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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비가
쑤퉁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두 가지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 하나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보려는 욕구랄까? 전혀 새로운 나를 꿈꾸게 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다른 하나는 경험과 도전에 대한 욕망일 것이다. 물론 앞선 이야기와 맥락을 같이 할지 모르지만 일상을 벗어나 전혀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도전해보고 싶은 욕구가 누구나 가슴 깊숙히 자리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의 욕구 행동이 가장 잘 표현되는 몇가지가 있는데.... 전혀 낯선곳으로의 여행이나 색다른 영화를 즐기려는 심리, 혹은 책속에 빠져 다른이의 삶을 살아보고 내가 그 안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등의 경험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여행과 문화 여가 생활에 대해 애착을 가진다. 여행의 과정 혹은 결과나, 영화와 소설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기분 좋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실과는 다른 경험과 도전,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삶을 걸어보는 즐거운 여행! 하지만 현실로 되돌아 온다면 그것은 단지 허구에 지나지 않음을 절실히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영화에서처럼 따뜻하고 행복한 결과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음에 좌절한 경험이 한두번쯤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전지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허구 문학이, 현실과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런 관점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관객의 눈에 비춰주기에 이야기는 더욱 감동적이고 따스하다. 하지만 현실과는 점점 더 괴리된다.
'허구는 가장 치열한 현실이다. 난 현실의 강한 힘을 믿는다.'
최근 두 권의 책을 집어들었다. 가깝지만 문학적으로는 낯선 나라 중국 문학, 그나마 쑤퉁이란 이름이 조금은 익숙하달까? 그리고 '성북지대'를 만난 후 곧바로 <화씨비가>를 만났다. 현실!! 중국 현대 문학의 상징적인 존재라는 이 작가의 작품의 포인트는 바로 '현실'이다. 가장 치열한 허구의 세계를 현실로 그려넣는 작가 쑤퉁과의 세번째 만남을 시작한다. '화씨 집안의 슬픈 노래' 정도로 번역 할 수 있을 것 같은 책의 제목에서 보여지듯 이 작품은 한 집안의 침울하고 비정한 현실을 쑤퉁의 필치로 섬세하게 그려낸다.
아내의 자살로 복수심에 불타 아내가 다니던 공장에 불을 지르고 아내를 뒤따라간 '화진더우'라는 가난한 한 노동자 가족의 모습이 이 작품 주요 소재가 된다. 죽어서도 남아 있는 네 딸과 아들 때문에 망령이 되어 그들 곁을 맴도는 화진더우의 시선속에 작가는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보통 이런 안타까운 사연으로 떠도는 망령이 등장할 정도라면 남아있는 아이들이 고생을 하더라도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게 당연한듯 보인다. 하지만 쑤퉁은 현실 작가! 답게 단호히 그런 희망을 부정한다. 비정하고 냉정한 현실을 고스란히 그려낸다. 더욱 비정하고 잔혹한 현실속에 성장하는 아이들,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아이들의 고모 또한 비참한 삶을 살아간다.

망령으로 떠도는 아버지 화진더우는 그 모습들을 고스란히 바라볼 수 밖에, 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말 그대로 '비극' 그 자체인 <화씨비가>는 서글픈 현실의 무게를 독자들의 가슴속에 고스란히 내려놓는다. 고독과 상처라는 이름으로 앞선 작품 '성북지대'의 배경이던 1970년대를 현실적을 그려낸다. 쑤퉁의 작품을 읽고 있자면 너무 가슴이 아파온다. 현실이란 무게를 견디지 못해 아래로 무너져 내릴듯 아프다. 간혹 이렇게 무너져 내릴듯 현실의 무게에 힘겹다가도 쑤퉁이 던져주는 작은 웃음 하나가 마음을 조금은 쓸어내리게 만들기도 한다.
책을 선택할때 가장 먼저 만나는 첫인상! 그것은 아마도 표지와 제목일 것이다. 처음 제목을 보고는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기만 했다. 그리로 표지, 바짝 말라버린 지져분한 두 손에 끼어진 붉은 실! 현실을 어루만질 수 없는 한 아버지의 거친 손인지, 그 비참하고 냉혹한 현실을 살아야만 하는 아이들의 슬픈 손인지 알 수 없을 모습이 책을 내려놓을 즈음에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가슴이 먹먹하다. 안타깝기만 하다. 무엇하나 만질수도 변화 시킬 수도 없는 아버지의 안타까움과 상처, 고독하게 아이들을 키워야했더 화진더우 누이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현실은 이런 모습이다. 가난에게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고통을, 가진자에게는 끝없는 즐거움 제공하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작가는 관찰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모습으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인공을 가하지 않은 하나의 시선 그대로 말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말하려는 바는 무엇일까? 옮긴이의 말에서 그 작은 답을 찾는다. 힘들고 비정하기만한 현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물론 이런 이야기를 꺼내어 놓고 있지는 않지만, 그런 현실을 바라보는 독자들의 가슴속엔 아마도 그런 느낌이 다가왔을 것이라 믿는다.
'쑤퉁은 믿기지 않는 현실을 그려 보이는 일에 탁월한, 이 시대 최고의 작가이다.' - 대련일보 -
중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이 시대 최고의 작가 쑤퉁! 이렇게 그와의 세번째 만남을 마무리한다. 최근 재미 위주로 만나왔던 장르 소설들과는 차별화된 독특한 느낌을 가진 작품들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수많은 작가들이 중국 문학을 이끌어 가고 있다니 부럽기도 하고 또한 즐겁기도 하다. 문학은 뿌리가 있어야 더욱 굳건하고 깊이 있고 풍성해진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쑤퉁과 그의 동료 작가들이 중국 문학의 뿌리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도 더욱 다양하고 풍성한 중국 문학들과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