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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지 오웰 지음, 김욱동 옮김 / 비채 / 2013년 5월
평점 :
2010년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한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 같다. 오랫만에 들고나온 소설 '1Q84'를 통해 자국에서 뿐만아니라 국내에서도 광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은 한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이 작품을 통해 문득 떠오르는 한 인물이 있다. 바로 '조지 오웰' 이라는 이름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신드롬을 통해 다시한번 새롭게 주목받는 작가가 바로 조지 오웰일것 같다. 하루키의 작품이 조지 오웰의 작품인 '1984' 를 모티브로 삼고 있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아직 하루키의 작품도 내려놓지 못했고, 하물며 조지 오웰의 '1984'는 들어보지도 못했지만... 차츰 그 이름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2011년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동무들, 바로 여기에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답이 있습니다. 그 답은 단 한마디로 인간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야말로 우리의 유일한 진짜 적입니다. 인간을 이 농장에서 몰아냅시다. 그러면 굶주림과 과로의 근본적인 원인이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오.' - P. 15 , 메이저 영감의 연설 中 -
조지 오웰을 '20세기 최고의 영향력 있는 작가'로 만들었다는 '1984', 이 작품도 그렇지만 지금으로부터 반세기를 훌쩍 넘어선, 조지 오웰이란 이름과 뗄레야 뗄 수 조차 없는 또 다른 한 작품을 먼저 만나보기로 한다. 그 이름은 바로 <동물농장>이다. 존스 씨가 경영하는 장원농장, 늙은 돼지인 메이저 영감의 꿈 이야기와 연설로 시작된 '동물들의 대반란'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을 통해 조지 오웰의 그림자를 뒤따라가 보려한다. 존스 영감과 인간들을 몰아낸 동물들, 메이저 영감은 죽고 돼지 나폴레온과 스노볼이 중심이되어 농장을 운영해 나가게 된다. 동물들만의 사상체계를 다듬어 '동물주의'를 만들고, 장원농장이란 간판을 지우고 '동물농장'이라 써넣는 반란군들...
낡은 초록색 식탁보 위에 말발굽과 뿔을 흰페인트로 그려넣고 자신들의 깃발을 만든 동물들은 더불어 자신들만의 일곱계명을 만든다. 그들의 일곱계명은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빠!'라는 말로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모든 동물이 평등하다는 사상을 만들어낸 동물농장, 하지만 동물들의 지도자인 나폴레온은 스노볼을 변절자로 낙인찍고 내쫓아 버린다. 그것을 시작으로 나폴레온은 불만을 품은 동물들을 처형하기도 하고 반란의 순수성은 점점 그 빛을 잃어간다. 시간이 흘러 반란에 참여했던 동물들을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나폴레온의 욕심과 광기로 다시 과거 장원농장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동물농장과 동물들의 모습이 보인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지만 부끄럽게도 이것이 <동물농장>과의 첫 만남이다. 마크 트웨인은 "누구나 읽었더라면, 하고 원하면서도 실은 누구나 읽기를 싫어하는 책, 그것이 고전이다" 라고 정의했다.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지만 지금까지도 쉽게 손에 집어들 수 없었던 변명을 마크 트웨인의 말을 빌어 해야만 할 것 같다. 이 작품에 대해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들어온터라 책을 집어 들면서도 결코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작품 속 인물들과 거기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담긴 함축적이고 비유적인 의미를 찾고 이해하는 것이 그리 말처럼 쉽지 않을 거라는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기우일 뿐이었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말하려는 바는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말로 대변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이 작품을 살짝 맛본 독자들에게 이렇듯 구체적인 몇 단어로 이 작품을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이 작품에 대한 너무나도 친절한 해설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우화 소설로만 읽을 수도 있고, 별것 아닌 동물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그냥 넘겨버릴 수도, 아니면 어떤 비유가 들어있는 것 같긴한데... 하면서 결국에는 어렵사리 해설들을 찾아가는 번거로움을 택할 수도 있었지만... 작품과 등장인물, 배경과 작가에 대한 자세한 해설이 <동물농장>을 조금은 친근하고 쉬운 친구로 만들어준다.

