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조절구역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장점숙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08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던 코헨 형제 영화의 원작 소설이기도 한 이 작품의 제목이 왠지 지금 읽고 있는 <인구조절구역>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든다. 물론 영화와 이 작품속 내용이 전혀 다를 지라도, 이 제목이 주는 어감은 저자 츠츠이 야스타카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에 잘 녹아 있는것 같다. '늙는다'는 의미에 대해 어쩌면 조금은 가볍고 조금은 더 충격적인 접근이 츠츠이 야스타카라는 작가가 아니면 이렇듯 과감하게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늙음'은 죄악이다! 지하철을 타도, 공원을 한가롭게 거닐다가도, 거리를 걷다가도 어느곳에서나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의 시선속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노년의 여유와 한가로움이 아니라 노인의 무료함, 갈곳 없이 초라하며, 어느곳에 속하지 못하고 겉도는 듯한 왠지 서글픔으로 가득하다는 느낌을 들게 만든다. '늙는다'는 말이 언제 부터인가 '초라하고 폐를 끼치는 것'처럼 인식되는 현대 사회. 그 죄악으로 치부되는 늙음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인구조절구역>은, 츠츠이 야스타카는 거침없는 이야기를 꺼낸다.

 

'여러분! 지금부터 서로 죽여주십시오.'

어느 가까운 미래? 일본의 한적한 작은 마을에 불어닥친 죽음의 회오리. 미야와키초 5초메 지구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노인상호 처형제도'가 바로 이 작품의 주요 소재이다. 폭발적인 노인 인구 조절이라는 목적하에 벌어지는 70세 이상 노인들간에 벌이는 '실버 배틀'. 이 살육게임은 천덕꾸러기로 전락해버린 노인 인구의 조절을 통해 사회 문제의 해결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젊은층의 부양 부담을 줄이고, 파산직전의 국민연금제도를 유지시키며, 저출산 추세의 해소 등 고령화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 추진하는 제도인것이다.

 

도대체 이런 소재를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역시 츠츠이 야스타카구나!하는 감탄이 먼저 터져나온다. 게임은 단순하다. 전국을 대상으로 실버 배틀을 벌일 지구를 선정하고 한달이란 시간동안 서로 죽이면 되는 것이다. 70세 이상의 노인들이 그 대상이고 이 배틀에는 몇가지 주의점이 있다. 피난행위는 금지되고, 국내 및 국외 여행은 제한된다. 그리고 만약 한지구에서 두사람 이상이 살아남았을 경우 그 사람들 전원이 CJCK(중앙인구조절기구) 처형 담당관에 의해 처형되게 된다. 한달이란 시간동안 서로 죽이며 한 지구내 단 한사람만 생존해야 끝나는 게임이 바로 이 노인 상호 처형제도, 실버 배틀인 것이다.

  

<인구조절구역>은 시작에서 부터 충격적이다. 많은 등장인물들이 있지만 담쟁이덩굴 집 영감님으로 불리는 일흔일곱 살의 '우타니 구이치로'가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자신의 바둑친구인 마사무네 주조를 처리?하러가는 구이치로 영감, 주조의 며느리는 구이치로를 보고 '수고했다'는 말을 남긴다.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와중이지만 웃음과 익살이 묻어난다. 남자 22명, 여자 37명이 이번 배틀의 대상이고 구이치로는 이들에 대해 리스트를 만들고 무력, 지력, 재력 등에 대해 꼼꼼하게 준비한다. 그를 찾아온 가나시키초 2초메 지구의 생존자 사루타니와 구이치로 영감. 그들이 바라보는 실버 배틀이 그렇게 막을 연다. 



 

'말하자면 이 제도의 근본 사상은 노인이 노인인 것 그 자체가 죄라는 겁니다.' 라는 CJCK 처형 담당관의 말이 참 충격적이다. 나이가 든다는것 자체가 죄악시 된 어느 가까운 미래, 정말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지만 우리 현실에서도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이런 문제들이 벌어지는 상황이기에 결코 단순히 웃어 넘길 문제가 아님을 명확해 보인다.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이상이면 이를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8년 고령 인구가 전체 인구중 10%를 넘어 이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상황이며 더욱이 급격한 고령화가 불러오는 다양한 문제점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의 경우 우리보다 앞서 이미 1970년도에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지금은 총인구중 20%를 훌쩍 넘는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었다. 이런 고령화 사회에 대한 문제와 위기의식들이 이 작품으로 표현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보면서, 결코 이 문제가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공감하게 된다. 쉽게 소재로 삼기 힘든, 고령화 사회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극단적 방법! 츠츠이 야스타카는 이 금기시되는 소재에 대해 작가 특유의 재치와 유머를 뒤섞어 역시 츠츠이 야스타카구나 라는 감탄과 웃음을 선사한다. 단순한 블랙 유머속에 담긴 웃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작가가 제시한 소재와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건네 주기도 한다는 점이 바로 이 작품의 특별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TV에서는 노인들의 이 살육 게임을 중계하고, 정부산하의 기구에서는 보다 적극적인 배틀을 유도한다. 이 죽음의 배틀을 이벤트화 하는 이에 대해 쓴 웃음이 지어지는 반면, 노인들간에 마지막 생존을 위한 발버둥은 우리 현실을 바라보는 듯해 마음 한켠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파프리카'를 통해 만화적 상상의 무한을 보여주었던 츠츠이 야스타카. 그가 오랫만에 들고온 충격적이고 익살스런 이야기는 그 자체로 색다르면서 많은 여운을 남긴다.

 

얼마전 영국 BBC의 한 기자는 일본의 고령화 문제에 대해 이런 기사를 썼다고 한다. '일본은 65세이상의 인구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직 15살 이상의 인구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적다. ... 이대로의 속도로 간다면, 21세기말의 일본 인구는 현재의 반이 되어 버린다. ... 일본의 장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라고 말이다.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는 단순히 인구 구성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 사회, 복지, 문화 등 한 나라의 전 분야에 걸쳐 다양한 사회 문제와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굉장히 큰 문제인 것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보인다. 문제다 문제다라고 하지만 그 심각성에 비해 대처하는 자세는 그리 적극적이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늙음은 더이상 죄악이 아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있고 지금의 우리 경제가 미래가 있는 것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라도 노인을 위한, 노인과 함께하는, 소외되고 외면받는 모습의 노인이 사라지는 그런 나라를 위해 우리가 더욱 고민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누구나 언젠간 노인이란 이름을 얻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구조절구역>은 츠츠이 야스타카 특유의 블랙유머로 고령화 사회의 문제점을 그린다. 혹시 정말 그렇게 될까? 아마 아닐 확률이 크겠지만 그의 상상을 단순히 웃어 넘길 수많은 없다. 영국의 기자가 말했듯 경제 대국 일본의 보이지 않는 몰락은 그들이 해결하지 못한 이 고령화 문제에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츠츠이 야스타카가 던지는 스릴넘치는 블랙유머속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를 그려본다. 일흔일곱살의 주인공 '우타니 구이치로', 그리고 그와 같은 나이의 츠츠이 야스타카. 그의 기발하고 거침없는 상상력, 아직 죽지 않은 노작가의 열정을 이 작품을 통해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인상적인 등장인물들과 색다른 소재, 특유의 블랙유머가 어울린 츠츠이 야스타카의 매력속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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