을 통해 동생을 만나는 아쓰미의 현실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꿈과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현실에서 동생을 만나기도 하고, 어린 시절 '그 섬'의 기억은 계속 그녀의 꿈속을 헤메인다.

고이치는 왜 자살을 시도한 것일까? 아쓰미의 꿈속에서 계속 반복되는 '그 섬'에서의 기억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장자의 '호접몽'이 의미하는 것은? 미국 작가 J. D. 샐린저의 단편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A Perfect Day for Bananafish)'에서 따온 이 작품의 제목은 무슨 의미를 갖는지...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수많은 의문들을 갖게 된다. 퍼제션(possession), 빙의, 철학적 좀비, 데자뷔, 장자의 호접몽과 데카르트에 이르기까지 몽환적인 분위기의 이 미스터리는 역시 독자들에게 독특한 미스터리적 재미를 안겨준다.
'우리는 꿈속에서도 자신이 깨어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그 구별은 명확하게 하지 못한다. 지각은 모두 거짓이고 지금의 나는 꿈을 꾸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 데카르트 -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을 수상한 작품답게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에 독자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을 것이다. 위에 있는 데카르트의 이 말은 <완전한 수장룡의 날>이 전하는 충격적인 반전에 그나마 독자들에게 일말의 힌트를 전해준다. 수많은 궁금증과 의문들을 안고 있으면서도 독자들은 작가가 의도하는 대로 무심결에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현실과 꿈을 넘나드는 몽환적인 분위기는 이누이 로쿠로의 섬세한 문장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이것인 꿈일까? 현실인가? 책을 내려놓으면서도 확신이 들지않는 꿈과 현실의 경계는 그대로 여운이 되어 남는다.
'나는 살며시 눈을 떴다. 검은 광택의 커다란 지느러미 네 개가 천천히 위아래로 번갈아 흔들면서 멀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잠수함처럼 거대한 검은 몸체 너머로 뱀을 떠올리게 하는 기다란 목이 보인다. 아아, 플레시오사우루스다. 수장룡이다. 네 개의 다리 지느러미를 지닌 완벽한 수장룡이 바다 위에서 비스듬하게 비치며 커튼처럼 흔들리는 햇빛을 받으면서 파랗고 반짝이는 바닷속을 헤엄쳐간다. 그 수장룡 등에 어린 사내아이가 타고 있었다. 머리에 빨간 야구 모자를 쓴 뒷모습이다.' - P 231 -
몽환적이고 기묘한 분위기가 이어지지만 <완전한 수장룡의 날>은 판타지 보다는 SF에 가까이 다가서 있는 미스터리 작품이다. SC 인터페이스라는 기계를 통해 의식 불명인 동생과 의사소통을 한다는 소재 자체가 SF적 느낌으로 다가온다. 데카르트와 장자에 대한 인용을 통해 꿈에 다가서는 철학적인 느낌 또한 갖게 만든다. 수많은 물음표들, 그리고 SF, 철학, 꿈에 다가서는 다양한 접근... 그렇게 <완전한 수장룡의 날>는 대단한 미스터리가 된다.
또 하나 이 작품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은 만화가의 일상을 살짝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만화 잡지의 편집자, 인기 만화가, 만화가의 어시스턴트 등 아쓰미의 일상과 주변인물들을 통해 그런 색다른 경험을 엿보게 만든다. 마지막까지 독자들을 짖누르는 왠지 모를 불안과 의문, 마지막 페이지에 담겨진 알 수 없는 슬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혼돈...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 수많은 이들에게 이것이 현실인지를 시험해보게 만드는 책이 바로 <완전한 수장룡의 날>이 아닐까 생각된다. 당신은 지금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이누이 로쿠로의 또 하나의 특별한 이야기 '시노비 외전'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