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둠 아래
야쿠마루 가쿠 지음, 양수현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야쿠마루 가쿠! 소년 범죄, 심신상실자 범죄 등 이슈가 되고 있는 사회 문제들에 대해 적극적인 물음을 던졌던 작가 야쿠마루 가쿠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어떤 특별한 이야기를, 우리 사회에 놓여진 문제들에 대해 그의 시선이 머물렀을까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어둠아래>라는 제목이 가진 의미는 무엇이고, 표지속에 서있는 그 남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천사의 나이프'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기도 한 야무라무 가쿠는 앞으로도 이런 사회문제를 다룬 미스터리로 독자들을 만나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그런 바램처럼 이번 작품 또한 그만의 색깔로 물들길 기대해본다.
'아동 성범죄 사건'이 바로 작가가 제기한 이 시대의 이슈이자 그가 던지는 물음표이다. 나영이를 기억하는가? 9살 소녀의 인생과 꿈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린 조두순 사건과 그 피해자 나영이. 벌써 3년이란 시간이 흘러버렸지만 그 참혹하고 안타까운 일들이 생생하고, 우리 주변에서는 아직도 이와 같은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길태라는 이름도 기억할 것이다. 어린 소녀를 성폭행하고 살해 유기한 파렴치하고 잔혹한 인간의 모습이 바로 그 이름속에 있다.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이런 사건들에 대한 관심은 피의자 신상공개와 관련 법률의 개정 등의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지만 아직도 쳇바퀴돌듯 제자리 걸음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만하다.
최근에는 성폭력 범죄자 신상정보공개 및 고지명령제도가 시행되는 것을 놓고, 범죄자에 대한 인권침해 논란으로 소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범죄자의 인권 또한 존중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 앞서 그런 폭력에 노출된 수많은 잠재 피해자를 구제하는 방법 또한 중요하다. 전자발찌, 화학적 거세까지 거론되는 일련의 사건과 문제들을 바라보면서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아동에 대한 성범죄가 더이상 좌시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임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더불어 범죄자의 인권이냐, 다른 수많은 잠재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 대답을 내어놓기 이전에, 이 작품 <어둠아래>를 먼저 만나보기를 권한다.
나이토 노부오라는 사내를 찾아온 '남자', 남자가 나이토를 살해하는 잔인한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린시절 자신의 잘못으로 소중한 여동생 에미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자책감에 사로잡혀 사는 히다카 경찰서의 '나가세 카즈키' 형사는 마키모토 카나라는 어린 소녀의 죽음을 쫓고 있다. 그리고 또 한명 사이타마 현경 수사과의 '무라카미 코헤이'는 나이토를 비롯해 연쇄적으로 발생한 성폭력 전과자 대상의 살인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어둠아래>는 형사 나가세와 무라카미 그리고 그 '남자'의 시선을 교차하며 아동 성범죄사건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다.
'남자는 눈을 감았다. 사야, 미칠 만큼 널 사랑해. 어떤 짓을 해서든, 너를 더럽히려는 모든 위협으로부터 꼭 지켜낼께.' - P. 12 -
'남자'에게는 아내와 사랑하는 어린 딸 사야가 있다. '남자'는 자신의 딸을 이 폭력이 난무하는 어두운 사회에서 지켜내기 위해 성범죄 전과자의 살해를 통해 다른 범죄자들에게 경고를 보내려고 한다. '무라카미'에게도 어린 딸 히나코가 있다. 천사의 미소를 가진, 자신의 삶 모든것을 바꾸어버린 히나코. 하지만 성범죄 전과자들의 연쇄 살인을 막아야 하는 것 또한 경찰인 자신이 가진 의무임을 그는 잘 알고 있다. '나가세'는 결혼을 했지만 동생 에미의 죽음에 대한 자책으로 아직까지 아이가 없다. 피해자 가족으로서 아동 성범죄 사건을 이해하고 새롭게 호흡하는 형사로서의 모습이 그에게 엿보인다.

소녀들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사건은 계속이어지고 성범죄 전과자들을 처단하는 연쇄살인사건 또한 거듭된다. '남자'는 경찰과 언론에 나이토의 살해 DVD와 자신을 과거 파리의 사형집행인 가문인 '상송'의 이름을 달고 사법에 대신해 죄 지은 자들을 처단한다고, 아이들이 희생되는 범죄를 제지하기 위해서 살인의 계속하겠다는 범행성명문을 보낸다. 사형집행인 상송! 범죄자들의 목을 자르고, 복부에 상송이란 이름의 이니셜인 'S'자를 새겨넣는 연쇄살인범, 그 '남자'에 맞서는 무라카미와 나가세의 대결이 펼쳐진다.
'남자'의 수첩에 쓰여 있는 나이토와 키무라의 죽음, 하지만 이토라는 성범죄 전과자가 '남자'를 찾아오게 되고, 소녀 성범죄 사건을 맡고 있던 나가세가 전과자 연쇄살인사건을 담당한 무라카미와 콤비를 이루게 되면서 사건은 조금씩 그 실체를 내보이게 된다. 그 '남자'는 어떻게 성범죄 전과자들에게 그토록 쉽게 접근 할 수 있었을까? 나가세가 가진 끔찍한 과거의 상처속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사형집행인 '상송'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고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서서히 그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경찰의 체면을 위해 상송을 잡으려는 경찰, 어린 소녀들을 죽인 범인에 대해 분노와 증오를 통해 수사를 진행하는 경찰! 그리고 사형집행인이란 명분을 걸고 언론과 사회에 살인을 예고하고 또 다른 범죄를 예방하려는 목적을 가진 살인범! 이 흥분되고 흥미로운 구성만으로도 독자들은 야쿠마루 가쿠가 추구하는 미스터리의 즐거움에 빠져들게 된다. 작품의 중반 이후 '범인이 누구겠구나' 나름대로 추리를 하게 된다. 하지만 작가가 준비해놓은 트릭에 독자들은 모두 뒤통수를 한방 얻어맞고 만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범죄자의 인권인가, (잠재) 피해자들의 정당한 권리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이제 나름의 대답을 풀어 놓을 시점이 된 것 같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가세는 범죄자를 쫓는 경찰이란 신분과 성범죄 피해자의 가족이라는 두가지 입장에 서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 안에도 상송이 있습니다.' 그 말의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딸 아이를 둔 아빠로써 수많은 공감과 고민들로 이 미스터리를 만나게 된다. 우리가 준비하고 대처해야할 문제는 무엇이고... 나라면 어떨까? 하는...
'내가 있는 이 세상을 내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걸까?' 무라카의 고민과 의문이 있다. 나가세의 아내 하루카는 남편에게 '남의 아픔을 아는 사람이 경찰이 되었으면 해' 라고 말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정말로 아이들을 지킬 수 있을까.' 시미즈의 이 물음이 더욱 커다란 목소리로 귓가를 울린다. 내 안 어느 한곳에도 상송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각각 캐릭터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트릭과 반전을 통해 미스터리의 묘미와 즐거움을,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정면으로 물음을 던지는 야쿠마루 가쿠의 특별한 매력에 다시 한번 빠져들고 만다. 자극적인 소재, 하지만 지극히 내면적이고 섬세한 문체로 쓰여진 그만의 특별한 색깔을 앞으로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