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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종의 요리책
카를로스 발마세다 지음, 김수진 옮김 / 비채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어린이 두 명을 살해해 인육과 피까지 먹은 '현대판 뱀파이어'에게 법정 최고형인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지난 28일 외신 보도에선 이런 경악할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뱀파이어라는 표현으로 조금은 순화된듯도 느껴지지만, 사실 살해하고 인육을 먹었다는 외트케라는 이 독일인의 이야기는 정말 소름을 돋게 할 만큼 아찔하기까지 하다.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피를 마셨고, 목부터 살점을 씹었다는 그의 자백을 듣고는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어보인다. 아르헨티나에서 날아온 한권의 책을 앞에 두고 이 낯설지 않은 이야기에 조금은 더 귀를 쫑끗 거리게된다.
'세사르 롬브로소가 처음으로 인육의 맛, 그러니까 제 어머니의 살코기 맛을 본것은 태어난 지 7개월 정도가 되었을 무렵이었다.' - P. 11 -
자기 어머니의 젖꼭지를 깨물어 통째로 뜯어낸 갓난아기, 심장마비로 숨진 어머니, 씹고 삼키고 또 씹어 배가 든든해진 아이는 잠이 들고, 하수구에서 올라온 쥐들이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어머니의 시신을 가지고 만찬을 즐긴다. 백골로 남아버린 어머니의 시신, 배고픈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지쳐 또 잠이 든다. <식인종의 요리책>의 주인공이기도 한 세사르 옴브로소의 갓난 시절로 이야기는 말문을 연다. 너무 충격적인 묘사가 뱃속을 꼬이고 뒤틀리게 만든다. 그렇다면 그가 식인종?....
<식인종의 요리책>은 아르헨티나의 레스토랑 '부에노스 아이레스 알마센'에 전해지는 '남부 해안지역 요리책'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니 레스토랑 알마센과 롬브로소 가문의 100여년에 걸친 운명과도 같은 비극적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갓난 아기인 세사르의 충격적인 어린시절을 뒤로 하고, 지중해에서 이주한 루치아노, 루도비코 카글리오스트 형제가 지은 레스토랑 알마센 건물과 그들이 그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궁금의 맛을 담은 요리책과 관련한 가문의 역사가 1900년대 초부터 전해진다.
그리고 책의 전반을 장식했던 '알마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발생한 의문사 사건', 일명 '롬브로소 사건'과 그 사건을 담당했던 프랑코 루사르디 순경의 이야기가 꺼내어진다.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세사르는 이 알마센을 유산으로 상속받게 되고 드디어 궁극의 맛을 창조해내는 롬브로소 가문의 요리책 '남부 해안지역 요리책'을 발견한다. 이 책의 첫장을 열자마자 세사르는 연금술과도 같은 이 경이로운 책에 매료되고 만다. 최고의 요리를 위해, 최고의 맛을 위한 재료와 도구, 크기와 무게까지 상세하게 기록된 이 요리책은 이제 세사르를 쾌락의 나락?으로 빠뜨리고 만다.

의도적이진 않더라도 세사르의 맛에 대한, 쾌락을 향한 질주는 도저히 멈출 수가 없어 보인다. 우연한 사건들을 통해서 이 궁극의 맛을 간직한 요리책이 사용되고, 알마센만의 만찬!은 이어진다. 계속되는 행방불명 사건들을 추적하던 프랑코 루사르디 경관의 시선을 사로잡은 이름, 세사르 롬브로소. 하지만 루사르디 경관 마저도 알마센의 만찬을 위한 요리가 되어버린다. 종이모이자 연인이었던 베티나 역시 신인종들의 향연에 몸을 내어 놓게된다. 그리고 마침내 최고의 맛, 최고 요리의 향연이 펼쳐지는데....
'아기는 먹이를 쟁취한 거미처럼 차가운 쾌감을 느끼며 입안에 놓인 자그맣고 물컹물컹한 고깃덩어리를 잘근잘근 씹어 그 맛을 음미했다.' - P. 12 -
이 작품에 쓰인 '식인풍습'이라는 소재는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것을 노린 작가의 의도일수도 있겠지만, 그 속에는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사실 옮긴이의 말을 통해 그런 의도가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지만... 어찌 되었건 이런 식인풍습, 식인주의 속에 담긴 의미는 요리를 만들어가면서 드러나는 인간의 '폭력성'과 자신을 위해 타인을 짖밟는 인류의 역사, 혹은 '습성'을 드러내는 소재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아르헨티나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어서 스페인에 식민화되고, 내란과 숱한 아픔을 겪은 그들의 역사를 요리를 통해 투영하고 있다고 한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음식! 하지만 그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속에 잠재하고 있는 폭력과 잔혹성들이 지금의 아르헨티나, 혹은 우리 사회 현대인들의 모습속에 비추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피흘리게 만들고 또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내몰아 창조해낸 승리, 혹은 발전 자체가 바로 식인종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식인종의 요리책>은 단순히 세사르와 그의 가문을 둘러싼 요리책과 역사를 담은 이야기로 비추어도 좋겠고, 그 속에 담긴 깊이있는 의미들을 음미해도 좋을 작품이다.
<식인종의 요리책>을 펼치면, 우선 침이 꿀~떡 넘어간다. 잔인하면서도 너무나도 섬세한 묘사가 압권이기 때문이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자하니 어느새 급속한 배고픔이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름끼치도록 맛있고, 재밌고, 특별한 알마센의 만찬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탐욕과 쾌락이 지배하는 사회, 그 사회를 걷는 모든 이들에게 잠시 그 탐욕을 멈출 이 작은 요리책을 선물하고 싶다. 식인종과 다르지 않은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줄 작은 거울과도 같은 이 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