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평점 :
작품 활동보다 그 이외의 활동들로 더 주목받는 작가들이 있다. 보수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현혹시키는, 정말 열불나게 만드는 작가가 있다. 어렵게 돈주고 산 그의 삼국지 세트를 버리긴 아깝고 해서 상자에 쳐박아둔지 벌써 몇년째다. 또 어떤 작가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독자들과 젊은이들과 소통하는 감성마을에 사는 작가도 있다. 황구라?라는 작가는 이모 대통령과 한 비행기를 탔다?가 괜한 오해를 사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작가는 존경해마지 않는다. 어쨌든 이렇게 세상과 소통하고 작품활동과 더불어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이 있는 반면, '작품으로 세상을 말하는 작가'도 있다.
그 대표적인 이름이 바로 '조정래' 일 것이다. 20세기 현대사를 관통하는 그의 작품들은 이제 청소년이나 성인을 막론하고 이미 필독서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너무도 유명한 '태백산맥'으로 분단의 아픔과 그 전후의 시대상을 담아낸 작가는 '아리랑'을 통해 1900년대 초부터 해방에 이르는 시기 민초들의 아픔을 생생하게 그려내었다. 그리고 '한강'이란 작품을 통해 6, 70년대 격동의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모습을 그려내게 된다.
가장 최근에 만난 작품은 '허수아비춤'이란 작품을 통해서였다. 비자금 조성, 정경유착, 언론통제 등 최근 불거져나온 대기업관련 사건들과 맞물려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커다란 관심과 사랑을 받기도 했다. 우리의 올바른 선택 하나가 바꾸어갈 인간다운 세상을 부르짖는 조정래 작가의 날카롭고 날선 비판이 가슴을 먹먹하게도 시원하게도 만드는 작품이었다. 일년이란 시간을 넘어 다시 우리 곁을 찾아온 작가의 책 한 권! 이 책은 <비탈진 음지>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이 작품은 공교롭게도 나와 출생년도가 같다. 작가가 30세 초반에 집필했던, 벌써 40여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이 시점에서 작가가 이 작품을 다시금 선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중편이었던 작품을 작가가 새롭게 집필하고 다듬어 장편으로 재탄생시킨 <비탈진 음지>! 그렇게까지 해서 작가가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무엇일까? 그 이유가 궁금하다면 잠시 이야기속으로 들어가봐야 할 것 같다. 1970년대 잘살아보세!를 외치며 산업화가 대세를 이루던 그 시간, 작가의 시선은 이미 그 시기 소외된 자들에게로 다가서있었다.
2010년 기준 서울시의 인구는 천만명이 조금 넘게 집계된다. 전체 인구의 1/5이 그 작은 땅덩어리 안에서 뒤엉키고 밟고 밟히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시장도 교육감도 욕심내는 이가 많아 그리 어수선한 것인지... 어찌됐건 '눈깜짝할 사이 코 베어간다'고 했던 서울, 그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바로 <비탈진 음지>를 그려내고 있다. 그 남자의 이름은 복천, 남의 소를 팔아먹고 아이들을 데리고 야반도주해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 복천의 꿈과 희망이 아닌, 소외되고 추락하는 도시속 빈민의 삶, 그늘진 음지를 작가는 그려낸다.

태양이 뜨겁고 강렬할수록 그림자는 더 짙어진다. 우리가 처음 올림픽을 개최하던 80년대 고속도로 근처에 있던 하우스촌 빈민들을 갈곳 없이 거리로 내몰리고, 도심의 판자촌 사람들도 재개발의 역풍속에 오갈데 없이 쫓겨났다는 사실을 이제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가속되면서 소외되고 차별받을 수 밖에 없는 도시 빈민들의 하루살이 인생에 다르지 않았다. 그 그늘진 그림자는 복천영감이 살던 70년대나 올림픽만 끝나면 선진국이 된다던 90년대, 국격을 그렇게 강조하시는 대통령과 함께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별반 다르지 않아보인다.
앞서 언급했듯이 장편으로 새롭게 선보인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작가는 그 대답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국민소득 150불 시대의 도시 빈민들이 국민소득 2만 불 시대에도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그 심각한 사실이 우리의 현실이며, 중편 <비탈진 음지>를 장편 '비탈진 음지'로 개작해야 하는 이유였다' 고 말이다. 또한 이 작품을 앞에 놓고 작가는 '굶주리는 사람이 단 하나만 있어도 그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라는 릴케의 말을 인용했다고 한다. 무상급식이란 단어가 세간의 화두로 떠오른 요즘 조정래 작가의 이런 말과 의지가 다시금 우리사회를 뒤돌아 보게 만든다.
유시민 前 보건복지부 장관은 그의 작품 <후불제 민주주의>를 통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국민은 나라의 주인인가. 아니다. 노예다!' 이 말에 동감할 수 있겠는가? 생존을 걸고 크레인위에 오르는 위험한 상황이 아직도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평화적인 시위에 ㅇㅇ산성을 쌓고 물대포로 맞서는 경찰, 대화와 소통보다는 공권력을 앞세워 그들을 비극적 죽음으로 내모는 현실, 이것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그렇게 비탈진 음지를 비지땀을 흘리며 기어오르는 복천영감이 아직도 많이 있는 것이다.
마음둘곳 없는 요즘 사회에 조정래라는 작가가 있어 든든하고 가슴이 뭉클해진다. 40여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전혀 어색함 없이 그 시대 순수한 우리의 모습들을 되짚어 볼 수 있어 좋았던 시간이었다. 우리 아버지가 겪었을 시대적 아픔을 다시금 되돌아 볼 수 있어서 가슴 한켠이 찡하게 저려온다. 그이기에 가능한, 작가 조정래 이기에 이토록 생생하고 현실감있게 그 시대를 그려내어 마음에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뜨겁게 우리 민족을 사랑하는, 강렬하게 되먹지 못한 우리 사회에 쓴 소리를 던지는 작가 조정래! 그가 있어 행복하다.
'중국의 경제대국화와 영토 팽창주의는 한국에도 큰 위기로 다가올 겁니다. <태백산맥> 등이 과거를, <허수아비춤>이 현재를 다뤘다면 새로 선보이는 소설은 우리 미래를 그리게 되는 것이지요.'라고 그의 다음 작품에 대한 목소리는 더욱 독자들을 설레이고 궁금하게 만든다. 그 어떤 청춘보다 뜨거운 가슴과 정열을 품에 않은 작가 조정래! 우습지만 그의 사진을 볼 때마다 영화 시실리 2Km에 나오던 스미골을 닮은 우현 이란 배우가 떠오른다. 제발 나만 그렇기를... ^^ 어쨌든 글로써 세상과 소통하는 그의 특별한 작품들이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병든 곳들을 가차없이 꼬집어 주기를 희망해본다. 시대의 비극과 아픔이 없어 조정래 작가가 더이상 작품의 소재를 찾지 못 할 그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