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만의 비밀스러운 삶
아틀레 네스 지음, 박진희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아버지가 실종된지 얼마나 됐습니까?'

독일의 수학자인 베른하르트 리만(Georg Friddrich Bernhard Riemann)과 그가 제기한 '리만의 제타함수'라는 가설을 배경으로, 한 남자의 독특한 미스터리가 시작된다. 사실 미스터리라는 장르로 이 작품 <리만의 비밀스러운 삶>을 한계지을 수는 없을 것도 같지만 말이다. 아버지가 실종된 지 나흘째, 경찰서를 찾은 그의 딸과 경찰의 대화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딸은 아버지의 실종신고를 하고 아버지의 컴퓨터에서 찾게 된 일기와도 같은 문서들을 경찰에 건넨다. 그녀의 아버지는 수학교수이다. 십대인 딸 빌데, 아들 크리스티안, 아내 카린. 평범해보이는 가정, 자신의 일과 삶에 충실했던 이 남자는 왜, 어떻게 사라져버린 것일까? 이제 그 비밀이 시작된다.

 

<리만의 비밀스러운 삶>은 노르웨이의 한 수학교수가 리만의 전기를 집필하게 되면서, 천재학자 리만의 기념비적인 업적과 그의 삶, 그리고 리만의 전기를 준비하는 동안 변화되는 자기 자신의 일상을 적어내려간 일기 형식의 작품이다. 리만의 가설은 '현대 수학에서 히말라야의 처녀봉과 같은 위상' 이라고 한다. 짧게 쓰여진 공식과 설명만으로 리만의 가설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가설이 우리에게 익숙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토대가 되었다면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놀라운 가설이자 수학적 발견인지 알 수 있을것도 같다. 어찌되었건 중년의 이 노르웨이 수학교수는 리만을 연구하고 그의 평전을 준비한다.

 

'리만의 삶은 짧고 특색이 없다. 그러나 그의 발견은 영원성을 지닐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가난하고 의기소침하며 서툰 왼손잡이에 폐병까지 걸린 사람이 쓴 가설이 후세에 미칠 영향력과 파급력을 그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심지어 그 자신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 P. 111 -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의 토대가 된 제타함수, 아직까지 그 누구도 이 가설을 증명하지 못해 세계 7대 난제로 불리기도 하는 이 가설은 이미 전설이 되어버렸다. <리만의 비밀스러운 삶>은 중년의 수학교수의 작업노트이자 은밀한 일기장이다. 이 작업일지겸 일기장은 세가지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리만의 가설을 기초로 한 수학적 조사, 가난하고 피폐했던 리만의 가정사와 삶, 그리고 리만 평전의 기획과 집필에 관련한 수학교수 자신의 은밀한 이야기로 말이다. 평범해보이는 가정의 가장이자, 수학교수로서 만족스런 삶을 살아가는듯 보이던 그의 일생에 찾아온 변화는 무엇이고 그가 실종된 이유는 무엇인지 양파 껍질이 벗겨지듯 하나씩 하나씩 비밀이 그 속살을 내어보이게 된다.

 

마흔 세살의 중년, 과학적 글쓰기에 익숙한 수학교수 평전 집필! 이 쉽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학교수는 주말을 이용한 작가 입문 강좌에 참여하게 되고, 리만의 평전 집필을 하나하나 진행해 나간다. 처음 순조로워 보이던 이 작업은 같은 강좌에 다니던 독일어 강사 잉빌드와 사랑에 빠지면서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빠져들과 만다. 첫번째 남자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온 딸에게 알 지 못할 질투를 느끼게 되고, 아들은 점점 비행을 일삼고 반항적으로 변해간다. 아내와는 사소한 다툼이 늘어가고... 대수학자 리만의 비밀스러운 삶, 중년에 다다른 수학교수의 일탈.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독특한 수학체계와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색다르고 독특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불운한 삶을 살았던 한 천재 수학자의 일생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삶의 의미, 자기 자신이 걸어가는 발자욱을 돌아보는 한 중년이란 이름의 수학교수의 은밀한 일상이 대비된다. 리만이란 수학자의 비밀스러움보다 더 은밀하고 비밀스런 그의 작은 노트는 읽는 이들의 궁금증을 자극한다. <리만의 비밀스러운 삶>은 일상이란 평범함에, 자신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한번쯤 고민할 시계의 추 끝에 놓여진 이들의 촉수를 건드리는 작품이다. 미스터리라는 장르속에 <리만의 비밀스러운 삶>을 가둘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리만이란 19세기 천재수학자의 일생처럼, 그의 그림자를 쫓는 중년의 수학자의 은밀하고 내밀한 일상이 단순히 미스터리의 틀 속에 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수학이 이렇게 낭만적인지 미처 몰랐어. 당신이야 말로 위대한 발견을 한 천재가 자연과 세상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고 있어.' - P. 111 -

 

소수 [小數, decimal] 에 대해 관심이 컸던 수학교수. 0과 1사이의 실수를 말하는 소수는, 수학교수 자신의 삶의 모습과 닮아 있다. 극히 미미하고 특별할 것 없는 이 작은 숫자들과 자신의 존재 의미를 매칭시키는, 그는 어쩌면 리만을 만나 그런 자신의 삶을 극복해나간다. 아니 평범한 일상에 던져버린 작은 돌 하나로 그의 일상은 일탈의 길을 걷게 된다. 그렇게 은밀하고 비밀스런 삶속에서 그는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리만의 비밀스러운 삶>이란 느낌있는 제목과 손안에 들어올 정도로 작고 아담한 이 책은 처음 생각했던 내용을 담아내고 있지는 않다. 물론 리만이란 천재 수학자가 등장하고 그가 중심이 되지만, 작품의 전반을 담당하는 것은 바로 수학교수, 그의 삶이고 일상, 일탈이다.

 

수학과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과 역사, 수학자들, 수(數)와 연관된 독특한 이야기들이 또 다른 재미를 전해준다. 미스터리라는 장르속에 과거 19세기 천재수학자 리만의 특별한 가설을 녹여 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그런 평범하고 정형화된 이야기의 틀을 벗어나 우리 일상과 삶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색다른 이야기를 담아낸 것이 바로 이 작품이 담고있는 특별함이 아닐까 생각된다. 천재 수학자의 모습을 통해 수학(數學)이라는 딱딱하게 느껴지는 이름이 전혀 다른 느낌, 조금더 부드러운, 이야기가 담긴 낭만으로 다가온다는 점도 이 작품에서 놓칠 수 없는 점이다.

 

'존재감이 미미한 소수처럼은 더이상 살고 싶지 않다!'라는 외침은 단지 그만의 이야기가 아닐것이다. 천재 수학자 리만의 삶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또 다른 이야기들을 다시금 독특하게 풀어낸 노르웨이 작가 아틀레 네스의 이 작고 조그만 책 <리만의 비밀스러운 삶>은 일상속에서, 지친 그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이 될 것이다. 평범하고 틀에 박힌 소설에 싫증난 독자들에게 이 소설은 또 다른 즐거움이 되어주기에 충분해보인다. 노르웨이에서 날아온 이 은밀하고 비밀스런 지적 소설은 그렇게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특별함이 되어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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