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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도시 이야기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4
다나카 요시키 지음, 손진성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그나마 영화라는 장르로 만난 가장 최근 작품이 바로 이것이다.(요즘은 통 영화 볼 시간이 나지 않는다. ㅠ.ㅠ)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는 먼 미래 침팬지가 지배하는 혹성에 남겨진 남자의 모험, 그리고 그곳이 지구였다는 마지막 반전이 압권이었던 '혹성탈출'의 전편이라 볼 수 있다. 1968년의 '혹성탈출'이 인상적인 침팬지분장과 획기적인 상상력이 주목 받았다면, 기술력으로 훨씬 진화된 이번의 '혹성탈출'은 오히려 작가가 들려주는 메세지에 더욱 주목하게 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오만과 몰락이 바로 그것이다.
획기적인 것! ET가 그랬고, 스타워즈나 아바타가 그랬다. 영화라는 장르가 가진 이런 기발한 상상력은 인간이 가진 기술의 획기적 진보와 미래에 대한 기대, 혹은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 속에서 인간의 탐욕과 오만을 비틀고 잘못된 발전 방향에 대해 올바른 손짓을 해주는 역할을 해온것 역시 그들의 몫이었다. 항상 놀라움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이런 거대하고 위험한 상상들, 독자와 관객들에게 그것은 미래를 꿈꾸는 또 다른 현재를 살게 만드는 즐거움이 된다.
다나카 요시키!와 '은하영웅전설'이란 이름은 항상 함께한다. 부끄럽지만 일본 문학에 대한 깊지 못한 나에게 이 이름은 아직 낯설다. 1982년 발표하시 시작했다는 이 작품은 지금까지 무려 1500만부 이상을 판매하며 꾸준한 인기와 함께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폐허가 된 지구, 그곳을 떠나 은하계에 살고 있는 인간들, 전제주의 은하제국과 자유민주주의 행성동맹간의 오랜 전쟁, 그리고 그 사이에 나타난 두 명의 영웅들... SF판 삼국지라는 소리를 들을만한 우주전쟁을 다룬 거대한 이 작품은 최근 국내에서 15권으로 재출간 되어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도 꼭 만나보고 소장하고 싶어진다.
어찌되었건 앞서 열거했던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던져주었던 시대를 넘어서는 상상력처럼, 벌써 25년이란 기나긴 시간이 훌쩍 넘었지만 다나카 요시키와 그의 작품들이 남겨준 그 특별한 상상은 독자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리고 지금 만나볼 <일곱 도시 이야기>를 통해서도 결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다나카 요시키라는 이름을 다시금 감탄사처럼 입밖으로 내어놓게 된다. <일곱 도시 이야기>는 '은하영웅전설'은 집필 말기 정도인 1986년에서 약4년여 동안 쓰여진 연작단편들의 모음집이다.
부에노스 존데, 뉴 카멜롯, 아퀼로니아, 쿤론, 산다라, 타데메카, 프린스 헤럴드! 서기 2088년 지구는 3년간 지속된 대전도(Big Falldown), 지축이 90도 틀어지는 현상으로 사람이 살 수 없게 된다. 혜택을 입은 소수만이 달의 월면도시에 정착하고 그들은 백억명의 죽음을 멀리서 구경하게 된다. 2091년 월면도시의 생존자들은 다시 지구에 발을 딛게 되고, 재앙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재조직하며 문명 재건을 위해 일곱개의 도시를 건설하게 된다. 하지만 지구인과 지구에 새롭게 정착한 그들에게는 일정한 제약이 주어졌다. 항공, 항주 기술을 월면도시 거주자들에게 빼앗겨버린 것이다. '올림포스 시스템'이란 것을 통해 물체가 지상 500미터 높이에 이르면 파괴하는 시스템을 통해 달이 지구를 지배하는 시스템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가지 못한다. 월면도시의 영화는 2136년 달에 떨어진 운석에서 검출된 미지의 바이러스로 모든 주민이 치사성 열병으로 전멸하고 만다. 하지만 지구를 지배하던 올림포스 시스템은 여전히 지구인들을 위협하고 있다. 아마도 200년 이상은 쉬지 않고 이어질 것이다. 대전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월면도시에서 이주한 사람들 사이의 적대감, 하늘을 잃은 사람들 사이의 경쟁과 반목은 결국 피를 뿌리는 전쟁으로 치닫고만다. 서기 2190년, 하늘을 잃어버린 일곱도시의 전쟁이 시작된다.