<동물농장>속 이야기들은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과 스탈린이 주도한 소비에트 연방의 수립 과정을 비유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예를들어 존스씨의 '장원농장'은 제정 러시아를, 돼지 '메이저 영감'은 마르크스와 레닌을 합해 놓은 인물이고, 책 속 돼지들은 볼셰비키를 상징한다. '인간'은 자본주의자들을, 동물들의 '반란'은 러시아 혁명을 상징한다. 이처럼 이 작품속 등장인물들과 사건속에는 작가가 숨겨놓은 비유적인 의미와 사건들이 숨겨져 있다. 그 자세한 내용들을 먼저 알고자 한다면 'P. 232' 에 담겨진 도표를 확인해도 좋을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동물 학대를 보고 마음 아파했다는 조지 오웰은 인간에게 채찍으로 얻어 맞는 동물들을 보면서 인간이 인간에 대해 가하는 착취와 학대의 잔혹성을 발견한다. 그런 그의 경험이 이 작품 <동물농장>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이 작품은 볼셰비키 혁명과 연방의 수립과정속에서 드러난 그들 정치체제의 모순을 비판하고 있다. 사회주의자였던 조지 오웰은 결코 맹목적으로 그들의 대의에 동조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사회주의자이면서도 사회주의의 맹점을 비판하고 다양한 관점을 견지하는 폭넓은 사고방식을 가진 조지 오웰이었기에 이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열두 목소리가 분노에 차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비슷했다. ... 바깥에 있는 동물들은 돼지를 쳐다보다가 인간을 쳐다보았고, 다시 인간을 쳐다보다가 돼지에게로 눈길을 옮겼다. 그러나 이미 어느 것이 돼지의 얼굴이고 어느 것이 인간의 얼굴인지 도저히 구별할 수가 없었다.' - P. 188 -
볼셰비키 혁명과 소비에트 연방수립... 하지만 이런 복잡한 구조와 역사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쉽게 이 작품에 다가갈 수도 있을 것같다.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빠!'라는 반란군의 일곱계명이 어느 순간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더욱 좋아!' 로 변해버린 동물농장의 현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하다.' (P. 179) 라는 모순에 다다른 반란군의 모습을 보면서 씁쓸한 우리의 현실 세계를 비춰보게 된다. 메이저 영감이 '인간이야 말로 진짜 우리의 적' 이라고 했던 말처럼 우리 인간들이 동물이나 사회, 이 지구에 비쳐지는 모습에 또한 반성하게 된다. 구체적인 역사와 비유적 내용들을 잘 모르더라도 독자들은 어느새 작가의 의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번에 출간된 비채의 <동물농장>은 서강대 명예교수인 김욱동 교수가 번역을 맡은 작품이다. 김교수는 지금까지 국내에 번역된 이 작품들의 수많은 오역을 하나하나 바로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고전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한듯 너무나도 친절한 주석과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100페이지에 가까운 작품 해설을 통해 작가인 조지 오웰에 대해, 작품의 배경과 이 작품의 장르적 특성, 작품이 담고 있는 주제 등 다양한 각도로 <동물농장>을 조명하고 풀어놓고 있다. 친절한 김교수의 짜릿한 해설은 비채 <동물농장> 만의 독특한 색깔이 된다.
읽으면 읽을 수록, 그 상황에 따라, 혹은 시간에 따라 많은 생각을 갖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다. 겉모습은 그저 평범한 우화소설이지만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의미와 이야기들이 이 작품을 단순한 우화소설,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넘어 어른들이 꼭 읽어야 할 고전이자, '어른들을 위한 동화' 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만든다. 고전만이 갖고 있는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반세기 전에 탄생한 작품이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과 모습을 그속에서 찾을 수 있어 다시금 놀라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작가라는 이름에 걸맞는 진정한 작가 '조지 오웰'과 떠나는 고전 여행 두번째 이야기(1984)가 너무나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