<일곱 도시 이야기>에서 역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전쟁 대서사시였던 '은하영웅전설'속 영웅들이 그랬던 것처럼, 과거 삼국지의 전쟁 영웅들을 만나듯 하나하나 그 존재를 알리는 영웅들의 등장이 독자들의 가슴을 일렁이게 만든다. 특히 두 영웅, 뉴 카멜롯의 케네스 길포드와 아퀼로니아의 알마릭 아스발이 자신들만의 색깔을 드러내며, 치열하게 전쟁을 지휘하는 모습에서 독자들은 매혹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더불어 부에노스 존데의 귄터 노르트나 아퀼로니아의 참모 류 웨이, 뉴 카멜롯을 등에 업은 모블리지 주니어 등 지략가와 명장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일곱개의 도시라는 한정된 공간, 하늘에서의 전투를 배제한 도시간의 전쟁을 통해 작가는 과거의 시간속을 떠올리게 만드는 미래속 상상의 나래를 펼쳐낸다. 미래라고는 하지만 전쟁의 수준은 1차 세계대전이전의 시간속으로 한정하고 있는 것이다. 잘 짜여진 시공간적 배경은 독자들을 이 색다른 미래세계로 빠져들게 만든다. 이런 한정된 공간과 그 속에서의 전쟁은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정교한 묘사를 통해 그 빛을 더해나간다. SF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속에 담겨진 이야기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작가가 던지는 깊이 있는 메세지들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만든다.
'소문이라고 하시니 한 말씀 올리겠는데, 최근 들어 부끄러움을 모르는 풍조가 퍼지고 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군대나 경찰 고관이 일당 일파에 치우친 정치적 활동을 하고, 뇌물을 받으며, 장래의 지위와 이권을 약속받는다던가요.' - P. 24 -
케네스 길포드 준장의 이 말을 통해 작가가 던지는 이 시대에 대한 메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작가 다나카 요시키는 정치에 대한 비판을 담아내는 작가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 작품도 그와 다르지 않아, 간혹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묘사 등을 통해 날카로운 비판을 내어놓고 있다. 요즘처럼 어지러운 우리 현실에서도 그려지는 이런 소모적인 이데올로기 다툼,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모습, 치졸함과 썩은 냄새로 진동하는 정치의 한 단면 등 낯설지 않은 모습들이 엿보인다.
'지면 도망칠 필요는 없어. 죽을 뿐이지. 하지만 이기면 이곳에서 도망치지 않으면 안 될 거다. 원수는 지금 나를 의지하고 은혜를 느끼고 있지만, 일단 이기고 나면 공적을 독점하고 싶어질 테고, 내 존재가 거북해질 거야. 그는 결코 악인이 아니지만, 찬한 사람의 질투심은 악당의 야심보다 다루기 어려워...' - P. 47 -
류 웨이가 조카 마린에게 건네던 이 말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한 사람의 쓸쓸한 모습이 있다. 그것은 바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기나긴 전쟁의 끝을 달리던, 노량해전을 앞둔 충무공의 머릿속에 가득했던 생각이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그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 죽음을 가장하고 권력과 정치의 그늘을 빠져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수많은 추측들이 난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정치에 대한 불신과 정치인들에 대한 불만 역시, 다나카 요시키가 창조한 전쟁의 역사적 굴레와 결코 다르지 않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지금까지 세상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킨 원동력은 아마도 창조적 '상상력'이란 녀석에게서 비롯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요즘 한창 논쟁을 벌이고 있는 애플과 삼성의 태블릿PC 원조 논쟁에서도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가 언급되기도 했던 것처럼, 상상력은 곧 우리의 미래로 연결될 수 있다. 기발한 상상이 가져올 우리의 미래, 다나카 요시키의 이 한 권으로 다시금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된다. 아직 만나지 못한 '은하영웅전설'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미래의 시간, 아니 현재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 즐거운 상상, 특별한 경험, 깊이 있는 메세지! 다시한번 그 이름이 감탄사가 되어 되뇌어진다. 다나카 요시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